Y의 배신 그리고 책임감에 대하여

개새끼

by 이승준

Y가 출근한다던 회사는 어이없게도 GIFTY때 공간 운용을 담당하던 파트너 회사였다. 불같이 화가 났다. 공동 창립자라는 놈이, 이사라는 놈이 무슨 퇴사 통보를 출근하기 전날 밤 11시 30분에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 분노는 Y에게뿐만 아니라 상대 회사 대표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사람을 이런 식으로 빼가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Y는 급하게 와달라는 그 회사 대표의 말에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그렇게 되었다며 죄송하다고 했다. 나는 바로 K이사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새끼 어떻게 할까요?'


당장 날이 밝자마자 그 회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그래도 전화하려 했다며 밝게 인사하는 그 사람의 말 위에 분노 가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 이런 식으로 빼가시는 거 곤란하다고, 지금 회사 사정도 안 좋은데 중요한 역할 맡고 있는 친구를 갑자기 데려가시면 어떡하냐고. 그랬더니 대표가 당황해하면서 그런 사정이 있는 줄 몰랐다며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요지는 이렇다. 5월부터 Y가 찾아와 자기 회사가 정리 중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잘되었다 싶어 마침 디자이너 자리가 비어있으니 완전히 정리되는 때가 언제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Y는 7월이라 답했고 그때부터 출근하기로 합의를 봤다는 말이었다. 외주를 알아보러 나가본다던 시기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dan-edwards-38003-unsplash.jpg 완벽하게 발등 찍은 도끼


전화를 끊자마자 온갖 욕지거리가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정리는 무슨, 지금 이 넓은 사무실에 나 혼자 빚만 3억 정도 지고 앉아있는데 정리는 무슨. 뭐 가구 하나, 재고처리 하나 된 게 없이 박스가 산처럼 쌓여있는데, 대체 무슨 놈의 정리가 완전히 끝났다는 건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진심으로.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모든 돈을 다 쏟아부어 퇴사한 직원들의 나머지 월급과 퇴직금을 마련했다. 심지어 돈이 모자랐던 나는 내 차를 담보로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았다. 동산을 담보로 잡아주는 곳은 그곳밖에 없다고 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나는 차를 끌고 도살장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대부업체의 지하주차장에 들어갔다.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불친절한 직원이 툭 던져주는 서류에 어깨가 축 처진 상태로 도장을 찍었다. 이율이고 뭐고 계약서를 읽어 볼 정신머리도 없었다. 그저 돈이 마련되면 일단은, 이라는 안도감 하나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추심전화는 꼭 모닝콜 같았다.


9시가 되면 여지없이 전화가 울렸다. 가끔 너무 받고 싶지 않아서 받지 않고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전화가 끝나자마자 끝자리만 다른 번호로 전화가 왔다. 한 번 더 안 받으면 이번엔 다른 지역번호로 전화가 온다. 왠지 이것도 안 받으면 문제 될 것 같아 받아본다. 멘트도 대답도 늘 한결같다. 사과도 한숨도 늘 같았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진짜 돈이 없었다. 그런 전화가 하루에 열세 통이 왔다.


하루에 라면 한 개를 나누어 먹었다. 가끔 끓이는 시간과 쓸 신경이 없어서 라면을 으깬 다음 라면스프를 섞고 둘로 나누어 점심 저녁으로 퍼먹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유일하게 의지하고 형제처럼 여기던 이가 그렇게 뒤통수를 치고 나간 다음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게 멈춰있었다. 그렇게 혼자가 되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다음 추심 전화 때 할만한 변명을 생각해 놓는 것. 그거 하나였다.


DSC_0352.jpg 부순 라면에 물만 먹었다


'제가 책임지고 회생하겠습니다.' K이사님께 어려운 말씀을 드렸다. K이사님은 노발대발하시면서 그딴 게 책임이냐고, 쓰레기 같은 새끼라며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욕지거리를 내뱉으셨다. '혼자 짊어지고 희생하고 자폭하는 게 책임이야? 넌 대체 사업을 하면서 뭘 배운 거야?' 대체 이게 책임지는 게 아니면 뭐가 책임지는 겁니까. 하는 생각을 눈물과 함께 속으로 삼켰다. 지독하게 외로웠다. 그 외로운 와중에 대체 책임이라는 게 뭔데 나를 이렇게 옥죄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퇴사 30분 전에 카톡으로 통보한 Y가 훨씬 무책임하지 않나? 책망은 그놈이 받아야 하지 않나? 그전에 무섭다며 도망간 S가 더 무책임하지 않나? 머릿속에 탓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목록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사무실에 멍하니 앉아 생각했다. 멈춰버린 사고에 간간히 들어오는 추심 전화가 비집고 들어왔다. 이제 추심 담당 직원이 은근히 말을 놓고 짜증과 한숨을 섞기 시작했다. 나도 변명이 지쳐 앵무새 같은 사과 멘트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어느 날 전화를 끊고 혼자 앉아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문득 내가 참 한심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이러려고 사업했던 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우는 소리하고 죽는 흉내 내는 거 내 스타일 아닌데 하고. 생각을 얼추 정리하고 드릴 말씀이 있다며 K이사님과 약속을 잡았다. 비장한 마음으로 나갔다. '제가 찾은 책임이라는 단어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499865491232.jpg 뜬금없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나름 맛집이었다


이사님은 갈비탕 하나를 시켜주시고 맞은편에서 드시기 시작했다. 나는 먹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제가 최근에 저를 믿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찌질한 모습 보여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래 너 좀 찌질했어.'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대로 끝내겠다는 말만큼 무책임한 말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서 보란 듯이 성공시켜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힘듭니다. 기본적인 생활이 되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회생할 수 있게 도와주신다면 기간 동안 변제금이라도 다 갚고 다시 일어나 보겠습니다. 저는 지금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사님.' 이사님은 고개를 살짝 들어 나를 쓱 보셨다. ‘이게 제가 찾은 책임이라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이사님은 '먹어.' 한 마디 하셨다. 나는 말을 더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말없이 머리를 박고 갈비탕을 먹었다.


'내일 날 밝으면 너 도와주신 분들 다 찾아가. 다 찾아가서 방금 한 말 다 들려드려. 그래 너 잘했어, 100점 만점은 아니어도 85점, 아니 90점은 받을만했다고. 그런 새끼가 질질 짜면서 다 끝내겠다고? 무책임한 새끼야 실망할 뻔했잖아.' 나는 여전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너 믿고 너 보고 시간 돈 투자해서 만들어주신 분들도 이제 네 인생에 한 자리 차지한 거야. 다시 일어나 너 고작 1라운드 끝난 거야.' 이사님은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나셨다. '그리고 회생하자. 그래 그동안 라면만 먹었다며, 천천히 먹고 일어나.'


그날은 내가 책임이라는 단어를 배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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