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79. 어스름

by 이승준

시내에서 조금만 떨어져 보면 풀밭이 무성한 풍경 멀리에 어스름한 저녁노을이 넓게 깔리기 시작한다.


서울에서는 운전할 때도 헤드라이트를 켜는 걸 잊어버릴 때가 가끔 있었다. 해가 지거나 말거나 항상 주변이 밝았고, 그래서 켜나 안 켜나 굳이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동네는 다르다. 문에 열쇠를 꽂아 돌리기 위해서도 핸드폰 플래시를 켜야 한다.


어둠이 참으로 정직하게 내린다.

이래야 밤이 맞긴 하지, 싶다.


계절이 바뀌고, 그래서 해가 점점 더 짧아지기 시작하자 어둠이 더 빨리 깔린다. 정직한 밤 덕분에 이 동네에서의 밤은 서울보다 더 일찍 시작한다.


그 와중에 어떤 빛의 방해 없이 밤이 이렇게까지 신기하고 정직하게 내리는 걸 보는 건 역시 특별한 느낌이다. 운이 좋으면 내리는 어둠의 속도에 맞추어 별이 깔린다. 그 별 기대하며 고개 들어 멍하니 하늘 보는 일은 언제나 좋다.


어스름하다.

이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알게 되는 게 참 좋다.


79.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78. 뱁새를 꼬셔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