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취업을 결심하다.

그 나이 먹도록 뭐했냐고 그래도 어쩔 수 없다.

by 김반짝

2019년 1월 3일이다. 나는 29세가 되었다. 나는 스물 아홉이고, 여성이며, 아주아주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이 아주아주 작은 회사에서 1,2년쯤 경력을 쌓아서 쓸 만한 인력이 되는 게 나의 소박하고 작은 꿈이었다. 어차피 내가 있는 업계의 연봉은 고만고만하고, 여기서 경력을 쌓는다고 해서 어디 대기업이나 잘 나가는 스타트업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스물아홉이고, 고졸이고, 공인 영어 시험 점수도 없고, 인턴 경력도 없고, 어디 한 군데 진득하게 일한 경력도 없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 역시 작년 여름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예-술을 한다고 돈 안되는 일에 이것저것 손을 대면서 여기저기 임금이나 떼어먹히고 다녔던 것이다. (계약서 있어도 결국 민사를 걸어야 한다... 본전도 못찾는 일이 부지기수.) 회사 역시 큰 생각 없이 지금 당장 가장 잘하겠다 싶은 분야로 들어왔고, 면접관은 개인 작업을 이 정도 했으면 최소한 감은 있겠군 하고 나를 뽑았다. 그것은 사실이었고, 나는 그럭저럭 큰 폐를 끼치지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도 않은 채 반년 째 회사를 다니는 중이다.


그리고 12월 말쯤 되니 여러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뻔뻔한 이야기지만, 작년 여름에 회사를 들어오면서도

나는 내 개인작업에 대한 욕심이 컸고, 회사를 다니면서 작업을 하다가- '내가 괄목할 만한 예술가가 되면 회사를 그만 둬야지! 히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회사원으로서의 자아가 생각보다 커졌다. 일이 끝나면 피곤하다. 월급이 매달 들어오는 게 너무 좋다. 월급이 너무 적다. 월급을 더 받고 싶다. 일을 더 잘하고 싶다.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큰 회사에 가고 싶다. 여기에 계속 있는 것도 물론 나쁘진 않다. 일은 적고, 천천히 충분히 익힐 수 있고, 상사는 믿음직스러웠다. 그러나 좀 더 큰 조직에 가고 싶은 생각이, 회사원으로서의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 하는 일의 특성상 내가 더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거나 업무에 변화가 생기기는 매우 어려웠다. 물론 4,5년차가 되면 이 일을 훨씬 잘 하게 되기야 하겠지만, 큰 변화는 없는 일이었다.


좀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하면 분명 건방지게 들릴 것이다. 한번 그 일을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그 일만 해야 한다거나, 안 가본 길을 기웃거리는 것은 좋지 않다거나, 괜한 헛바람이 들었다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실제로 들은 이야기이고, 나 자신도 어느 정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것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회사를 옮겨볼까.'


정리하자면 이렇고, 정말 못미더운 생각이다. 나 자신조차도 저걸 믿고 뭘 실행할 수는 없었다. '내가 이것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부분을 설명하든가 문서로 보여줄 수 있어야 했는데, '뭔지 모르겠지만' 부분을 이력서에 어떻게 쓰겠는가. 그래서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12월 마지막 주 금요일.

나의 믿음직한 상사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말했다.


이 작디 작은 회사에 내가 믿고 일할 사람은 그 분밖에 없었다. 다른 분이 못미더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왜냐면 미우나 좋으나 그 분이 유일한 상사였다. 우리 회사는 나를 포함해 사원 둘에 우리의 상사 그리고 대표님이 한분 계셨고, 대표님은 사실상 대표라기보다도 투자자에 가까웠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셋이었고, 나는 업무 6개월차에 다른 사원도 나보다 넉달 먼저 일했을 뿐이었다. 말하자면, 선장님이 가시는 것이다. 선주는 육지에 있고, 우리는 망망대해에 있는데, 선장은 헬기를 타고 날아가면서 '노 저을 줄 알지?' 하는 식이었다. 선원은 두명이고. 선장님은 큰 배가 와서 구조해 줄 것 같다고 했지만 그 큰 배가 우리 배의 자원만 털어가고 나는 팽개칠지 나까지 데려가서 흔쾌히 입 하나 늘릴지 내가 알 방법이 없다.


새해 카운트다운과 함께 나는 29살이 되었고,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했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 내가 29세에, 고졸, 경력 없고, 영어 점수 없고, 예술만 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사례를 찾아보았다. 서른에서야 취업을 했다든가, 헤엄치는 힘이 약하면 수면을 떠돌며 살아도 된다든가, 기타 등등. 하지만 그런 말이 지금 완전 패닉한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어떻게든 시작해야 하고, 가진 것을 정리하고, 갖춰야 할 것들을 알아내고, 그것들을 기록할 것이다.


이 글은 그 프롤로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