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뜬금없게 들릴 것 같아 말하기 부끄럽지만, 마케터가 되고 싶다.
아무 데나 대뜸 취업부터 하자!라고 해서 취업이 될 리가 없다. 뭘 할 것인가를 먼저 정해야 하는데- 어쩐지 말하기 부끄럽지만, 좀 뜬금없는 것 같지만, 나는 마케터가 되고 싶다.
1월이 되어서 휙 정한 건 아니다. 12월부터 생각한 것이다. 그래도 좀 너무 금방 정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마케터가 되고 싶다.
마케팅을 뭐라고 생각하길래? 마케팅을 뭐라고 생각했냐면 팔릴만한 물건을 살만한 집단에게 알려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 네가 좋아할 만한 게 있어. '네가' 자리에 여러 가지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예대 영화과에 다니는 20대 남자애들이라든가 올해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신입생 남자애들이라든가... 물론 앞에 언급한 두 집단에게 무엇을 팔 수 있을지는 정말 모르겠다만...
파는 서비스는 기왕이면 콘텐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나 드라마도 좋고 여러 가지 글이나 책도 좋다. 강의나 실용문도 좋지만 그보다는 서사물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 눈에 보이는 장점을 남에게도 보여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사실 현시점에서, 내가 마케팅에 대해서 읽은 글은 퍼블리의 글 몇 가지와 '마케터_의 일'이라는 책 한 권뿐이다. 그 외에는, 기획자인 친구가 해준 말이 있다. 퍼블리의 글은 주로 마케터의 자질과, 자신이 마케터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가 쓰여있었다. 마케터의 일은 자질과, 어떤 것을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는가 위주로 읽었다. 맨 마지막 리더십 파트는 내가 지금 봐도 알 수 없는 영역일 것 같아서 잘 안 읽었다. 그리고 기획자인 친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저를 쪼개서 분석한 다음 각 집단에서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몇 가지 살짝 훑어봤을 때는, 마케팅이 내가 생각한 것과 엄청 가깝다고 보기도 그렇지만 엄청 멀다고 보기도 그랬다. 사실 파블리나 '마케터 _의 일'에서는 너무 재밌는 일 같아 보여서 '괜한 환상에 빠지지 않게 주의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 많은 사람 좋다, 취향 확고한 게 좋다, 창의력 있는 사람 좋다, 무언가에 푹 빠진 사람 좋다고 하니까 괜히 마음이 두근두근 했다. 그거 나잖아! 싶었다. 유난히 그런 말들이 마음에 들었다. 저 모든 것이 다 나의 '치명적인 단점'이기 때문이다.
"너는 재미도 있고 분위기도 유하게 만들어주지만 사실 조직 입장에서는 굉장히 튀는 돌이야. 너는 말을 잘 안 하려고 하지만 다 보여. 여기저기 관심사도 많고 취미도 많고 이벤트도 좋아하고. 조직은 사실 그런 사람 별로 원하지 않아. 불안정해 보이거든."
회사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사람이 살면서 여기저기 속하니까, 한두 번 들은 이야기는 아니다. 너는 튄다, 너는 너무 여기저기 관심사가 많다. 아래와 같은 말도 들었다.
"너는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그게 정말 네 인생에 도움이 되었니?"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움은 되었다. 그러나 원하지 않았다.
누가 알바 같은 걸 그렇게 많이 하고 싶어요.
내가 원했던 다양한 경험은 그런 거다. 외국에도 많이 나가고, 여러 재밌거나 배울 점 있는 사람을 만나고 서로 도움도 주고받고 성장하고 그런 거.
난 그냥 아르바이트를 엄청 많이 했고 어디 가서 시다 하다가 돈 떼어 먹힌 것만 부지기수다. 칼국수집 전화 주문받기, 택배 콜센터, 오픈마켓 콜센터, 학원 강사, 택배 물류, 카페, 호프집, 칵테일 바, 광고 기사 양산, 대부 중개업체, 인포데스크, 과외 광고 전화, 전단지, 블로그 광고글, 편의점.
"경험이 많다."는 건 내 콤플렉스다. 그건 "넌 참 똑똑하구나." 랑 똑같은 애기다. 둘 다 칭찬 같이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건 내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곱게 자라서 쭉 달려온 사람이 아니란 얘기고, 똑똑하다 소리는 너 피곤하고 싫단 얘기다.
지방에서 서울 와서, 창작하면서 월세 내고 먹고살아야 했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어디 어시로 들어가면 5분 대기조 해야 하고 그게 또 데뷔 기회랑 연결될지 모르니까 하던 아르바이트 관두고 가서 어시를 열심히 하고, 팽 당하고, 그럼 또 아르바이트 구하다가, 이번엔 진짜로 창작으로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은 기회가 오면 그 아르바이트 또 그만뒀다. 그래서 경력은 짧고, 업종은 다양하고, 수없이 돈 떼 먹히고, 의심 많고, 하는 일마다 계약서 써야 하고, 업무 관련 연락은 전부 메일로 주고받고, 전화하면 아까 통화 내용 정리했다고 메일 보낸다. 이게 내 '경험 많고 똑똑함'의 정체다. 아무도 안 좋아한다.
하지만 저렇게 만나는 사람들 중엔 분명 좋은 사람도 있고, 그러면 나이 직업 상관없이 많은 친구가 생긴다. 열 살 차이인데 말을 놓고 동갑이거나 어린데도 존대를 한다. 어디서 어떻게 만나 친해졌느냐의 문제다. 밖에서 보면 위아래도 없을뿐더러 '별 도움도 안 되는데 사람 좋아해서 술이나 마시러 빨빨거리고 쏘다니는' 인간이다.
이 모든 것을 '고쳐야 할 점'으로 지적받고 살았는데,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은 거, 관심사 많은 것도 좋은 거, 경험 많은 것도 좋은 거, 다 좋은 거라고 하니 너무 좋았다.
물론 책에 나온 얘기를 나 좋을 대로 믿어버릴 만큼 멍청이는 아니다. 뭔가, 뭔가 더 있겠지. 하지만 그건 해 보기 전에는 모른다.
사람들은 창작을 한다고 하면 '좋아하는 일로 돈도 버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70%는 지루하고 힘들다. 25%는 그냥 그렇다. 5%가 재밌다. 그리고 그게 그 직업의 이미지를 만든다. 영감을 받고, 주목받고, 세상에 작품을 내고, 감상도 받는 부분.
정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작품 만들기'를 할 때는 종일 앉아서 한 달, 두 달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 어제와 오늘이 별반 다르지 않다. 작품을 이리저리 수정해도 뭐 대단히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뒤에는 다르다. 첫날엔 흙덩이였던 게 꼴을 갖추고, 수정을 거듭하면서 매끈해진다.
보통 그 70%의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말로 하기 어렵고 이미 숙련된 사람들에게는 너무 익숙하다. 자전거 타는 법을 말로 가르치는 건 어렵다. 컴퓨터 키보드 자판을 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그런 예상을 하면서도 나는 마케터가 하고 싶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완벽한 동기가, 완벽한 각오가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그게 가능한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결정했으면 그대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