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런 모든 것에 나는 너무 지쳤어요
글만 쓰다가 위기감을 느껴 취업을 하고자 하면 여러가지 길이 있다. 우리 엄마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라고 그렇게 말을 했지만 나는 한번도 거기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돈만 있다면 로스쿨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을 아주 잠깐 해 본적도 있다. 물론 그런 돈은 없다. 안정적으로 글 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칼퇴근 보장에 사무직, 그냥 일반 사무직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게다가 스타트업 괴담도 꽤 많이 들었다. 스타트업이 그렇게 힘들대, 안 하는 게 없대.
옛날에, 이십대 초반에 술을 마실 때는 아무나와 아무 술집에 가서 아무 술에 아무 안주를 먹어도 즐거웠다. 그 때는 그것만으로도 새롭고 즐거웠다. 생과일 소주 처음 먹었을 때라든가 불닭이 처음 나왔을 때라든가. 쓰지 않은 소주라니 너무 좋았고 그렇게 매운 닭은 처음이었을 때.
지금은 좋은 걸 찾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조명이 적당하고 천장이 높고 마감이 깔끔하고 접객 태도가 친근한 곳에서 좋은 술에 그와 어울리는 안주를 먹어야 즐겁다.
사실 나는 어떤 회사가 진짜 좋은 회사인지 모른다. 한 곳에서 직원으로 일해본 적이 없으니까 겪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어땠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상이 무엇인지.
워라밸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이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나는 친구도 좋아하고 고양이랑도 놀아야 하고 취미도 많아서 종일 회사일만 생각할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큰 야망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으니 그냥 안정적인 중소기업에 있는 것도 과히 나쁜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연히 회사를 다니다보니 구체적인 바람이 생겼다. 뭘 더 해보려는 회사에 가고 싶다. 고객을 늘리고 자사의 제품/서비스를 알리고 비전이 있고 회사가 추구하는 게 있고 자기 색을 만들려고 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조직이면 좋겠다. 목표가 명확했으면 좋겠다. 내가 뭔가를 배우려고 하고, 취미가 있고, 회사 이외 이런저런 활동을 하려고 할 때, 내가 개인적으로 성장하려고 하는 것을 불편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충분한 급여도 주고 밥값도 주면 더 좋겠다. 야근 없고 주말 출근 없으면 더 좋겠지. 더 더 바라자면 무의미한 회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오늘 결론이 안 날 문제라면 결정난 사항을 매듭짓고, 다음 회의까지 무엇을 준비해 와야 할지 결정하고, 현재 할 수 있는 일이 진행되면 좋겠다. 아, 그리고 내가 머리가 녹색이고 몸에 타투가 되게 많은데 그런 건 당연하게 신경 안 쓰면 좋겠다. 지금 생각나는 건 이 정도.
세상에 바라는게 다 충족되는 회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이상이 뭐 엄청 필요한 것 같지도 않다. 그렇지만 생각하는 건 즐겁다. 무지개 유니콘 별가루 맛 사탕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상상은 즐거우니까. 어딘지 몰라도 발전적인 조직에서 일을 하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