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밥값을 벌어야 했다
내 그림의 시작은 고양이 밥값이었다.
삶을 계획대로 척척 살아내는 이들도 있겠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계획대로 되었던 적이 있을까 싶다.
내가 바깥 고양이들의 삶에 관여하고 그들의 일용할 양식을 꼬박꼬박 챙기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고양이들이 나를 둘러싼 모습은 영화 '나 홀로 집에'의 그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에서는 고양이 대신 비둘기라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게다가 집 안에서도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생활을 하고 그들의 집사이자 엄마 역할을 하게 될 줄은...
어쨌거나 그렇게 되었다. 내 시간과 내 공간 그리고 내 돈을 들이게 되었다.
적당한 때에 들인 발을 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미 늦었다. (처음에는 단언컨대 잠깐일 줄 알았다)
타자가 되어 멀리서 지켜본 삶이 아니라 나와 얽혀 살아내고 있는 그들과 이쯤에서 "빠이빠이" 하기란
여간 곤혹스럽고 죄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의 자원은 한정된 것이다. 마음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거다. 이쯤 되면 내 것을 줄이고 포기하게 된다. 아기를 키워야 하는 어미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사여탈이 내게 달려있다는 책임감은 오래지 않아 내 등의 짐이 되었다.
2021년 7월쯤이었다. '지금은 하고 있는 일이 있으니 요 녀석들 밥값은 문제없지만 일이 마무리되는 몇 년 뒤 그때는 어떡하지?' 하는 현실적인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카톡의 이모티콘이 제법 쏠쏠하다는 정보를 얻었다. 음, 딱히 정보랄 것도 없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얻어걸린 것이다. 다행히 집에 남편과 아들이 쓰지 않아 굴러 다니는 낡은 아이패드가 있어서 손쉽게 도전할 수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그리고 패기 있게 도전하였다. 하지만 매 도전마다 '꽝'이었다. 5개월 이상 도전과 실패를 반복했던 거 같다.
색연필로 음식을 그린 뒤 스캔을 뜨고 그 위에 주걱 셰프를 등장시켜 만들었던 이모티콘 시리즈가 내 마지막 도전이었다. 이 작업을 끝으로 더는 이모티콘을 그리지 않았다.
왕년에 좀 해봤거든! 하는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이겠냐만 5개월 가까이 이모티콘을 그리면서 아주 오래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던 그래서 한때는 화가가 되고 싶기도 했던 그때를 떠올리게 되었다. 물감 없이도 그려낼 수 있는 디지털 드로잉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었다. 재료를 구입하지 않아도 되고 공간을 어지르지 않아도 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온라인 사이트에 판매도 할 수 있다고 하니 주저할 필요 없지 않은가? 나중에 알고 보니 카카오 이모티콘에 당첨(?) 되기란 하늘에 별따기더라. 굳이 고집할 필요 없다고 스스로를 토닥였다. 이모티콘이 아닌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야 할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엇을 그릴까? 아들 녀석 어렸을 때 그림책을 참 많이 사주었드랬는데 아들보다도 내가 더 감동했던 모양이다. 내가 어렸을 때 그림책이란 참 귀하고 또 귀했다. 어쩌다 제법 잘 산다는 친척집에 가게 되면 볼 수 있었던 안데르센 그림 동화 전집이나 전래동화 그림책은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교과서나 전과(지금의 참고서)의 작은 그림조차도 좋아했다. 그러니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들인 그림책은 나에게 신세계였던 거다. 날 때부터 그런 책들을 접하게 된 아들은 별 감흥이 없었겠지만 말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