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선물(2)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으니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 말할 수 있겠다.
올여름 8월이 되면 꽉 채운 삼 년이다.
언제부터인가 어렴풋이 내 남은 삶동안 유기견이나
유기묘 한 마리 정도는 거두어야지 했었다.
알고 보니 인간의 해악이 너무도 크더라.
인간을 우월한 존재라 스스로 떠받들며
인간 아닌 동물들을 마구 짓밟고 해치고...
인간이란 동물은 인간 아닌 동물들을 딛고 사는
잔악한 생명체더라.
실험실의 동물들의 삶 역시...
그래서 시간이 조금 여유로워지면
한 마리를 반려해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날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여차저차 함께 하게 된 그 시작부터 주절주절 늘어놓게 되면 쓸데없이 말이 길어질 것이 뻔하므로 생략하자.
핵심은 내가 '구하였노라'하는 마음으로
생후 6주 남짓 되는 500g이 채 안 되는 아기 고양이를 데려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벌써 삼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집안의 구석구석이 고양이에게 최적화된 곳으로 바뀌었다. 고양이에게는 집안이 세상의 전부이기에…
사람도 바뀌었다. 결단코 고양이 아빠가 될 수 없다며
'아저씨'로 불려지기를 희망했던 남편은
석 달을 넘기기 전에 스스로 아빠가 되어버렸다.
내 아들은 고양이의 형아가 되었다.
"누가 그러니? 누가 우리 아라를 괴롭혀? 형아가 그랬어?"
곰곰 생각해 보니 우리 가족은 고양이 아라를 중심으로
아라의 엄마, 아라의 아빠, 아라의 형아가 되었다.
외출하고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아라를 찾는다.
"아라~"
그리고 아라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아라, 뭐 했어? 잘 있었어?"
"..."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은 나는 종일 말이 없다.
어쩌다 말을 할라치면 잠긴 목소리가 불편했다.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은 나는 웃을 일도 별로 없다.
아니 웃을 때보다 심각할 때가 몇 배는 더 많다.
언젠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얼굴 근육이 뻣뻣해지는 것인가 보다.'
아주 가끔 거울을 보면
한때는 나도 여리여리 참 이뻤다 했는데
심술 가득한 돌처럼 굳은 낯선 얼굴이 있더라.
사는 게 힘들어 그랬다 하기에는 서럽고 슬픈 얼굴...
요즘의 나는 잘 웃는다.
거울을 보면 표정이 환해졌다.
(세월이 짙어 늘어난 주름과 군데군데 흰머리는 어쩔 수 없지만...)
무겁고 칙칙했던 얼굴 근육은
야들야들 말랑말랑해졌다.
하루 종일 말을 한다.
목소리가 잠기는 일 따윈 없다.
하이톤의 부드럽고 간드러진 목소리로
아라에게 말을 건다.
어쩌면 애교를 부리는 쪽은 아라가 아닌 나일지도...
"오구오구 이쁜 내 새끼!"
하루에도 수 백번 외친다.
아장아장 아가와 놀아주는 것처럼
아라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숨바꼭질을 한다.
고양이랑 함께 산다고 슬픔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분노가 없는 것도 아니다.
때때로 슬픈 날도 화나는 날도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나를 그곳에 버려두지 않는다.
"엄마 아아아~"하고 불러대는 아라의 간드러진 애원에 곧 시선을 돌린다.
슬픔과 분노로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한 마음에 작은 틈이 생기면 마음이 녹는다. '이렇게까지 나를 상하게 할 필요는 없는데...'
알고 보니 구한 것은 나였다.
내가 고양이를 구한 것이 아니라...
그리고, 정말 정말 근사한 것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내 마음을 전하려 노력하고
내가 또 그의 마음을 읽으려 노력하는 것.
그리고, 아라도 나를 읽어내려 노력한다.
그래서... 이번 이야기의 주요 인물(?)을 고양이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