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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쟁이 May 02. 2023

이야기의 시작

뜻밖의 선물(1)

사람 마음은 너무도 쉽게 변하는구나.
나도... 다르지 않네

그러니까 작년 10월 말 무렵이다.

해묵은 옷이며 이불들...

말끔히 정리하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웬만하면 버리자...

팔 걷어 부치고 의욕이 뿜뿜 하던 날...

살다 보면 누구든 가끔은 그런 날이 온다.

아무리 바쁘다 하더래도.

나에게는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대용량 종량제 봉투를 가져다 놓고는 이 봉투를 기필코 채우고 말 거야 라는 열의로 인정사정없이 욱여넣던 순간... 조금은 낡고 조금은 꼬질꼬질한 봉제 인형이 내 손에 들려 사지가 축 쳐진 채 대롱거렸다.(이 인형의 매력이다.)

잠시 움찔하며 망설였지만 괜한 동정심 따윈 이미 종량제 봉투에 쑤셔 넣었기에 큰 어려움 없이 봉투에 마구 욱여넣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매섭고 서늘한 눈빛으로 옷장을 비롯한 수납장을 샅샅이 훑었다.

기왕에 시작한 일 남김없이 말끔하게 끝낼 요량이었다.

그러다 비닐 종량제 봉투에 아무렇게나 쑤셔 박힌

꼬질꼬질(처음부터 꼬질꼬질했다)한 봉제 인형의

작지만 까많고 선명한 눈동자와 딱! 마주쳤다.

'쟤가 언제 우리 집에 왔지? 언제였드라??'

아하! 생각났다!

'근데 저 인형은 내가 산거잖아?'

맞다. 온 가족이 미술 전시를 보러 서울 동대문의 DDP에 갔을 때였다.

지금도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참 이쁜 인형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진열된 인형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성이며 이쁘다 이쁘다 했다.

나에게 인형을 좋아하는 딸내미가 있었다면 절대 망설이지 않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겐 인형 따윈 일도 관심 없는 아들이 있을 뿐이었다.

거기다 함께 갔던 남편은 더 볼 거 없으면 빨리 가자며 재촉했다. 그 순간 결심했다. 인형을 사기로. 누굴 위해서??? 바로 나를 위해서. 아마 오만 원 조금 못 되는 가격이었지 싶다.나는 액세서리도 화장품도 달갑지 않다.

무언가를 즉흥적으로, 충동적으로 구입하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런데 저 아이는 그렇게 데려가고 싶더라.

그래서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데려왔다.

축 늘어진 팔, 다리... 흔적만 남은 듯한 까만 눈.

잘 정돈되지 않은 꼬불꼬불 한 털. 다 좋았다.

 

그. 런. 데.

시간 지나 잊어버렸다. 그때의 설렘도 기쁨도...

끌어안았을 때의 포근함도...

그리고 그 인형은 지금 종량제 봉투에 낑겨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이렇게 쉽게 변한단 말이야?


나는 결국 봉투 속에서 이 아이를 꺼냈다.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음...

'너는 내가 그릴 그림책의 주인공들 중의 하나가 될 거야.'


그림책 속 이 아이의 이름은 가칭 '꼼이' 실물과 가능한 닮게 그리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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