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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 Mar 17. 2018

싱가포르의 맨 얼굴

싱가포르 생활, 정말 좋기만 한 걸까?

 한국 취업보다 쉬운 듯 쉽지 않은 듯 어려운 듯 어렵지 않은 듯 했던 싱가포르의 취업 문을 뚫었다고 치자. 천국만이 펼쳐지진 않는다. 여기서 일을 하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사념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싱가포르 장기 거주자라면 공감할, 작은 문제부터 거대한 이슈까지. 


A.    여자 화장실이 너무 더럽다. 이건 여성들만 느끼는 문제이리라 생각한다.(남자 화장실은 잘 몰라요.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다들 대체 왜 그러는지. 양변기 위에 아예 쪼그리고 용변을 보는 것 같다. 화가 날 정도로, 몇 번이고 양변기를 닦고 불평을 했던 지 셀 수도 없다. 한국보다 더 심하다. 문명화 된 선진국이라면서, 이럴 때는 참. 

B.     인종차별이 있다. 없는 것 같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여행을 온 사람이거나, 이미 ‘다소 우월하다고 판단 되어지는’ 인종이거나. 나도 여기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몰랐다. 나는 한국인이어서 차별을 받지 않은 것 뿐. 여기도 White privilege(한국어로 뭐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지 확신이 안 서서 굳이 영어 단어를 썼다. 백인 선호사상? 백호주의? 백인 우월주의?)가 팽배하고, 본인들보다 못 사는 필리핀,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에 대한 멸시와 차별이 생각보다 꽤 있다. 나는 눈 앞에서 필리핀 유모(Nanny)를 때리거나 소리를 지르는 싱가포리언도 봤다.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서남아시아 노동자들을 짐짝 취급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밀쳐대는 보건소 직원의 행태도 목격했다. 내가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좋다고 하면 거의 백이면 백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그래도 거기보단 싱가폴이 훨씬 낫잖아? 그치?’라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는 싱가포리언은 수도 없이 만났다. 동남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결혼을 해서라도 이민 오고 싶어하는 주변국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나 잘 아는 나라, 많은 수의 집이 내니를 데리고 그들에게 청소, 빨래, 설거지, 아이 보기를 시키는 나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나 싶다가도, 불편한 것은 여전하다.  

C.     너무, 너무, 작은 나라. 이 곳에서 지낸 지 100일도 되지 않았지만 난 이미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당연한 말이다. 도시 국가이니. 

 하와이에서 지냈을 때, ‘Island fever’(섬에 갇혀 있는 느낌 때문에 무척 답답해하고 다른 본토로 가고 싶어하는 열병 같은 심리를 뜻하는 슬랭)를 말하는 로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토록 아름답고 좋은 곳에서 살면서, 그게 무슨 배부른 소리인가 싶었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 3개월을 지내자, 나는 그 열병을 깊게 이해하고 있다. 아무리 페리를 타고 인도네시아로 갈 수 있고, 버스를 타고 말레이시아 여행이 가능하다고 해도 국토 자체가 너무나 작기 때문에…… 이 곳에서 평생 지낸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득해질 정도? 싱가포르는 아름답고 안전한 곳이지만 이러한 심리적인 답답함은 누군가에게 숙제일 것이다.  

D.    갈수록 어려워지는 취업 문. 이직 시장. 외국인의 채용을 고의적으로 줄이고, 로컬의 경제활동을 적극 장려하는 나라. 내가 자국민이었으면 정말 좋았을 테지만, 영주권자도 아닌 일개 외국인 노동자인 내게는 정부의 정책 하나하나가 치명타로 다가온다. 싱가포르에서 학부 과정을 마치고, 직업을 구하러 다시 관광비자로 돌아온 한국인을 입국 거부시켜 한국으로 돌아가게 만든 경우도 잦아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한번 입국이 거부된 사람은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오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출입국 관리소에 한번 기록이 남으면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이런 악몽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내 주변에도 세 명이나 된다. 불운한 몇 명의 해프닝이 아니고 이젠 정말 남의 일이 아니게 된 것이다. EP 비자 신청, 영주권 신청도 몇 년 전에 비해 너무 어려워졌다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함께 일하는 동기도 S Pass 비자가 이유 없이 발급을 거절 당해 한 달을 더 초조하게 기다렸다고 말할 정도니.

E.     호불호가 갈리는 싱가포르의 날씨. 겨울이 싫고, 항상 화창하고 따뜻한 날이 좋다면 싱가포르가 딱이다. 그러나 나는 10월부터 폭설이 오는 나라에서 잠시 살았었고 (카자흐스탄),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스물 몇 해를 보냈다. 코가 빨개지고 입김이 호호 나오며, 사랑하는 사람의 팔짱을 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난 너무 그립다. 밤에 바라보면 마치 눈이 내리는 것처럼, 별이 떨어지는 것처럼 아름다운 벚꽃을 선물하는 봄도 그립다. 트렌치 코트를 입고, 부츠를 신고 바삭바삭 발에 밟히는 낙엽들과 어쩐지 처연하고 서늘한 바람을 느끼고 싶다. 하지만 이 곳의 날씨는 우기와 건기로 나뉜다. 우기는 조금 시원한 편이어서 우리나라로 따지면 초여름에 해당되지만 천둥번개를 동반한 스콜이 내린다. 한국에 있었을 때 나의 아침 일과는 날씨를 확인하고 옷을 입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날씨 어플을 지웠다. 어차피 날씨가 변덕스럽고, 대체적으로는 덥고 해가 강하니까. 의미가 없다. 시도 때도 없이, 기상청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내릴까 봐 처음에는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였다. 우산을 챙기지 않으면 불안했고, 갑자기 크게 천둥 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기 일쑤였다. 내게 싱가포르의 날씨는 80%는 만족스럽지만, 20%는 무섭고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F.     잘 사는 북한이라는 말. 그 말에 백 프로 공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싱가포리언들이 현재 집권 중인 정치인들에 대해 열렬한 애정과 지지를 보내는 것을 볼 때마다 그 말이 떠오른다. 몇 년 전 하늘나라로 간 리콴유 총리. 그는 분명 보기 드문 수재였고, 실리를 택할 줄 아는 명석한 지도자였으며 10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내에 ‘말레이시아에서 강제로 독립 당한’ 조그마한 나라를 동남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우뚝 세웠다. 그 점은 존경스럽고 닮고 싶다. 그의 이야기가 나오면 싱가포리언들은 굉장히 예민해진다 ……. 할 말이 많지만 나도 검열당할 까봐 여기까지 생략할 셈이다. 예를 들자면, 한 외국인이 리콴유 '총리 가족이 기르는 개'를 희화화한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바로 걸려서 싱가포르에서 영구 추방당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닭근혜,쥐박이,문재앙 등만 봐도 알 수 있듯 정치인을 비난하고 희화화 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과하면 과했지 탄압하지 않지만, 이 곳은 정말 다르다. 

G.    집 값과 자동차 값. 얼마 전 세계 도시 물가 순위 6위에 서울이 올랐고, 1위에는 싱가포르가 등극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어 직장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 서울이 6위인 건 이해할 수 있는데. 왜 싱가포르가 1위야? 런던이나 뉴욕도 있는데? 도쿄도 있고. 서울 생필품이 엄청 비싼 건 나도 알지만, 싱가포르는 생필품은 나름대로 저렴한 편이고 버스비나 지하철비는 거리에 따라 천원도 안하잖아. 서울은 무조건 천원 이상부터 시작인데. 택시비도 워낙 국토가 작다보니 서울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고. 여기는 호커센터만 가도 3000원에 볶음밥 같은 걸 먹을 수 있는데, 서울은 이제 김밥천국만 가도 김밥이 2000원이 넘잖아. 좀 이상한데?” 

“아니, 여기 자동차랑 집 값을 생각해 봐……….” 

그 말에 바로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운 좋게 낡았지만 큰 콘도의 방 한칸을 $550에 혼자 쓰고 있다. 한화로 따지자면 45만원이 조금 넘는 정도다. 서울이라고 치면, 아예 원룸 하나를 통째로 쓸 수 있는 가격이다. 하지만 여기서 로컬 친구 및 한인 친구들에게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콘도, 방 값을 말하면 눈이 휘둥그레 해지며 도대체 어디서 구했냐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나중에 다룰 주제이긴 하지만, 대체로 방 값이 콘도가 HDB보다 비싸고 하와이나 캘리포니아에 나올 법한 주택이 콘도와 비슷하거나 다소 비싸다. 현재 싱가포르의 집 값 자체가 하락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서울보다는 비싸다. 방을 함께 쓰는 룸메이트가 있는 콘도의 방 한칸을 $900을 주고 살고 있는 입사 동기의 케이스도 있다. (한화 75만원 선) 

자동차는 더욱 기막힌 데, 여러 세금과 자동차 등록세, 기름값 등을 고려하면 한국 자동차 가격의 세배라고 이해하면 된다. 따라서 싱가포르에서 차가 있다면 정말 부자라는 뜻. 예를 들어 한국에서 현대차가 2000만원이라면, 여기서는 최소 6-7000만원을 내야 구매 가능하다. 외제차는 말할 것도 없이 억 소리가 나고.

  


싱가포르는 지상 낙원이고 유토피아라는 식의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에이전시들의 글을 보며,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싱가포르 생활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에 며칠이 걸려 타자를 쳤다. 아무래도 정신 없이 일을 하다 보니,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 데 시간과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런 저런 불편한 점과 고민들이 많지만 난 아직 싱가포리언 드림을 믿고 있고, 내년을 기약하며 이 악물고 일을 하고 있다.  


*시작한 지 두 달 남짓 된 것 같은데 어느새 구독자가 100명을 돌파했네요. 재능 있는 작가들에 비하면 자랑할만한 숫자는 아니지만. 제 글을 기다려주시고 읽어주시는 분들은, 아무리 바빠도 노트북을 열어 글을 남기도록 만드는 제 원동력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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