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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 Mar 24. 2018

[해외취업] 해외 근무의 장점

싱가포르에서 일한다는 것

내가 쓴 브런치 글을 가끔 읽는다. 부족한 부분이 많고, 완벽한 글은 아직 써내질 못했다. 그러다가 아직 싱가포르에서 일하며 느끼는, 해외 근무의 장점은 적질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점이나 면접 후기, 싱가포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가끔 풀어 썼지만. 그래서 적는 본격 해외취업의 (싱가폴 취업의) 장점 배달.


1. 아무도 그대에게 사적인 질문 폭격은 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ㅈㅗㅈ)같은 회사? 그런 거 없다. 오지라퍼, 정치인 등의 캐릭터도 가뭄에 콩 나듯 있다. 해외취업을 하게 된다면 느낄테지만 사실 회사는 오로지 '일로 묶인 ' 사람들의 집합체이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치는 조직이다. 친목질하고 정치질하고 군기잡는 곳이 아니라. 특히 외국인들과 일을 하게 된다면, 사람에 따라 거북하게 느낄 수 있는 질문은 딱히 없을 것이다. 일례로, '남자친구 있어?' , '몇 년 생이세요 .......?' , '종교가 있나요?(이 질문은 상황에 따라서 다름.)', '결혼은 하셨나요?' 등의 개인적인 질문은 외국인 동료들과 일하며 전혀 받아본 적 없다.개인적으로 동료 몇과 외근을 나가서 아이스브레이킹 용으로 연애사를 오픈하고, 가족 이야기도 곁들이고, 나이도 은근슬쩍 흘리는 등의 이야기꽃을 피우는 건 사람사는 세상이니 당연하지만. 공적인 자리, 특히 사무실에서 그런 류의 잡담과 질문으로 누군가와 친해지려고 하는 외국인 동료는 아직 만난 적 없다. 내가 만약 40대의 미혼 여성이라면 으레 대답해야하는 질문들에 대한 (미혼/기혼여부, 연애 여부, 생년월일 등) 걱정은 실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해도. 나는 사실 내 개인적인 생활상과 이야기를 오픈하며 친해지는게 편하다. 그러나 업무와 일절 연관성도 없고, 일일이 대답하기 귀찮을 때도 있는 그런 류의 오지랖에 대해 어떻게 답변해야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는 자주 감사한다.


2. 수평적인 기업 문화

 우리 회사, 내가 속한 마케팅 팀은 한국인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그 놈의 수직적인 위계서열이 남아 있다. 하지만 내가 가끔 독일인 부사장님, 구매부서의 싱가포리언 시니어와 외근이라도 갈라치면 위계서열 따위는 봄날의 눈 녹듯 사라져버린다. 호칭과 극존칭 없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밥을 같이 나눠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눈치 볼 것 없이  편하게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고 회사를 위한 의견을 제안하고. '어디 어디 생맥주가 그렇게 맛있다더라', '오늘은 컨퍼런스 콜이 있으니까 나 신경쓰지 말고 팀원들끼리 밥 맛있게 먹어라', '와서 이 음료 마셔보고 의견을 말해주면 적극 반영하겠다' 등등. 연차도 높고 직급도 굉장히 높은 사람도, '부하직원'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억압하는 것이 아닌 소탈하고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 

 회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열정과 패기가 가득한 신입사원 루키들도, 긴장하고 벌벌 떤 채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높은 분들에게 ' 의견을 제안하지 않는 것이 아닌. 시시때때로 당당하게 직언과 피드백을 나누는 문화. 


3. 다양성

 한국에서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다양성 관련하여 교육을 받지 못했던 나의 무지함에서 비롯된 실수를 하곤 했다.

쉬운 예로는 바로 이것. 'Are you dating someone?' 이 아닌, 'Do you have a boyfriend? / girlfriend?' 라고 했었다. 이 차이를 아시겠는가? 

너 누구랑 혹시 사귀니? 라고 하는 것은, (동성애자 / 이성애자 / 양성애자)까지 포함하여 쓸 수 있는 질문이지만 (남성에게) 너 여자친구 있어? / (여성에게) 너 남자친구 있어? 는 아예 답변자 = 이성애자일 것이라고 가정하고 던지는 질문인 셈이다. 나는 이러한 실수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 질문을 받았던 동성애자였던 이들은 (태국인, 싱가포리언)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궁리하는 얼굴을 지었다. 다른 예로는, 대학교 때 전공이 뭐였어? 라는 평이한 질문. 대학교 진학률이 80%를 넘는 우리나라와 달리 타국은 고등학교 학위만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 질문에 대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사람들은, 다소 간의 어색한 정적 끝에 난 대학 안 나왔는데? 라고 대답을 했다. 예상 못한 답변에  내가 당황했고 잘 나가던 대화는 삽시간에 끝났다.


 두 세번 의도치 않은 실수 끝에, 우리나라에서는 참 당연하고 사소한 말이지만 그 안에 편견을 싣고 있는 질문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더 나아가 그런 류의 아이스브레이킹 질문들을, 어떻게 하면 모두가 상처를 받지 않는 현명한 물음으로 변환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 단계 나은 인간으로 성숙해졌고 현문현답만 주고 받을 수 있 상호 간의 가치있는 대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에는 '중국계 싱가포리언', ' 인도계 싱가포리언 ' , ' 말레이 계 싱가포리언' , ' 페라나칸 ' 부터, '백인 (유럽/ 북미), '아시아인(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동남아시아인'(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미얀마, 필리핀, 태국), '서남아시아인'(인도, 파키스탄, 네팔 등)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종교가 숨쉬기 때문에 다양성 속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


4. 휴가 쓰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 병가 쓰는 것으로 눈치 주지 않아요.

내가 한국에서 일하며 가장 거슬렸던 것은 이러이러한 말이었다. (생리는 왜 월요일이나 금요일에만 해? / 아플거면 센스있게 아파야지, 왜 지금 아프대 그 대리님은? / 사람들 다 바쁜데 네가 그 때 연차를 - 반차를 - 병가를 쓰면 어떡하니, 눈치도 없냐?) ........... 여기엔 그런 거 없다. 물론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은 당연한 덕목이다. 그렇지만 '집이나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들이 많은 싱가포르의 경우 길게 휴가를 써서 그리운 가족과 친지를 방문하는 일이 이상하지 않다. 또한 '아플 때 눈치 안 보고 MC를 쓰고 병가, 반차 등을 내는 것'이 당연한 권리인 싱가포리언들에게 뒤틀린 공동체의식을 기반으로 뒤에서 험담하거나 타박하는 것은 말 자체가 안 된다.


5. 한국에서 만나기 힘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내가 싱가포르에 와 가장 만족하는 포인트다. 이 곳에서 일하면 자유롭고, 기 죽지 않은 채 (연차, 직급, 나이 등으로 인해 눈치 주거나 권위적으로 미팅에 나오지 않는다) 여러 방면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다국적 기업의 세일즈 파트장과 일대일로 만나 브런치를 먹으며 협업을 논의하고, IT 기반 대기업의 팀장을 사무실로 불러 (협의 하에) 미팅을 가질 수 있으며, 유럽계 거대 식음료 기업의 로컬 사장님과 그냥 편하게 악수 해가며 가격 협상을 하는 등의 일이 벌어진다. 네트워크가 미친 듯이 확장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한국에선 신입이 쉬이 만날 수 없는 직급/기업/프로젝트 담당자와 만나 명함을 주고받고 팔로업 이메일을 남기며 얼굴도장 찍는 게 어렵지 않다. 사적인 영역을 살펴봐도 마찬가지. 런던 금융계에서 기업 인수합병 일을 담당했던 젊고 야심있는 런더너와 만나 맥주를 마시고 마리나 베이 항구를 산책한다. 다국적기업의 뉴미디어 광고를 맡고 있는 싱가포리언과 도서관에 가서 같이 SNS 기업 동향을 보며 공부를 한다. 구글, 페이스북 등에서 마케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득시글한 홈 파티에 초대 되며 인도 거물급 국회의원의 딸들과 클럽에 가서 파티를 벌이고, 타투가 온 몸에 있는 최연소 미대 디자인과 교수와 전시회를 보러 가는 등지의 일들. 엄청나게 다양한 캐릭터들의 총 집합이자 대 향연이다. 으 으악 난 뭐지


TIP)) 여기서 나는'20대에 잘 다니던 회사랑 남자친구를 두고 싱가포르로 와서 취업한 한국애'에 그친다. 그럼 당연히! 평범한 나를 잊기 때문에, 나는 그 간의 모험들과 프로젝트들을 흘려야 했다. 그럼 대부분은 '오! 너 혁명이 일어난지 얼마 안 되었던 우크라이나에 다녀왔어? / 러시아에 혼자 1주일 씩이나? 위험하지 않았어? / 카자흐스탄에서 왜 1년이나 있었어? / 스타트업에서 서비스를 운영하는 건 쉽지 않았을텐데, 그 서비스는 어떤 거였어? / 작가가 꿈이라면서 무슨 책을 쓰려고 계획 중인 건데? / Korean Russian(고려인)을 돕는 봉사활동은 뭐였어? ' 라고 반문한다. 신난 목소리로 답변하면서 나는 그들에게 뭔가 특별한, 남다른 발자취를 남기며 작지만 쪼르르 세상을 부지런히 밟아온 모험가라는 포지셔닝을 해왔다. 굳이 계산하거나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들려오기를 다들 그렇게 날 기억하고 있다는 식이었다. 


 싱가포르는 워낙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직업, 기업, 문화가 소용돌이치는 나라다. 따라서 누군가의 정량적인 스펙 보다는 스토리 및 인성, 일의 성과가 중요하다. 또한 학연, 지연, 혈연으로 인한 승진과 보상 체계보다는 철저히 퍼포먼스 중심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해고하고 보상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직이 쉽다는 말은 그만큼 유연한 노동시장을 자랑한다는 말이며, 노동 시장이 유연하다는 것은 해고와 이직과 채용이 생각외로 많다는 의미다. 해외에서 일을 하고 외국인들과 소통하며 성과를 내고 외국에서 산다는 개념은 언뜻 우아해보이지만........... 동시에 상상 이상으로 고되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실수 없는 일처리를 하기 위해 나는 토요일에도 집 근처 수영장에 앉아서, 수영은 않고 노트북으로 일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만 있었다면 결코 접하지 못했을 여러 기회들과 무궁무진한 가능성,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미래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해외에서의 경력 개발은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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