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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 Apr 28. 2019

프랑스 남자와의 연애

서로의 다른 점을 기어코 찾아내 이해하는 여정

웃긴 말이지만 그간 내가 공고하게 가져 왔던 여러 가지 신념 중 하나는.

 "아, 나는 프랑스 사람과는 연애 안 할래. 프렌치랑 '나랑은' 너무 안 맞는다." 였다. 


 여자든 남자든 공격적으로 논쟁을 즐기고, 자존심이 굉장히 세서 자국 및 자문화 우월주의까지 느껴지게 만드는 그들만의 공통점. 여행을 다닐 때는 프랑스 사람들끼리 뭉치는 경향이 있고, 영어보다 불어를 극도로 선호하며 (사실 나쁜 점은 아니다.) 지나치게 솔직해서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도 하고, 남의 시선 따위 개의치 않고 개썅마이웨이(?)로 사는 그들. 그러나 관용과 도덕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는 이들. 자유와 예술, 문화에 대한 스탠다드가 있는 사람들. 그러니 프렌치들과 몇 시간만 보내고 나면 피곤해져 멘탈이 너덜댔다. 얼마만큼 맞춰줘야 하는지, 그들 기분을 맞춰주는게 맞는지, 어떤 시점에서 무례하다 여겨야 하는지 솔직하다고 넘어가야 하는지, 얼만큼 내 의견을 주장해서 논쟁에 임해야하는지, 한번도 경험 못한 문화적 특수성에 날 억지로 맞추려 하자 피로감이 심해졌다. 

 그러다 연애를 다시 시작하게 된 사람은 어쩌다 보니 프랑스 남부에서 온 아이였고. 모든 일들은 마치 교통사고처럼 한 순간에 이뤄졌다. 고정관념과 부정적인 이미지들은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고 새롭게 덧쓰여지기 시작했다. 미국인과의 긴 연애에 종지부를 찍었으나. 미국식 연애에 익숙해진 내게, 프랑스식 연애는 항상 물음표였다.

 사랑한다는 말

 미국인, 기타 등등 아시아 사람들이 아닌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극도로 꺼린다. 특히 미국애들에게, L word가 주는 압박감과 찌-인한 의미란! 한국 사람들이 사귀자마자 사랑해, 사랑해 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말하는 데 비해 - 전 남친과의 연애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까지는 장장 6개월이 걸렸다. 우린 원래 1년 간 친구였고, 사랑한다는 말에 별 감흥이 없었던 당시 내 성격상 '사랑한다'라는 말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로의 애정을 말보단 행동으로 증명해 보여줬고 워낙 친구처럼 털털하게 연애했기에. 모든 서양인들 (?)이 사랑한다는 말을 당연히 아끼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날 얼마 만나지도 않았으면서 이 당돌한 녀석은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직 우리 사귀기도 전인데? 나는 의아했고 조금 불쾌하기도 했다. 

 '사랑한다는 의미가 너에겐 매우 가벼운 것처럼 들려. 하지만 난 널 안 사랑하니 부담 주지 마. 우린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닌데 왜 자꾸 사랑한다고 하냐'고 짜증을 냈다. 그랬더니 황당해하며 말한 대답이 가관이었다.

 "널 처음 봤을 때 나는 네가 좋아졌고, 같이 허름한 베트남 음식점에서 쌀국수를 먹으면서 너의 지난날들에 대해 알게 되며 이해와 애정이 비례하기 시작했어. 그 땐 널 사랑하지 않았어. 사실이야. 근데 널 점점 더 알아가며 사랑한다 하는 건 - 널 기만하거나 쉽게 여겨서 하는 말이 아닌 - 글자 그대로 널 사랑하기 때문이야. 다른 표현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래. 정말 미안해, 근데 네가 뭐라고 해도 난 사랑한다는 말을 멈출 수가 없어."

 사랑하니까 사랑한다고 하지 그럼 뭘 어떡하라는 것이냐, 라는 뻔뻔한 듯 진지한 대답.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창조적인 말 많이 하는데 태어나서 처음 들음 ㅋㅋㅋㅋㅋㅋㅋ
 음식에 대한 숭고한 열정

 고백하건데 난 Foodie 가 아니다. 요리? 싫고. 맛집? 별로다. 줄 서야 하는 맛집? 전혀 매력을 못 느끼고, 음식에 대한 기준도 없다. 그냥 내 입에 맞고 가격도 괜찮으면 잠시 잠깐 즐기는 거다. 꽂힌 음식만 계속 먹고, 음식 사진을 찍지도 않는다. 

 그런데 프랑스 남부에서 오신 이 분과 뭔가 먹으러 가면. 의식처럼 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음식과 식당에 대한 코멘트를 빼놓지 않는 것이다. 처음엔 얘가 대체 왜 이러나, 미슐랭에서 나온 것도 아니면서 굳이 본인 의견을 첨언해야대는 이유가 뭔가 싶었다. 이제는 나도 동참해서 맛있다, 맛없다에서 끝내지 않는다. 요리의 특정 부분이 마음에 쏙 들고, 어떤 식재료를 쓴 것 같은데 그 부분은 내 취향이 아니며, 이 음식은 어느 지방에서 유래한 것 같은데 역사는 이러이러하다 등 우리의 식사시간을 더 풍요롭고 맛이 흐르는 시간으로 만들고 있다.

 요리를 귀찮아해서 아침과 점심을 대충 거르는 나와 달리, 아침마다 사과와 드래곤프룻츠를 갈아서 줄 때 정확한 배합을 따르고. 팟타이를 만들어주거나 특제 샐러드를 요리해주기도 한다. 과도를 들고 정말 섬세하게 배와 사과 껍질을 깎는데 , 그럴 때마다 설레게 만든다. 그 때가 제일 섹시하다. ㅋㅋㅋㅋㅋ

 인스턴트와 건강에 유해한 자극적인 맛만 따르는 내가, 쓰레기 같은 것만 먹는다고 진심으로 걱정하고. 가공하지 않은 식품, 채소와 과일과 건강한 음식이 강같이 흐르는 식사를 추구한다. 아, 탄산음료를 절대 마시지 않는다. 그러니 나도 탄산음료를 멀리하게 되고 과일과 샐러드를 주로 찾게 되었다. 기분 탓이겠지만, 건강해진 느낌이다. 심지어 냉장고에 푸아그라가 있다. 세상에.

옷차림과 옷 맵시에 대한 생각

미국에서 잠깐 지냈을 때 뿐만 아니라 한국 및 카자흐스탄에서 살 때, 난 수면 바지를 입고 마실을 나간다거나. 둘 다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남자친구와 만나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옷에 신경쓰지 않는 미국인들과 어울리다 보니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 데. 프랑스에서는 '추리닝' 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고 할 정도로 늘 옷차림에 신경을 쓴다. 명품을 사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클래식한 패션 센스가 중요하다고 한다.

 하루는 내가 올 블랙 드레스+가방에 까만 반스 운동화차림으로 잠시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외출 채비를 마치고 같이 이케아에 놀러 갔는데, 창문에 비친 우리를 보니 완벽하게 블랙 앤 화이트였다. 신발도 흰색 반스 운동화. 이상해서 나는 지나가듯이, "어? 나도 반스 신었는데. 너도구나? 신기하네." 라고 물었더니, 얼굴이 금세 환해지더니 미소를 띄우고 수줍게 말했다. 

"응! 네가 반스를 신고 왔길래 나도 일부러 반스를 찾아서 신고 나왔지." 

 귀여운 꼼데 가르송 셔츠에 흰색 반바지, 흰색 반스까지 뜻하지 않은 커플룩에 나는 살짝 감명을 받았다. 

집 밖 맥도날드를 먹으러 갈 때도 항상 트라우저에 셔츠나 깔끔하게 다려진 반팔 티셔츠를 입고 나간다. 물론 나는 노브라에 반바지.(........) 깔끔하고 클래식한 옷 차림을 중시하다보니 옷 맵시에도 의외로 신경을 많이 쓰는 데, 살 찌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운동을 강조한다. 밥을 많이 먹지도 않고 군것질에도 관심이 없다. 몸매 관리에 실패하면 안 좋게 보는 프랑스의 시선이 있다나. 내가 좋은 이유 중 하나도 옷 센스가 좋고 어울리는 스타일을 잘 찾아 입어서라는데. 처음엔 조금 놀랐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애정표현

시도 때도 없이 볼에 뽀뽀를 하고, 손등에 뽀뽀하고, 뒤에서 껴 안고 등등...... 처음엔 얘가 술을 마셨나, 했는데 이젠 그러려니 한다. 

 몇 주 전 한식을 먹으려고 택시를 타고 가던 중. 택시 기사 아저씨가 백 미러로 쳐다보는 시선이 보이는 데도 계속 볼에 뽀뽀를 하고 얼굴을 부비적거리는게 아닌가. 남들 눈엔 귀여운 애정표현이 아닌 불쾌한 신체 접촉일 수도 있으니 나는 눈치를 살짝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 죽겠다는 듯이 십초에 한번 꼴로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고 꼭 껴안고 해대는 통에 혼자 택시기사 아저씨 눈치를 살폈다. 결국 백미러로 택시기사 아저씨와 세 번 정도 어색한 눈맞춤 끝에, 우리는 목적지에 당도했다.

"야아 그렇게 자꾸 볼에 뽀뽀하면 어떡해. 아저씨가 기분 나쁘실 수 있잖아. 택시기사 아저씨랑 나랑 자꾸 눈 마주쳤단 말이야."

"그랬어? 앗, 어떡해. 죄송하다.키스 안 해서 다행이네."

"전혀 몰랐어? 그걸 왜 몰라, 눈치 없게. 기분 나쁘실 수도 있잖아."

"아니. 진짜로 너랑 있으면 너만 쳐다보게 되니까 남이 나를 보는 지 안 보는지, 기분이 나쁜지 아닌 지 알 수가 없지 난.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한테 별로 신경을 안 써. 그러니 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몰래 말해줘. 알겠지?"

프랑스에선 남의 시선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커플들이 많다. 나도 파리에서 많이 봤다. 벤치에서 키스하는 커플들도 수두룩하고. 뚱뚱한 여자와 아주 마른 남자도 길거리에서 당당하게 스킨십을 하거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공공장소에서 애정표현 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이 쓰이는 나로써는 아직도 부담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미드나잇 인 파리 

내가 울면 길거리에서 거리낌 없이 운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체면 차리지 않는다. 솔직하게 감정 표현을 한다. 부담스러워? 미안해. 그런데 내 마음은 이러이러해. 듣기 좋은 칭찬을 잘한다. 그런데 그게 거의 다 진심에서 우러나온다. 밀당을 하지 않는다. 본인만의 신념과 철학이 있다. 고집이 세고, 논쟁을 피하지 않는다. 습관처럼 매일 연락을 하지 않는다. 책, 음식, 와인, 문화 및 역사, 예술에 관심이 있고 본인이 생각했을 때 아니다 싶은건 정말 때려죽여도 아니다. 아직도 미국 식 전 연애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내게 프랑스식 연애는 재미있는 큰 물음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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