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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 Mar 23. 2020

호주 이민에 성공한 그들의 숨은 이야기

난민, 이민자, 영주권자부터 시민권자까지

작년 가을. 싱가포르에서 맞는 두 번째 생일. 그래봐야 늘 똑같은 더위, 날씨, 풍경일지라 이내 색다른 것을 갈구했다. 그리고 한번도 받은 적도, 준 적도 없었던 선물을 갖고자 마음먹었다.

 

마음고생 대차게 했던 내게 주고 싶었던 선물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유’, ‘단 한 명도 나를 모르는 세상’이었다. 숙소는 친구의 친척 할아버지 집. 충동적인 무계획 여행이라, 액티비티는 가서 정하자는 심정으로 향했다. 알고 보니 그 분의 집은 대중교통과 멀었고 1.5km에 달하는 거리를 강제로 걸어 다녔다. 숙소비는 아꼈으나 우버 비용으로 그에 준하는 돈을 낭비해서 여비를 아끼자는 목적은 실패했다. (…….멍청…….)

6시간 넘게 걸렸던, 간만의 장거리 비행.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날씨가 너무 좋았다. 

난생 처음, 호주!

 호불호는 갈린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입이 부르트게 예찬했던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천국이 있다면 여기다- 싶은 황홀함. 대자연 속 여유로운 사람들. 일상에 치이지 않고 하루 하루를 축복으로 여기는 가족들의 집합. 인종차별자들이 많다는 악명에 누군가 내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가면 어쩌지했던 걱정이 흐려졌다. 이 곳으로 이민을 오고 싶으니 이민자들에게 방법을 물어보자는 뜬금없는 목표까지, 가슴 속에 부표를 띄울 정도였다.


 공항 택시에서 내려, 잠시 지낼 거처 앞에서 머뭇대던 나를 정겹게 맞아 주셨던 에디 할아버지. 그의 집은 여기가 이스탄불인지, 골드코스트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아름다운 등불들, 곳곳을 밝히는 작은 촛불들, 물 담배 통과 터키에서 찍었던 사진들, 말문을 막히게 만드는 카펫과 신비로운 중동의 향이 집을 가득 채웠다.

사연 있어 보이는 두 분. 할아버지, 소싯적 훈훈하셨네요!

 에디 할아버지는 60대로 호주 시민권을 딴 지는 30년이 넘었다고 한다. 아침마다 터키식 커피를 끓여주시고 후무스, 병아리콩이 들어간 샐러드, 양고기를 다진 음식을 차려 주셨던 다정한 푸른 눈의 할아버지. 그는 손수 가꾼 정원에서 앉아 가끔 담배를 말아 피우셨고 나는 터키 커피를 홀짝댔다. 눈이 시릴 정도로 노란 햇살을 맞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여기에 정착한 건 순전히 운이었단다. 그 때 나는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했지. 하지만 30년 전에는 호주 이민이 쉬웠어. 선원으로 돈을 모았던 20대, 호주에 가면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말만 믿고 무모한 도전을 했지.”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호주로 이민 오고 싶다는 유치한 내 말을 듣자 그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눈짓을 했다.


“우리 엄마가 얼마나 반대하시던지. 돌아온다는 기약 없이 아들이 그 먼 곳을 간다는 게 충격적이셨나봐. 며칠 간 우시는 걸 보며 나도 힘들었어. 엄마의 예상은 적중하셔서, 말 안 통하는 이민자로써 온갖 고생을 다 했지. 안 해본 일이 없단다. 공장, 식당, 농장. 결국 터키인 커뮤니티 안의 먼저 온 이민자들이 끌어주고 도와주어서 에너지 업계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어. 점차 영어도 편해지고 같은 터키계 이민자 아내와 약혼까지 했을 무렵, 영주권을 따게 되었고. 그러다 나는 우연히 큰 기회를 발견했단다.”

“그게 뭔데요?”

“호주는 대륙이지만 어찌 보면 거대한 섬이지. 다른 대륙과 교류하기 상당히 어렵잖니? 몇 십 년 전 나는 사람들이 스케이트보드 문화, 특히 스케이트보드화에 관심이 있지만 품질 대비 가격이 높아 구매를 주저한다는 걸 느꼈어. 아내는 반대했지만 나는 사업을 시작했단다. 지인들의 도움을 요청했고, 조언을 무한대로 받아들였고, 마침내 중국에 가서 원하는 디자인의 샘플을 보여주고 특정 공장과 작게나마 거래를 텄어. 감사하게도 중국계 이민자 친구들의 도움이 상당했지. 그래, 지금은 아마존이 있고 알리바바 등이 있지? 하지만 그 옛날, 전자 상거래는 태동이 일기 전이었고 호주는 더했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모험은 성공했고, 나는 스케이트 보드화를 판매하고 내 보드화를 마트에 입점까지 시키며 바쁜 사업가로 젊은 날을 보냈단다. 그 덕에 50대가 되자 마자 조기 은퇴를 할 수 있었어.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리기 전 시민권을 땄고, 아내도 아들도, 나도 모두 호주 사람이란다.”

에디 할아버지는 검소한 생활을 고집한다. 차는 경차고, 브랜드 옷이나 명품 시계 같은 것은 집에 없었으며 비싼 커피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중국산 상품과 아마존이 들어서기 전 보드화를 판매한 뒤 남은 거액의 수익으로 집 두 채를 구매했고, 아들에게도 최근에 집 한 채를 선물했다고 귀띔해주었다. 할아버지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정원을 가꾸고, 터키계 호주인들과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받았던 도움 그대로 갚는 봉사를 이어가고, 이웃들을 초대하여 터키 음식을 대접하고 물담배를 피우시며 태국계 호주 아주머니(?)와 썸(???)을 이어가신다. 

본인 아들이 결혼이나 연애보단 컴퓨터 게임만 고집하신다며 한탄하시는 모습이 여느 한국 부모님과 같았고, 태국 여자들은 위험한 매력의 소유자이니 연애할 때 조심해야 한다며 농담하는 표정은 소년과 같았다. 이혼한 전 부인의 행복을 빌어주지만 동시에 복잡미묘한 얼굴을 보이기도 했고, 내 생일이 되자 직접 바다가 보이는 레스토랑에 데려가서 점심을 사주시며 싱가포르 이민자(?)인 내 앞날에 좋은 일만 깃들길 기도해 주셨다.

 


정말 맛있었던 터키식 브런치. 이름도 기억이 안 나지만 싹싹 긁어 먹었다. 

 도착한 지 이틀 뒤, 할아버지 집에서 늦잠을 자고 오늘은 어디로 액티비티를 갈까 고민하던 아침이었다. 

초록 눈의 아랍인 청년이 내가 커피를 마시던 정원 의자에 앉아 태연하게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누구지? 할아버지 아드님인가? 하는 반가움에 다가가 말을 걸었다. 쌀쌀맞고 경계하는 태도. 아, 이런 애들 탓에 호주가 인종차별의 나라라는 건가? 싶은 심정에 나도 데면데면 대하고 있을 때, 에디 할아버지가 왔다. 


“샤힌, 인사해라. 내 친척 동생의 친구인데, 한국에서 왔고 생일 기념으로 아무도 모르는 호주로 잠깐 왔다는구나. 여기 오면서 우리 마시라고 좋은 술 한 병까지 가져온 애니까 둘이 얘기도 하고 친해지렴.”

시종일관 뚱한 표정으로 잘 쳐다보지도 않던 그 사람은 할아버지의 따뜻한 소개에 조금 마음이 동한 모양이었다. 자기는 이란에서 도망쳐 온 난민 출신 이민자라고 소개하다 갑자기 눈을 번쩍였다.

샤힌, 에디 할아버지와 종종 정원에서 같이 먹었던 마늘빵. 무슨 향신료를 썼는 지, 살짝 쌉쌀하면서 고소한 게 최고였다.

“한국에선 여자 혼자 여행 많이 해? 위험하지 않나? 이란에선 여자 혼자 여행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그리고 뭐, 생일인데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나라라니. 너 좀 이상하다. 나였으면 생일에 혼자 지낼 바에, 그냥 죽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선 여자든 남자든 혼자 여행 자주 해. 물론 바깥은 위험하고, 100% 안전한 여행이란 건 없지. 하지만 서른 개 가까운 나라를 거의 혼자 돌아다닐 때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은 없었어. 그리고 난 ‘의도적으로’ 생일을 맞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온 거야.”

“왜? 이해가 안 된다. 이란에선 생일에 혼자 지내는 건, 진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거든. 끔찍해.”

“그건 나라마다, 문화마다 다른 거지. 너에게 신기한 게 나한텐 별 것 아니듯.여태껏 한국에서도 싱가포르에서도 늘 여러 사람들과 내 생일을 기념하고 축하했어. 그래서 이번엔 다른 생일을 보내고 싶었던 거고. 내가 태어난 날이지만, 아무 날도 아닌 날. 요란한 축하와 파티 후 공허함이 없는 보통 날. 온전히 혼자 되는 경험. 그런 게 해보고 싶었어. 이해할 수 있어? 이해 못 해도 괜찮아.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고 떠나온 게 아니라서.”

눈 뒤에 있었던 어렴풋이 무시하는 듯한 기운은 사라졌다. 그는 별난 구석을 인정할 순 없지만 어쨌든 존중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얼음장 같던 경계가 녹은 듯 자연스레 호주로 이민 온 여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샤힌은 모종의 이유로 인해 난민이 되었다. 어떻게 호주 사회로 편입할 수 있었는지는 설명을 자세히 안 해주어 모르겠다. 에디 할아버지도 굳은 표정으로 과거를 회상하는 걸로 짐작하건대 역경이 셀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10년 전 (약 2010년 전후.), 불법 이민을 시도하며 바다에 표류하던 걸 호주 해경이 건내 목숨을 부지했다고 한다. 며칠간 제대로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이 망망대해를 떠돌며 죽을 운명을 넘긴 샤힌은 그 때 20대 초반이었다. 

그도 영어를 잘 못했지만 터키어와 페르시아어를 쓸 수 있었던 덕에 에디 할아버지가 있는 터키인 커뮤니티에서 도움을 얻게 되었다. 터키 교민들 및 호주 국민들은 그가 어긋나지 않은 채 사회에 정착하도록 최선을 다했고, 그는 영어와 기술을 동시에 배우며 초보 엔지니어로 성장하게 되었다. 

 열심히 일하며 월 삼백만원씩 저금이 가능할 정도로 경력이 쌓인 어느 날. 아이러니하게 샤힌은 천국 같은 호주의 일상에 염증을 느낀다. 종잣돈으로 팔천만원을 모으고 영주권을 얻은 다음 달, 그는 회사를 떠나 창업한다. 

“다들 바보냐고 하더라고. 육 개월동안 수입? 진짜 단 한 푼도 없었지. 투자금을 계속 까먹기만 했어. 하지만 의외로 고통스럽거나 걱정되진 않더라고.”

“팔천만원은 큰 돈이잖아. 수입이 없는 상태로 사업을 지속하면 저절로 조바심이 생기기 마련인데.”

“뭐, 다른 사람이 봤을 땐 그랬겠지. 하지만 나는 정말 딱 하나 믿는 구석이 있어서 걱정이 안 되던데.”

믿는 구석? ‘알라’라고 얘기하려나, 하는 마음에 시큰둥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고개를 돌려 얼굴을 쳐다봤다. 


“내가 십 분 후 죽을 지, 당장 십 초 뒤 죽을 지 모르던 그 바다에서도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 언제 죽을 지 모르던 상황이었지만, 나는 나를 믿었어. 살아날 거라고. 그리고 살아갈 거라고. 사업이 잘 안 되어 피땀흘려 이룬 재산을 잃던 모든 날들도, 나는 ‘나’이기 때문에 해낼 거라고 굳게 믿었어.”


그는 고통스럽던 반 년이 지난 이후, 본인의 사업을 4년 간 성공적으로 경영해 더 큰 돈을 만졌다고 했다. 에디 할아버지는 그가 자랑스럽다고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 그는, 애착이 컸을 자신의 첫 사업을 몇 주 전 깨끗이 정리했다고 털어놓았다. 회사를 정리한 이유는 하나. 조국으로 돌아가 이란에 기여하고 싶어서였다. 호주에서 사귄 벗들도, 이민자 친구들도, 에디도 이해를 못했다.(할아버지는 실제로 미간에 주름을 깊게 파며 크게 혀를 끌끌 찼다ㅋㅋ) 죽다 살아났는 데 이란으로 제 발로 돌아가다니 그게 무슨 짓이냐고 했지만 그는 끄떡없었다.

같이 처음으로 만나서 데면데면 했던 그 장소. 몇 번 만나고 난 뒤 나름 친해졌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날. 그는 내게 처음으로 미소 지으며 자기는 호주에서 모은 돈과 노하우를 가지고 이란에서 사업을 벌일 생각이고, 다다음주면 호주를 영영 떠난다고 했다. 새 삶을 선물해준 호주에 감사하지만 후회는 없으며 이번 사업도 잘 되리라 의심치 않는다며. 어쨌든 자기는 믿는 구석이 있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때는 내가 대신 대답했다. 자신을 믿기 때문이지?

샤힌은 아주 잠깐 초록 눈을 깜박이다 웃었다. 응. 사실 그게 전부거든. 너 자신을 믿는 것. 의심이 들어갈 자리조차 내주지 않는 자기 확신. 나는 나를 믿고, 내가 해낼 거라고 생각해. 인생을 살면서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는 뭐라고 했던가. 아마 고맙다고, 아니면 알겠다고, 어쩌면 서로의 행운을 빌었던 것도 같다.


호주를 여행하며 나는 몇 명의 호주 이민자를 더 만났다. 다리 위에서, 길을 걷다가, 우버 안에서 우연히 만났고 그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계, 인도계, 중국계 이민자들. 큰 꿈을 쫓아왔지만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부동산 관련 투자를 해서 성공한 사람, 컴퓨터 과학을 배워 취업하여 가정을 이룬 사람, 택시 기사로 일하며 밤낮없이 저축 중인 사람 등등. 그 들의 이야기들은 모두 달랐다. 그러나 놀랍게도 다들 호주로 이민 온 선택에 전혀 후회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간만에 오롯이 혼자여서 더 많은 삶들을 가까이할 수 있던, 기억에 오래 남을 생일이었다. (생각보다 경비가 많이 들어서 나중에 통장을 확인해보고 까무라칠 뻔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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