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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 Apr 25. 2020

나라 별 가장 아픈 곳을 건드리는 ‘이 질병’

Covid- 19, 코로나 바이러스

한국이 한 때 확진자 수가 폭발해, 많은 나라로부터 입국 금지 및 거부를 당했던 일이 옛날처럼 느껴진다. 모든 나라에 퍼져 이젠 코로나 청정 구역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를 잃은 지금. 우울하고 충격적인 뉴스만 접하던 나날 속 문득 바이러스는 사회의 가장 아픈 곳에서 독버섯처럼 맹렬히 자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각 나라가 감추는 것, 쉬쉬하던 부분. 혹은 알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던 음지 속에서 싹을 틔우고 음기를 양분 삼아 퍼져 나갔다. 


 한국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신천지를 들 수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붐비는 지하철 역이나 길거리에서 붙잡고 설문 조사를 해달라, 대학교 동아리에서 나왔다느니 하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서울에 살던 시절. 나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사이비 / 이단 / 도를 아십니까 등의 집단에서 엉겨 붙었다. 그럴 때마다 괜히 낯선 사람을 도와주려고 귀를 기울였던 나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뒤돌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무도 제재를 가하거나, 특별한 주의 및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종교. 

‘신천지에 빠진 엄마, 도와주세요.’

‘우리 딸이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구가 신천지인 것 같아요. 자꾸 성경 모임에 들어오라는 데, 한 번 나가고 제가 안 가니까 계속 매달리며 연락을 해요. ’

 주변의 가정이 무너졌다는 말에도, 개인의 불운한 불행이라 치부하고 넘어갔던 모두의 무관심 속에 신천지는 어느 새 10만명을 훌쩍 넘는 종교 지파가 되어 코로나 바이러스의 숙주로 기능했다. 

또한 끊임없이 논쟁 중인 중국인 입국 금지. 한국은 중국인 여권을 소지한 사람의 입국을 금지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후베이 성을 방문한 이들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시기 적절하게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하지 않아 이 지경이 되었다는 비판, 중국인 입국 금지 시 중국에게 큰 보복을 당할 수 있었고 중국에 기형적으로 기대고 있는 경제 구조 상 어쩔 수 없다는 반론들은 내수가 작고 대중국 수출형 국가인 한국의 아픈 곳을 자극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거대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중국’이라는 (중국 경제 의존도 상위 3위, 중국 GDP 1%하락시 가장 크게 영향 받는 나라 1위) 불편하고 거대한 이웃이라는 사회적 논의에 대해 논쟁을 촉발시켰다. 

몇 주 전만 해도 방역 모범국으로 칭찬받았던 싱가포르는 어떨까. 지금 싱가포르는 10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와 ‘준’ 국가 봉쇄령을 내린 참이다. 싱가포르는 빠르게 중국인의 입국을 막고 전면 비자 발급을 중지한 나라 중 하나다. 하지만 현재는 이 작은 나라 내 지역사회 감염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정부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모든 개학을 전면 백지화시키고 다시 온라인 개학을 하고, 99%에 달하는 회사를 재택 근무로 전환시켰으며 클럽,바,영화관,운동장,종교시설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대해 한 달간 영업 금지를 내렸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는 현재 ‘FW’라고 불리는 저임금 비숙련 노동자들 내 엄청난 감염에 직면해있다. 주로 공사 현장, 건축 현장 등에 동원되는 인도-방글라데시-파키스탄 등 서남아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기숙사 내에서 코로나가 퍼져 버린 것이다. 저임금을 받고 나머지 돈은 본국으로 송환하는 그들은 한 방에 6명 ~ 9명까지 이층 침대를 두고 화장실을 공유하며 산다. 개미굴 속에서 코로나 확진자들이 생긴 것이니, 참혹한 결과는 자명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그들에게 2주 격리 처방을 내리고, 그 동안 유급 휴가를 지급받도록 하며 밥을 배급해주는 등 신속히 대처했다. 그러나 이미 속속 감염된 건물에 몇 천명의 사람들을 별 대책 없이 격리시키니, 하루에도 몇 번씩 앰뷸런스가 와서 증상이 발현된 노동자를 싣고 떠난다고 한다. 격리 기간 동안 기숙사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정신적인 공포와 무력감에 불안해한다. 시민들이 누리는 대다수의 사회 기반 시설은 이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졌으나, 그간 아무도 그 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 어디에서 지내는 지는 관심 밖이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감염이 시작되자 그제야 다들 알아차린 셈이다. 

이 뿐 아니다. 부유한 싱가포르 가정은 집안일을 도와주는 메이드 혹은 헬퍼들을 집에 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에서 온 메이드들이 서남아에서 온  FW들과 사귀는 경우가 많으므로, 메이드들이 FW과 데이트를 하고 가정으로 돌아오면 바이러스를 옮길 지 누가 아냐는 메시지들이 불안 속에 퍼져 나가고 있다. 메이드들은 집 주인에게 본인들의 사생활과 남자친구에 대한 관계에 대해 말하지 않으므로, 메이드들을 둔 싱가포르 가정은 잘 모르는 감염 위험에 놓인 셈이라는 경고.  물론 그러한 메시지들은 항상 ‘자가 격리를 최우선으로 두고 우리 모두 건강하자’라는 계몽으로 귀결되지만, 그 메시지 속에 숨어 있는 이들에 대한 적개심과 원망하는 듯한 스탠스가 읽혀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현재 가장 많은 사망자와 확진자를 배출하고 있는 미국. 

미국은 많은 이들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극도로 취약한 공공 의료 서비스 및 의료 보험 문제로 인해 아비규환이 악몽처럼 펼쳐지고 있다. 처음에 발 빠르게 대처하여 유럽과 달리 별일 없이 지나가는 줄 알았으나, 지금은 암과 심장질환을 제치고 미국인 사망 원인 1위가 될 정도로 감염이 심각해지고 있다. 

 알다시피 미국은 의료 보험이 없이 진료를 받거나 치료를 받으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청구 받게 된다. 돈이 없는 사람은 병원 문턱에 가지 못하고 죽는 게 다반사. 이러한 기형적인 사회 구조 속, 미국 내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이 검사를 받고자 할 경우 수백만원 (약 300만원) 에 달하는 검사 비용을 내야 하고 의료 보험이 있다 해도 백만원이 넘는 금액을 검사비로 토해야 한다.

 이러니 유증상자들, 감염 환자와 접촉이 의심되는 환자들은 차라리 집에서 격리를 하고 검사를 미루게 된다. 더 나아가 사스, 메르스에 얻어 터지며 만반의 준비를 갖춰 온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달리 준비가 덜 된 취약한 공공 보건 시스템에 의해 아직도 잠재 보유자가 많고 확진자가 치솟고 있다. 치료는 커녕 검사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시민들. 죽어가는 환자들과 시신들 처리에 곤란을 겪는 절망의 도시들.

자본주의의 신성이자 오랜 꽃이었던 미국. 가장 취약하다고 지적 받았던 고질적인 의료 서비스 문제가 이렇게 곪아 터지며 새로운 국면에 접어 들게 되었다.  

프랑스 친구들이 차려줬던 정말 건강한 음식상. 

여전히 사투 중인 유럽, 프랑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모두 신체 접촉을 많이 하는 인사가 일반적이다. 또한 중국인 관광객 및 명품 산업의 중심지로 그 나라에서 일을 하는 중국인들이 많은 편이다. 고령화가 진행 중인 나라들이라 노인 사망률이 높은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크리티컬 했던 사항들은 마스크 쓰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문화 및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성향이었고 곧 그 것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창궐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 프랑스인인 남자친구 및 여러 프랑스 친구들만 해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려고 별 짓을 다했다. 지금에야 싱가포르 정부가 강제하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 시 30만원에 달하는 벌금을 매긴다는 법령을 공표하자 불만 없이 착용하지만. 

3월 초 중순의 내가, 

“너희 부모님이랑 할아버지 댁에 마스크라도 좀 보내드릴까? 유럽은 마스크 자체가 없어서 고생이라잖아.”

그랬더니 꼭 껴안고 말이라도 너무 고맙다고 하면서도 마스크 한 뭉텅 보내드려봤자 안 쓰실 걸 알기 때문에 허튼 짓 하지 말라고 넘어갔다. (…...?) 


우스갯소리로 내가 너희 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태평하고 말을 안 듣냐, 좀! 이라고 성토하자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그게 프랑스인들의 좀 이상한 저항 정신(?) 아니겠냐며 머쓱해 했다. 

마스크는 아픈 사람들만 쓰는 것이라는 편견과 혐오. 미국과는 의외로 또 반대인 , ‘제너럴리스트’로 대변되는 공공 의료의 문제. 절차가 많고 느리며 중증 환자가 아니면 진료조차 받기 어려운 공공보건 시스템. 국가가 나서서 시민들의 개인 정보를 취합하거나 자유로이 행동할 권리를 제한하는 것에 대해 몸서리를 치는 개인주의 문화로 인해 전염이 가속화되었다. 유럽인, 특히 프랑스인들은 지극히 개인주의자인 경우가 많아, 공동체의 이익보다 나의 자유와 권리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짙다.  관중들의 감염을 우려해 스태디움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자 ‘밖에서’ 몇 천명씩 경기를 응원했던 해프닝, 국제적으로 걱정을 불러 일으켰던 프랑스 스머프 축제 등. 지금도 프랑스에서는 도시 봉쇄 및 통행 제한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격리를 어기거나 정부의 강제성에 불만을 품고 빠져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신이 세운 에덴동산도 실수와 죄가 범람하는 데 사람이 세운 나라가 어떻게 100점 짜리일 수 있을까.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천국은 없다.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에 뿌리를 내려 사회를 순식간에 갉아먹기 시작한 이번 바이러스는 각 나라별로 골치 아픈 숙제 혹은 차가운 무관심으로 응대했던 사회 문제의 염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언급한 네 나라들은 사실 다른 나라들보다 특별히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 온 곳이다.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을 선물해 준 곳이어서.


 세계사에 기록될 만한 격변에서 사투를 벌이는 모두에게 감사와 응원을 건넨다. 빼앗긴 일상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요즘, 놀랍고 슬픈 소식들에 무감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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