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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 May 23. 2021

싱가폴 이주 3년 반 차, 나는 어디까지 왔나

싱가포르에서 웹드라마 촬영한 썰.txt

커다란 행운 덕에 어린 날의 상상보다 꽤 멀리 오게 되었다. 에전에는 내가 잘나고 최선을 다해서라고 치부했지만 지금은 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다는 것을. 게다가 가족의 빚이나 병환이 없었던 것 자체가 출발선상에서 앞서 있던 셈이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선의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실들.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이 지점에서, 겸허하게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해 물기 어린 눈으로 관찰하고 있다. 


2017년, 싱가포르에 정착하게 되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것들 몇 가지가 있었다. 어떤 것들은 이뤄냈으나 몇 가지는 이루지 못했다. 살펴보자.

 1. 글로벌 기업에서 일해보기 - Yes


운 좋게도 지구 상 모든 사람들이 알 법한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아프리카, 인도의 동네 꼬마부터 한국에 계신 우리 할아버지까지 알 정도의 거대한 미국 회사다. 조직과 비즈니스에 임팩트를 끼치는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훌륭한 동료들과 매일 분투하고 있다.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인터뷰와 이력서 수정을 거치고 들어온 현 회사. 만만치 않다. 힘든 만큼 나름의 전쟁터이다. 그러나 믿을 수 없을만큼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이 회사에서 일하며 여러가지를 배운다. 옳은 방식으로 일 하는 법, 동료와의 갈등 해결, 매니저와의 관계 확립, 퍼포먼스리뷰 쓰는 방법, 영어로 내 주장과 근거를 조리있게 피력하는 방식, 시차 차이가 엄청난 타 부서 및 타 팀과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법 등. 이력서에 한 줄 빛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여기서 만난 멋진 동료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며 성장했던 경험은 잊지 못할 것이다.


2.  여행 책 출간하기 - No


 몇 년밖에 안 살았지만 CEO, VC, 인플루언서, 모델, 예술가부터 나같은 일반 회사원이나 로컬 학생들을 만나왔다. 따라서 여행자들은 잘 알지 못하는 숨겨진 스팟들을 방문하는 행운을 얻어왔다. 싱가포르의 상징인 마리나베이샌즈 인피니티 풀부터 센토사 비치, 이스트/웨스트 코스트, 간판 없이 지하에서만 운영하는 숨겨진 바, 요트를 탈 수 있는 선착장, 선셋이 끝내주는 스팟, 오백 개가 넘는 새장들이 줄세워져있는 잔디밭,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공동 묘지, 영화관 건물의 옥상에서 펼쳐진 시크릿 디스코 바 등. 싱가포르는 ‘멀라이언 동상, 마리나베이샌즈 호텔과 가든스 바이 더 베이가 끝’ 이 아닌 시작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마음 먹고 네이버 블로그에 다녀온 미슐랭 음식점이나 새로 오픈한 한식 레스토랑, 우리 동네에만 있는 끝내주는, 심지어 가격이 착한 프랑스식 카페, 귀신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동쪽 해변의 등대 등을 자랑하려고 했는 데 코로나가 터졌다. 여행은 몇 년간 금지어가 되어버렸다. 여행 가이드책은 추억을 넘겨보고 싶은 이들만 찾는 케케묵은 할머니의 장롱 신세로 전락했다. 책을 내고 싶다는 호기로운 마음은 조각나 흩어져 버렸다.

3. 로컬 남자와 연애하기 - No


나중에 써볼 예정이지만 로컬 남자와의 연애도 리스트에 있었다! 모름지기 한 나라와 언어를 빠르게 습득하고자 한다면 그 나라 사람과 데이트를 해보는 것이 지름길. 사람 일은 뜻대로 안 되는 지라 나와 싱가포리언 남자분들과는 맞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시간이 갈 수록 공고해졌다. 일반화해선 안 되지만 싱가포르 남자들은 착하고, 순하고 싱겁다. 공격적이질 않다. 결혼하면 가정적이고 다문화 사회인만큼 외국인들과의 연애를 개의치 않는다. 한국 여자, 한국 남자에 대해 좋은 이미지가 있어 환상을 품고 있기도 하다. 가끔 연락처를 묻던 싱가포르 남자분들이 있어 영화도 보고 저녁도 먹었으나 그 중 누구도 진지한 관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공통 관심사의 부재였다. 나는 여행, 특히 혼자 떠나는 배낭 여행이나 충동적이고 익스트림한 것을 좋아하지만 내가 만난 분들 모두 베트남 여행조차 무섭고 위험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첫 데이트 장소로 갑자기 쇼핑몰의 푸드코트를 가자고 하는 건 예사. 책과 영화, 사업 얘기를 하고픈 나를 두고 자꾸 어젯밤 먹은 음식에 대해서 읊거나 K-pop, K-drama 이야기만 꺼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미식가가 아니고 음식이나 드라마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얘기가 겉돌았다. 다들 따스하고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아쉽게도 흥미를 잃어버렸다.

4. 브런치 작가 하기- Yes


지금도 잘 하고 있다. 싱가포르에 와서 얻은 최고의 선물이다.


5. 미디어 출연해보기 - Yes

모든 배우들은 초상권 관련하여 싸인해야했다.

선망해 마지 않는 김수영 작가의 책을 몇 권 읽다보니 든 꿈이었다. 그 분은 발리우드 영화에 출연하셨다고 했다. 나도 영화나 드라마에 단역으로 내 얼굴을 도장 찍어보고 싶었다. 떠날 때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싶었다. 그러다 한 번 로컬 사진사의 아마추어 모델이 되어 주었고, 그의 추천으로 로컬 웹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지금 쓰면서도 웃겨 죽겠다. 보수 따윈 없었고 교통비와 버블티 넉 잔을 지급 받았다. 그 웹드라마가 버블티에 관한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대감집 노비가 그보단 보수가 좋았을 것이다. 싱가포르는 대만만큼 버블티에 미쳐 있는 나라인데, 국민적 인기에 힘입어 버블티나 호커센터 관한 미디어가 자주 제작된다. 그 웹드라마에서 나는 자랑스럽게도 ‘손님 1’을 맡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소외감이 많이 들었다. 나를 제외하고 전부 싱가포리언이었기 때문에 제작진은 중국어와 영어를 자꾸 섞어 썼다. 전형적인 싱글리쉬였다. 문제는 나는 중국어를 전혀 모른다는 것. 이해가 안 돼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옆에 있는 할머니 배우가 하는 걸 몰래 따라하거나 뒤에 있는 남자( 알고보니 감독의 동생) 에게 영어로 통역을 요청해 겨우 촬영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독과 조감독은 자꾸 나에게 뭘 시키고 지적했다.  (……) 앉으라고 했는 데 못 알아들어 혼자 머리를 긁으며 서 있어서 NG가 나기도 했다. (……) 현장은 끔찍하게 더웠고 쏟은 땀만 세 바가지였다. 옆의 할머니 배우분은 계속 중국어로 ‘그래서 우리 이제 어떻게 연기해야 된다니?’ 라고 여쭤보셨다. 그 질문 제가 하려고 했던 건데요? (…….) 무너진 화장을 고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아서 얼굴이 똥색이 되었고....... 버블티를 많이 마셔 마지막엔 방광이 터질 지경이었는데 촬영이 끝나질 않았다. 하늘이 무너질 지경이 되자 신앙을 잃었던 나는 다시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었다. 거기 모인 단역 친구들과 친해진 게 촬영의 묘미였는데, 대부분 배우 지망생이거나 연출 지망생이었다. 나이를 물으니 98년 생이라고 해서 더욱 이마의 땀이 짙게 배어났다. 

진짜처럼 보이도록 버블티샵 세트장을 만들었다. 하필 그날 에어컨이 고장나서....

6. 다른 나라로 떠나기 - ?


1,2년 정도 일하고 난 뒤 사실 싱가포르에서의 경험을 발판 삼아 다른 나라에서도 일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여러 나라를 떠돌아 다니며 커리어를 쌓아보고 싶다고 철없는 생각을 했었다. 정말 회사 생활과 조직의 생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가졌던 꿈이었다. 원래 사실 어쩌다 런던으로 갈 뻔도 했었고, 말레이시아로 거의 이직할 뻔하기도 했으나 결국에는 3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싱가포르에 계속 남게 되었다. 만약 계획대로 된다면 올해는 아마 다른 나라로 가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겠지. 


 처음에는 싱가포르에서 이룬 것이 별로 없구나 싶어 슬펐다. 그런데 버블티 웹드라마 촬영 이야기를 적으면서 피식대느라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렇다. 억대 연봉자가 되는 걸 원하고 건너 온 것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결혼 이민을 통해 여기 억지로 정착할 마음도 전혀 없었다. 애초에 그냥 나는 얼만큼 멀리 떠날 수 있을지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이 절박하지만 강렬한 동기는 강력한 행동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나의 마지막 20대는 눈물보다 웃음으로 채워졌다. 돈 없고 경력 없는 수도권 대학 출신 문과생이 여기까지 오다니. 한국에 있었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훌륭한 이들을 만나 행복으로 점철되었던 지난 날을 가슴에 아로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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