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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름 Jan 27. 2018

[해외취업] 잡 오퍼를 거절할 때

거절만 당하던 거절 전문가가 이젠 거절을 하다니, 세상 말세군.

 저번 브런치 글에 썼었는데, 최종 합격을 준 회사를 가고 싶지 않았다. 가고 싶었던 적이 없다.

음, 야금야금 구독자들이 생겨나는 것을 봐서 일단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대부분 구독자 분들일 것이라고 가정하고 글을 쓰겠다. (드라마도 아니고, 앞서 있던 상황을 설명하는 건 사랑하는 <3  브런치라고 해도. 귀찮아 생략! )


https://brunch.co.kr/@singayoung/6


 싱가포르에 온 후 조금은 초조하고 불안하고 한국에 돌아갈까봐 노심초사였는데 요즘은 다르다. 저번주 부터는 자신감이 샘솟기 시작하고 있다. 근거와 이유 따위 없는 자신감이 마구 생기는 이유는. 갑자기 많이 들어오는 인터뷰 제안 때문이다. 다음주에도 네개 정도가 예정되어 있다. 하나는 전화 인터뷰, 하나는 최종 인터뷰, 하나는 2차 인터뷰. 하나는 1차 인터뷰. 맞다. 그래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걸 수도 있고, 그래서 저 중에 하나는 되겠지~ 하고 마음이 안일해져버린 걸지도.


 최종 오퍼를 받았으나, 결국 거절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최종오퍼를 받자마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쁘고 감사했지만. 그 직무가, 그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직무를, 만족하지 못하는 샐러리를 받으며 일하러 간다는 것. 그건 소중한 내 인생에 대한 무례라는 결말이 나와버렸다. 


 싱가포르의 게임 회사는 함께 일할 사람들은 꽤 좋아보였다. 게임회사 직원 특유의 지쳐보이는 표정과 피곤해보이는 안색이 마음에 걸렸지만ㅋㅋ, 한국인 일본인 로컬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어 사내정치 등의 피곤한 일은 없으리라는 예상이 들었고. 일의 난이도도 어렵지 않아서 엔트리로 싱가포르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직무가 아니라는 점이 못내 나를 괴롭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내 하루의 절반을 쏟아붓는 회사에서 내 시간을 낭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이 끊이질 않았다. 원하는 직무가 아니라면 배우는 것도 별로 없을 텐데, 지속적으로 불행할 텐데, 회사에 대한 애사심은 커녕 오너십조차 없을 텐데, 서로를 위해 가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마음이 자꾸만 커져갔다. 그런데 최종 오퍼를 내게 처음으로 준 회사에, 알겠다고 일하고 싶다고 말해서 비자 프로세스까지 준비 중이라는 곳에, 어떻게 내가 갑자기 마음이 변했으니 가지 않겠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5일의 시간 동안 깊이 고민했다. 어떻게 거절할 것인가.


 나는 그 말을 좋아한다. 'Don't burn your bridge.' 이 말은 배수진 치지 말라는 뜻으로 의역 가능하다. 언제 어떻게 이 사람이나 조직, 회사 등등을 만날 지 모르니 무조건 관계는 나쁘지 않게, 사이는 둥글게, 인상은 좋게 끝맺음을 하자는 쪽이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안 좋게 끝난 관계들에 '데여버려서' 오히려 처음보다 끝을 조심하는 편으로 성격이 변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업계에서, 아니면 길에서, 아니면 친구의 친구로라도 만날 지도 모르는 관계들의 불확실성을 경계하기 위해 '좋은' 거절을 하기로 결심했다. (꼭 저처럼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가고 싶지 않다고 그냥 솔직히 말씀드리기만 하셔도 됩니다.)


(1) 거절의 명분을 찾았다.

(2) 의도적으로 말도 안되는 협상에 임했다.

(3) 다른 누군가를, 소개해줄 만한 사람을 찾았다.

(4) 거절 메일의 형식을 구글링 한 다음, 내가 거절하는 이유를 예의바르게 명시한다.

(5) 그 후 다른 사람의 레쥬메와 포트폴리오(있다면)를 보낸다. 

 


첫 번째. 내가 그 회사에 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명백했다. 체면 차리지 않고 말하자면 내가 한국에서 받던 월급보다 돈도 적었고 직무도 너무나 재미 없어 보이는 단순한 직무. 내가 배우고 성장하지 않을 거라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직무가 별로이니 안 갈게요.^^~'라고 한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매우 괘씸할 것이다. 뽑아놨더니 뭐가 어쩌고 저째? 그럼 애초에 지원하지 말던가. 라는 생각이 당연히 들겠지. 그렇다면 돈 문제라는 명분을 대야겠다.


두 번째 스텝. 회사에서 자꾸 연락이 왔다. 비자 프로세스를 빠르게 진행하고 1월 29일부터 일하기를 원하니 얼른 서류를 작성하라고. 재촉 메일도 오고, 전화도 여러번 왔다. 나는 메일로 정중하게, '저는 한 단계 높은 비자를 원하며 그에 대해서 고려해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또한 샐러리가 제가 앞서 제안드렸던 허용가능한 범위보다 낮기 때문에, 연봉 관련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 라고 전달드렸다. 사실 말이 안되는 협상이 분명했다. 비자는 현재 회사 내 이슈 때문에 격상시키기 어려운 것이 당연했다. 연봉 인상은 내가 요구한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정도의 샐러리를 주지 못한다고 할 것 같았다. 바로 그것이 내가 원하던 바!거절을 이끌어내기. (거절도 많이 당해본 놈이 잘 당하는 듯. 거절의 아이콘이라는 타이틀이 어쩐지 소중하게 느껴졌다.)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HR 담당자랑 통화해보란다. 그래서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했다. 과연 뭐라고 거절하실지 궁금했다. 역시 어쩌고 저쩌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주신다. 

"비자는 회사 내에 쿼터가 없기 때문에 해주고 싶어도 애초에 신청 자체가 불가능 하며~ 월급 같은 경우에는 수습 기간이 끝나고 내 퍼포먼스에 따라 격상시켜줄 수 있지만, 사실 네 레쥬메를 보니까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나온 경우가 있다~ 한국은 어떨 지 모르겠지만 사실 싱가포르에서 1년도 일하지 않은 사람은 그냥 수습 기간, 트레이닝 기간만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월급을 올려주지 못하는 이유를 받아들이길 바란다~"


여기서 나는 조금 빡쳤다 논리적으로 반박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이해합니다. 비자 문제는 회사 측에서 노력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겠죠.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하셨던 경력 문제를 짚고 넘어갈게요. 싱가포르와 한국은 분명히 다르고, 제가 레쥬메에 썼듯이 직전 회사에서 제가 마케팅이나 영업지원 등의 직무를 다 담당했다고 분명히 말씀 드렸습니다. 그 말은 제가 1년을 채우지 못했어도 트레이닝만 받은 것이 아닌, 실제로 제가 프로젝트나 고객 문의사항, 문제 상황 등을 다 처리하였다는 말이고요. 앞서 말씀하셨듯 싱가포르에서는 트레이닝 기간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충분히 자기 롤에 대해서 책임감을 갖고 다 진행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걸 알아주셨으면 하네요."


그러자 HR 담당자는 조금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러고 월급 100 달러를 올려주겠다고 했다. 누구 코에 붙여? 하지만 내 목적은 월급을 인상시키는 것이 아니었기에 우선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기간을 명시했다. 내일 오후까지 월급과 비자 문제 관련한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알려드리겠다고. 기다려달라고. 설명 감사하다고.


세 번째. 나를 대신해서 그 직무에 적합한 사람을, 소개해주고 나는 유유히 빠져나갈만한 상황을 만들었다. 우연히 찾았다. 그 친구에게 이러이러한 상황이다, 나는 다른 회사와 다른 직무를 원한다고 설명을 하고 혹시 괜찮다면 지원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의외로 반색을 하며 너무 좋다고했다. 그래서 그 친구의 레쥬메와 포트폴리오를 받았다.


네 번째. 전화할 필요도 없다. 메일로 인사부에 보내야지. 영어 작문 실력이 짧은 나는 (말로 찡얼찡얼 떠드는 것만 잘하고 작문은 정말 최악이다. 고쳐야 하는데.)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구글 어머니의 힘을 빌렸다. Job offer rejection letter라고 검색! 놀랐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잡 오퍼를 거절하는구나..... 하하. 그 중에 제일 멋져 보이는 거로 건져왔다. 그리고 내가 거절하는 당위성을 덧붙였다. '샐러리가 제가 생각하는 데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다섯 번째. 그렇게 메일을 작성하고, '대신 좋은 후보자를 알고 있으니 이 사람을 고려해보시길 바랍니다. 이 사람의 레쥬메와 포트폴리오를 첨부합니다.'라고 끝맺음도 완성!



 그렇게 좋은 거절은 완벽하게 마무리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취업을 간절히 원하는 구직자에게 기분 좋은 일을 한 거고, 거절해서 기분 상하지 않도록 회사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을 한 거고, 회사 입장에서도 나에 대해 나쁜 평판을 가질 일도 없이 새로운 지원자를 검토해보게 된 것이니 모두가 윈윈인 게임이다. 


 어째 사회 생활 요령만 점점 늘어나는 브런치인 것 같은데, 아직 아무도 취업 후 거절 프로세스에 대해 글을 쓰지는 않은 것 같아서 한번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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