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을 통해서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남깁니다.3회에 걸쳐 발행할 예정이고, 그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보내주신 응원과 공감의 메시지에 이 글로 저의 마음을 전합니다.
MC가 43호 가수를 호명했고, 나는 무대로 걸어갔다. 크게 긴장하진 않았다. 대기실에서, 무대 아래에서 얼마나 긴장하고 떨었건 막상 무대에 오를 때는 초연해진다. 가수에게 무대는 피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자리니까. 방송을 준비하며 나는 당일 무대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런 오디션은 처음이라 그날 어떤 기분이 들지, 얼마나 긴장이 될지, 노래는 잘 될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 지난 몇 달 동안 연습하며 보낸 시간, 그 고단함, 희망을 품은 짧은 순간들, 그리고 나의 간절함에 모든 걸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싱어게인에 지원한 이유는 남들과 조금 달랐다. 오디션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재능을 펼칠 기회를 얻기 위해 지원한다. 경쟁에 이겨서 무대를 쟁취하고, 대중의 기억에 자신을 각인시키고자 한다. 나는 처음부터 순위나 경쟁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곳에서 오랜 세월 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 얘기를 털어놓고, 사람들에게 지금의 내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다.
싱어게인 시즌2에 대한 오디션 모집 공고가 올라왔을 때 나는 이직을 고민 중인 3년 차 직장인이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중소 식품회사였다. 2018년에 입사해서 홍보와 마케팅 관련 업무를 두루 해왔다. 작은 회사여서 부서와 조금만 관련이 있는 일이면 두세 명뿐인 우리 팀으로 떨어졌는데, 돌아보면 다양한 업무를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이직을 결심한 건 이 분야에서 나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몇 년 더 일하며 나이가 든다면 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회사 생활이나 업무에는 적응이 돼 있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여기에 머물기보다 나의 시간과 노력을 내가 더 좋아하고, 더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더욱 부추긴 건 SNS에서 본 한 글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로 알려진 문장이었다.
이 글이 정말 무라카미 하루키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중요한 건 누구의 글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당시의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을 말한다. 간절히 바라는 인생이 눈앞에 있는대도 나는 손을 뻗으려 하지 않고 있던 게 아닐까? 적당히 현실에 안주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내가 정말로 바라는 삶이 있다면, 그렇게 살기 위해 더 간절히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나의 일이 세상에 가치를 남길 수 있는 것이기를 바랐다. 그리고 직장 생활을 계속하더라도 가수라는 나의 정체성을 되찾고 싶었다. 그렇게 살기 위해 내가 할 일은 더 절실하게 손을 뻗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에 싱어게인 지원 공고를 봤다. 사실은 방송작가들이 '슈가맨' 출연자들에게 몇 개월에 미리 지원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왔었다. 나도 전화를 받았지만, 두 번 모두 거절했다. 그런 규모의 방송에 나갈 실력이 되지 않았고, 지원해도 떨어질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싱어게인에서라면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최상의 노래를 들려줄 수는 없더라도 내 마음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도전할 이유가 충분했다. 이번에 도전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시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 주말, 나는 지원서를 다운 받아 내용을 적어나갔다.
데뷔년도?1997년 (아유, 오래도 됐네)
대표곡은?이해할게, 헤븐, 행복 (더 있지만 생략했다.)
주 장르는? 발라드 (생각하는 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노래 이외 특기? 평정심 유지 능력 탁월, 감정 기복이 거의 없음 (적절한 답이라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신나게 적었는데, 질문이 점점 심오해졌다.
현재 음악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와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방송 섭외가 가끔 들어오지만 오래 활동한 가수로서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현재는 회사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실버푸드 기업에서 마케팅, 홍보 업무를 2년 넘게 해왔는데, 회사원으로 근무하면서 가수로서 컨디션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방송 섭외가 오면 퇴근 후 연습실에 가서 노래 연습을 한다.
‘나는 ( ) 가수다. 나는 나 자신을 어떤 가수라 하고 싶은가?’ (빈칸을 채울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비운의) 가수다.’
내 기사나 영상에 빠지지 않고 달리는 댓글이다. 성대 결절로 갑자기 무대를 떠난, 목 관리를 못해서 경력이 끝난 비운의 가수. 이런 평가는 내가 가수로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상관없이 내게 꼬리표처럼 달려버린 수식어가 되었다. 뼈 아픈 건, 이런 평가가 가수 김현성에게 관심과 애정을 주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 인식을 깨주지 못했다.
<싱어게인2> 지원 동기/이루고 싶은 목표
‘나는 왜 안 되는 걸까?’
30대 초반 무렵에 가수를 완전히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컨디션 관리의 어려움과 무대에서의 실수에 대한 두려움, 전처럼 노래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 그러다 2014년 무렵, 예전 가수를 소환하는 붐이 일었다. 나는 팬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고, 오래 휴식을 취했던 만큼 목소리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지 않았을까 기대하며 복귀를 결정했다.
슈가맨으로 다시 가수로 돌아왔고, 그 후로 보컬 레슨을 받으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목소리는 기대만큼 돌아오지 않았다. 성대를 다쳤던, 활동을 쉬었던 가수들이 다시 건강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왜 나는 안 되는 걸까?’ 하고 자책하기도 했다. 나는 소속사의 아이돌 연습생들과 섞여 연습하면서, 거의 1년 6개월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노래만 하며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노래는 예전처럼 되지 않았다. 부상 당한 운동선수가 어떤 이유에선가 재활을 아무리 해도 예전처럼 몸이 돌아오지 않아서 은퇴하게 되는 것처럼, 나도 그런 걸까, 헛된 희망인 건가, 하는 회의감이 커졌고 그사이 생활도 피폐해졌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결심한 가수 복귀는 성공적이지 않았다. 비운의 가수라는 사람들의 인식도 그래도 남아 있다. 지금은 회사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무작정 연습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도 노래에 대한 마음은 놓지 않고 있다. 퇴근 후 근처 연습실에서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밴드를 결성해 합주도 하고, 작년에는 신곡을 무사히(?) 녹음해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내 노래가 만족스럽지는 않다. 그렇게 편하게 잘 되던 노래가 지금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왜 잘 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은 그대로 남아 있다.
내가 싱어게인에 지원하는 이유는 다시 유명한 가수가 되고 싶다거나 예전의 인기가 그리워서는 아니다. 단지 가수로서 명예를 지키고 싶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비운의 가수’라는 인식을 지우고 싶다. 예전처럼 노래한다는 게 아직 너무 어려운 과제지만 싱어게인을 통해 불명예스런 꼬리표를 떼고, 온전히 가수 김현성으로 기억에 남고 싶다.
꼭 하고 싶은 한 마디 (이 부분은 왜 존댓말로 적었는지 모르겠다.)
걱정이 앞섭니다. 나의 바람은 바람일 뿐이고, 결국 실력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니까요. 과연 내가 준비가 된 것일까. 의욕만 앞서고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 아닌가 염려됩니다. 모두 각오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지원서 작성을 마쳤다. 방송 출연의 기회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 나의 진심을 담았다. 이제 더 어려운 관문이 남아 있었다. 직접 부른 노래를 영상으로 찍어 보내야 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노래 연습을 꾸준히 하기란 쉽지 않다. 체력적으로도 어렵지만, 그보다 힘든 건 동기부여의 측면이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려면 목표 의식이 뚜렷해야 하는데 그러기에 방송만큼 좋은 구실은 없다. 내가 싱어게인에 지원하기로 생각한 건 정말 출연을 하게 되건 아니건 준비하는 동안에는 꾸준히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노래가 약간이라도 좋아진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내게 노래 연습은 고된 일이었다. 즐기며 노래한 지는 10년도 더 된 것 같다. 음률에 감성을 싣는 것이 아니라 재활하듯 반복하는 훈련의 과정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좌절과 희망이 교차했다. 노래는 즐겁지 않은, 고통스러운 것이 돼버렸다. 그런데도 계속하는 이유는 지원서에 적었듯이 가수로서 명예를 지키고 싶어서였다. 아니, 그보다 다시 ‘노래’할 수 있길 바랐다. 내게 싱어게인은 말 그대로 '다시 노래하는' 것'이었다. 이 고된 여정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희망적인 건 그 무렵 노래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따금 방송이나 녹음을 하면서 꾸준히 연습해 온 덕분이었다. 심한 떨림도 줄어들었고, 노래하는 근육에도 힘이 붙었다. 이런 흐름이면 촬영 시점에는 어느 정도 좋아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목소리가 돌아오고 있었다. 누구도 이런 변화를 알지 못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혼자 해낸 것이 아니었다. 재활과 같은 연습 과정 동안 곁에서 항상 노래를 들어주고 조언해준 한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