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에는 아무도, 누구의 목소리도 없었다. 먹고살기 위한 일에 점심시간은 중요했다. 금빛 배지를 달고 정장을 빼입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며 연신 통화를 해대는 상상 속 어수선한 분위기는 실제와 달랐다. 머쓱하고 어색한 공기를 마시며 복도 의자에 앉아있자니 누군가 다가와 용건을 물을까 벽에 걸린 그림만 한없이 감상했다. 우리 외에 어린이는 한 명도 없었고 원색의 운동복차림은 더더욱 없었다.
2시가 넘어서니 각 실 전광판에는 오후 재판 스케줄이 이제야 생각난 기억처럼 깜빡거리며 나타났다. 아이 손을 잡은 내 손이 축축했다. 뒷문을 빼꼼히 열고 바로 보이는 좌석에 미끄러지듯 앉았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조심했지만 말씀 중인 판사님 시선이 우리에게 한번 왔다가, 갔다. 찰나의 시선 속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는데 예상했던 시선이라 가뿐히 무시했다. 앉은자리에서 보이는 방의 크기는 상당히 아담했다. 티브이에서 인기리에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나오는 법정이 도서관과 운동장, 그리고 수영장까지 갖춘 학교라면 이곳은 동네 공부방 같았다. 원고와 피고는 나란히 왼편과 오른편에 앉아 판사를 마주 보고 있었고 그들 뒤쪽으로 두세 줄 뒤에 우리가 앉아있었으니 재판 참여자들이 의아함이 당연스럽다. 상담 선생님처럼 차근차근 원고와 피고를 화해시키는 판사님의 얼굴엔 깊고 인자한 주름이 선명했다.
"엄마, 뭐야 엄청 좁은데? 티브이랑 너무 다른데?"
번호로 명기되는 사건들은 순서에 따라 참여자를 바꿔가며 약 5-10분 정도 업데이트를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30분 정도 방청을 하면서 서너 건의 사건을 보았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한 사건이 있다. 회사 직원으로 보이는 원고와 변호인을 대동한 피고가 재판 전부터 준비한 서류를 살피는 낯빛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피고는 영양보조제 회사였는데 제품의 성분과 관계없는 효능을 광고에 노출한 잘못으로 허위광고를 의심받는 상황이었다. 항목별로 근거를 정리해서 주장하는 원고는 철두철미한 자료를 무기로 들이댔고, 비집을 틈 없이 빽빽한 논거 속에서 피고의 변호사는 잘못을 인정하고 합의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내보였다. 원고가 무기를 흔들 때마다피고의 한숨 속에서는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엄마, 원고가 변호사도 아닌데 말도 잘하고 똑똑해. 피고는 변호사가 변호사 같지가 않아."
방청석에 정숙을 요구하는 엄숙한 공기, 말을 더듬는 법이 없는 논리 정연한 양쪽의 변론, 그리고 접전. 매체를 통해 뇌리에 저장된 법정의 모습은 이러했다. 현실 세계에는 인정 많고 미소 띤 판사의 얼굴, 말솜씨가 조금 부족한 변호사가 있었고 조정과 권고가 많은 지방법원 특성상 땅! 땅! 땅! 소리는 들어볼 수 없었다. 공짜 연극표로 들어온 극장에서 연극 중간에 나가버리는 예의 없는 관객처럼 우리는 적당한 시점에 민망한 엉덩이를 조용히 일으켰다.
부잣집 친구 집에 훠궈 점심 초대를 받은 날, 접시를 켜켜이 쌓아놓을 정도로 다양하게 준비된 식재료에 집주인의 넉넉한 인심이 느껴졌다. 윗접시의 재료들을 맛보고 한 층 치워내니 아래층에 다시 새로운 상차림이 펼쳐진다. 산해진미, 육해공, 고향 특산물까지 없는 것 빼곤 다 있었다. 인원수보다 두 배 많은 젓가락이 쉼 없이 휘젓고 지나가는 훠궈 육수는 어느새 아밀라아제 탕이 되어버린다. 1인용 훠궈냄비는 여럿이 한 냄비를 공유하는 것보다 훨씬 위생적이었다.
주인의 우스갯소리에 게걸스러운 웃음으로 화답하고, 다른 손님들의 아이를 교대로 돌봐주며, 식탁 밑으로 기어와 낑낑 소리를 내며 떡 줄 사람보다 흥분한 강아지가 자꾸 발을 건드렸다. 그 사이 훠궈 육수의 기포가 잔잔해지며 연료가 바닥난 레인지에 주유하기를 여러 번. 연료에 비례해 줄어드는 훠궈 국물은 생수로 리필했다. 처음부터 간간했던 국물은 생수를 추가해도 엷어지지 않았다. 국물 리필용으로 손님들 자리에 한 병씩 놓인 투명하고 길쭉한 생수병 라벨에는 '질병을 치유하는 물'이라는 광고 문구가 선명했다. 주인 언니는 이 물 맛이 좋아 멀리서 공수해다 마시고, 투병 중인 부모님 댁에도 택배로 계속 보내 드린다고 했다. 물 맛이 싫어 음료수만 마시던 식구들도 이 물만은 마신다고 덧붙였다.
물 맛은 그냥 물 맛이었다. 성분표에는 일반 생수와 마찬가지로 각종 천연 미네랄이 표기되어 있었다. 미네랄의 함량에 따라 물 맛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미각이 물 맛으로 수용하는 범위의 물이었다.
병 라벨에 거창하게 쓰인 광고 카피에 한동안 머물렀다. 인체의 70프로 이상이 물로 이루어진 만큼 물이 중요한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적정량 마셔줘야 순환과 배뇨에 이롭기 때문에 우리 몸에 필수적인 물이다. 그런데 질병을 치유해 주는 물이 있을까를 생각하면 순간 아득해진다. 먼 옛날 불로장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으러 떠나던 길가메시도 결국 찾을 수 없던 물을 그럼 나는 지금 마시고 있는 꼴이 된다. 광고 카피가 주는 심리적 위로에 대부분이 넘어갔다.
생수 시장
물론 누군가는 오래오래 살며 이 광고를 증명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과연 이 물만으로?
충분히 납득할만한 근거를 가진 광고인가를 생각하면 나는 그날의 허위광고 재판이 떠오른다. 합의해 달라고 간청하는 변호사의 저자세가 생수병과 서서히 겹쳐진다. 이런 문구에 누가 속을까마는 순진한 소비자는 아무래도 듣고 싶은 광고 제품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광고 문구를 진실과 혼동하여 멀리서도 공수해서 마실 정도의 순수한 소비자가 이 땅엔 아직 많다.
보이스 피싱에 속은 피해자들을 우매한 인간으로 내몰던 사람들이 이미 일상에서 생수 한 병에도 쉽게 넘어가는 피해자가 되어 있는 줄은 모른다. 광고의 탈을 쓴 거짓과 허무가 난무한다. 많은 재산을 후대에 남겨주려는 마음에 앞서, 분별력 있는 시각을 마땅히 전해야 할 유산으로 삼아야 한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이고, 코를 베이지 않으려면 눈을 감아서도 안된다. 사기는 치지도 당하지도 않는 것이 제일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