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소리 Dec 06. 2024

다이내믹 코리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인 것이라는 애국 슬로건을 반쯤은 긍정했다. 국적기에서 비빔밥이 기내식으로 나오고, 한국식 비건 메뉴를 선택하면 들깨 시래기 볶음 같은 향토 음식이 나오는 세상이다. 비행기 뒷좌석에 앉은 외국인의 대화를 무심코 엿듣게 된 날이 있었다. "비빔밥 먹어봤어? 다 넣고 섞는데 되게 독특해. 그런 건 처음 봤어. 매운 건 조절할 수 있고 한 번쯤 먹어보는 것을 추천해." 

비빔밥을 먹어본 외국인과 그렇지 않은 옆자리 외국인의 대화에서 음식의 시각효과와 풍미에 대한 밀도 있는 단어들이 사뭇 진지했다. 한국은 이야기의 소재가 충분히 되고 있었다.


어젯밤 30인분 떡볶이 양념을 만들어 저으면서 레시피라고는 딱히 없는 엄마표 음식에 대해 떠올렸다. 이것 조금, 저것 조금과 손맛으로 점철되는 한국 음식을 서양식 계량스푼으로 정량 계량한다는 것부터가 어쩐지 마뜩잖다. 계량하는 행위부터가 별로 한국적이라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산더미 같은 배추에 뿌려지는 천일염의 양을, 김치 양념에 들어가는 젓국의 양을 누가 어느 정도를 정량이라 말할 수 있으며 숫자로 나타낼 수 있을까. 스푼의 개수로 풀어진 요리법을 보며 오리지널 한국맛을 구현할 수 있는 외국 사람은 있을 수 있을까. 절이고 무치고, 만드는 방식은 같아도 용량에 대한 개념이 없어 완성품의 맛은 집집마다 제각각이다.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은 것은 다른 이의 맛에 대한 이해심 또한 너그러운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너그러운 미각이라 할지라도 한 끝차이로 선을 넘어가면 그건 절대 용납되지 못하는 것이 한국 음식이기도 하다. 김치 양념이 적게 묻어 싱겁다는 한 중국인이 김치에 간장을 넣는 것을 보았을 때가 딱 그랬다. 퓨전 음식이란 것이 본래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럴수록 오리지널 한국 맛은 멀어지기 마련이다. 울타리가 성글다고 울타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고추장과 간장, 그리고 설탕을 눈대중으로 넣고 휙휙 저었다. 양념의 필수 3요소를 갖춰 울타리의 선을 기꺼이 준수했다. 미미하게 부족한 감칠맛은 라면스프 한봉으로 가뿐하게 해결했음은 영업 비밀이다. 


다국적 학생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자는 취지의 '인터내셔널 페어'.

상하이 한국 문화원에서 대여해 온 여자 한복과 안동 하회탈을 벽에 걸어 장식했다. 테이블을 준비하고 그 위에 전기냄비 두 개에 물을 올려 하나는 어묵탕을 끓이고, 다른 하나는 떡볶이를 볶는다. 전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두 개의 냄비를 끓여대는 통에 발전기는 자주 먹통이 돼 버린다. 전원을 수차례 껐다 켜기를 반복하며 떡을 끓이고 어묵 국물을 내는 손길들이 매년의 경험으로 정전에도 노련하다. 

기포가 올라오고 떡과 어묵이 적당히 익기 시작하면 불기 전까지 다 팔아 내는 것이 관건인데, 고추장의 매콤함을 입은 증기가 체육관을 채우고 문틈 사이로 빠져나가 무심히 지나는 후각들을 부여잡았다. 호객 행위에 못 이긴 듯 매콤하도고 달큼한 냄새의 근원을 찾는 이들이 하나둘씩 한국 테이블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오뎅이라고 하는 일본인에게 어묵이라는 한국식 표현을 가르쳐주고, 오니기리라고 부르는 서양학생에게 삼각김밥이라는 단어를 알려주었다. 초코파이의 情을 나누고, 추억의 간식 논두렁을 한주먹씩 나눠가며 오도독 씹었다. 멈출 수 없는 고소한 맛에 취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케이팝 굿즈가 유혹을 시작한다. 두 딸을 둔 엄마가 아이들의 취향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녀의 선택은 아이들의 마음을 정확히 반영한 것 같았다. 그룹 멤버 이름을 알 리 없는 이들이 그룹 정보를 쫙 꿰고 있는 이들을 상대로 '완판'을 제일 먼저 외쳤다.


시골학교에 도서관을 지어주자는 취지로 시작된 행사에서 한국 테이블의 고정적인 선방이 자랑스럽다. 색동 앞치마를 입은 엄마들의 장사 수완이 한국 음식의 레시피와 닮았다. 깎아주고, 끼워 팔고, 덤으로 주며 얼마를 줬는지 계량하지 않는 情 문화다. 10위안으로 20위안짜리 떡볶이를 살 수 있겠냐는 아이의 물음에 그 용기를 칭찬하며 30위안어치 떡볶이를 담아준다. 국물을 좋아하는 아이에겐 어묵 국물도 든든하게 따라준다. 태양초 매운맛에 맵지 않은 따뜻함을 담아주는 엄마들의 얼굴이 흡족한 듯 웃는다. 횡재라도 한 듯 기뻐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머릿속 계산기를 작동해 볼 생각은 진작에 없다. 


일찌감치 완판과 매진 사인을 걸고 노곤한 다리를 쉬었다. 주문한 커피도 때마침 도착하여 오후의 나른한 기운을 날려 보내고, 시간은 나른하고 느슨해진 행사 막바지로 흘러갔다. 로제의 'APT'가 조용했던 스피커에서 살수차의 물줄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느릿해져 가던 행사장의 박자는 갑자기 흥분으로 전환되며 아이들은 물개박수 같은 안무를 하나같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흥겨운 멜로디와 중독성 있는 후렴구에 학생들과 참여자들의 호응은 줄이어 재생되는 케이팝과 함께 무르익는다. 후렴구에서 반짝하던 기세는 다시 도입으로 돌아가면 다시 잠잠해지곤 했다. 한국어 가사를 아는 한국 아이들만 한국어 가사를 자랑스럽게 따라 부르고 있다. 무슨 뜻인지, 어떤 발음을 내야 하는지 알리 없는 외국학생들의 웅얼거림은 후렴구만 잠잠히 기다렸다. 우리 아이들은 한국을 자랑스러워했다. 적극적으로 행사에 동참하신 한국 부모님의 공헌과 한국음식의 매력, 그리고 현란한 댄스를 겸비한 케이팝은 온종일 행사의 중심에 있었다. 


최근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전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이슈는 한국 디스카운트 현상이 되어 각 분야로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정치인들의 이슈라고 생각하자니 국민으로서의 의무도 가볍지 않다. 누구는 한국을 세우고, 누구는 한국을 깎아 드시고 있다. 다들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이유가 있듯, 의문의 정치인도 나름의 이유를 대고 있다. 그것이 유익인지 무익인지 해악인지 캐묻고 뜯는 싸움터를 조금 벗어나면 국민들은 대체로 잘하고 있다. 우매한 리더십에 똑똑한 국민이 있다. 우리는 선을 중시하고, 선 넘는 이를 주시한다. 때문에 이로 인한 한국의 손익을 따져볼 때, 제로썸이기보다는 조금은 남는 쪽으로, 조금은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어본다. 한걸음 퇴보를 통해 두걸음 전진의 방향을 선택하는 국민이 되는 것 같아 내심 기쁜 마음도 있다. 참으로 다이내믹한 곳이다. 한국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