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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소리 Oct 14. 2024

안부와 배웅으로

너와 나의 인사 방식

월동 준비가 시작된 건지, 초록이 어느새 빛을 잃었다. 중력을 거슬러 가지로, 잔가지로, 잎사귀로 뻗어나가던 양분과 에너지가 알 수 없는 벽에 부딪혀 잎사귀로 가는 길이 꽉 막혔다. 윤기를 잃어버린 머리칼이 되어 감각도 고통도 모른 채 떠날 때를 기다리는 이파리에 다 비슷비슷한 우주의 생명이 담겨있다. 한 세월을 함께한 몸뚱이와의 인사가 짧을지 길어질지 몰라 매일이 이별 인사다. 때가 되면 이파리는 자신의 몸을 뜨겁게 불사르며 지나던 행인의 눈동자에서 잠깐을 살고 다시 심연으로 떨어질테지. 그리고 우리는 비 내리는 가로수길의 가랑잎을 바라보며 익숙한 우수에 젖을테지. 쉼 없는 이별을 직관하는 행인의 눈동자에 상념이 드리워질 낙엽철이 곧이다.


온 생을 불태우며 사는 작은 몸집의 네가 문득 궁금했다. 네 언어와 내 언어가 같길 바랐고, 네 목소리가 듣고 싶었고, 그런 시간이 지나는 사이, 너를 깜빡 잊었다. 떠오른 네 생각이 이번에도 상상으로만 그칠까 방향을 틀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수나무 꽃이 작년보다 한 달이나 늦었다. 방안의 방향제처럼 공기에 넓게 떠있는 향내에 머리가 아찔하다. 한 그루의 꽃이 은은하고, 두 그루가 모이면 향은 농축되며 멀리 간다. 복리로 불어나는 계화 향이 우주까지 퍼져나갈 듯 기세가 만만하다. 향에 이끌려 안쪽으로 더 안쪽으로 들어간 자리, 나는 너를 만났다.

3년 전쯤 네가 여기로 이사 온 그날을 기억한다. 군락지에서 벗어나 인공 숲으로 끌려와 너는 억지로 뿌리를 박았다. 집성촌이 그렇듯 몇 대에 걸쳐 삶의 터전이 되고 엄마와 아빠의 고향이 나의 고향이 되는 그 고향에서 너는 멀리 떠나왔다. 비 오는 그날의 축축하다 못해 물컹한 땅을 또렷이 기억한다. 지지대를 세워 작고 어린 몸뚱이를 고정하니 수갑을 풀어주고 족쇄를 채운 꼴이 되었다. 엉거주춤 서서 무게 중심을 잡는 너의 작은 떨림이 선명했다.


여기는 이산가족의 군락지이다. 인간이 공원이란 이름으로, 아니 숲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이들을 모아두고 대량으로 영양제를 찔러준다. 나무를 위해 찔러준 수액에 인간의 이기적 냄새가 진동한다.


빠알간 손바닥을 내밀며 바람 소리로 인사하는 네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잎사귀를 어루만지고, 가지 사이에 난 옹이를 매만지고, 이 전보다 두꺼워진 밑동을 쓸어내렸다. 누구의 시선 따위 접어두고 잠시 몸을 붙여 너를 안으니 굳건히 버텨준 네 몸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많았다.

붉었던 잎이 물기를 잃고 끝이 꼬부라지기 시작했다. 아기 손처럼 말린 작은 잎이 마른 나물처럼 얇고 주름졌다. 잎을 떨궈내고 알몸이 될 일련의 리추얼을 앞둔 아기단풍의 얼굴에 두려움이 없었다. 올해도 볏짚 옷을 둘러주러 들르겠노라고 혼잣말의 약속을 남겼다.  

다시 만나자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선 발걸음이 가벼웠다. 고향을 떠나 타향을 고향 삼아 사는 내 안의 아기단풍이 그를 그리워 했나 보다. 작은 분신으로 집까지 배웅해 준 너의 동행에 너의 마음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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