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래범 Nov 17. 2021

너에게 가는 길목에 '우리'가 있어

영화 <너에게 가는 길> 리뷰

삶은 어쩌면 자신의 존재 방식을 공고히하여 그 외연을 천천히 키워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 진실로 아름다워지는 때란 그 외연이 타인의 세계에까지 가 닿아 그의 존재 방식까지도 모조리 사랑해버리는, 그 저항할 수 없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이 매커니즘은 다양한 이름의 관계들을 만들어내는데 가족, 연인, 친구, 동료, 부부 등이 그 예이다. 모두 앞서 설명한 과정이 변주를 이룬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많은 장벽에 부딪혀 그 당연하고 필연적인 삶의 과정마저 적절히 경험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자신의 삶의 일부인 그들을 위해 기꺼이 함께 장벽에 몸을 부딪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즘은 앞서 말한 가족, 연인 등의 각각의 관계의 범위를 확장해나가는 것이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는 생각을 한다. 많은 이들이 이를 막연히 바라며 시간의 흐름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사실 생각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용감한 이들의 존재가 싸워 이룬 결과라는 사실을 망각하기 쉽다.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은 그들이 오래 잊히지 않기를, 그들이 싸우는 동기와 이유가 퇴색되기 않기를 바라며, 더 나아가 나 역시 그들과 걸음을 함께할 것을 단단히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퀴어 당사자들이 논하는 퀴어 담론에는 비교적 익숙해졌지만,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서사는 충분히 발화되지 않았다고 여긴다. 단독적인 퀴어의 존재뿐만 아니라 그들이 관계 맺고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상과 관련지어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느낀다. 나 역시 <너에게 가는 길> 관람에 앞서 단순히 퀴어 자녀를 둔 부모의 내외적 갈등, 삶의 부침 등을 활발히 발생하는 퀴어 담론과 연결지어 발화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훌륭한 가족 영화이자 여성 서사라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 자녀들의 소수자성과 어머니로서, 또 여성으로서의 소수자성이 여러 지점에서 만나 함께 공명해가는 사랑의 서사임을 깊이 실감했다. 


<너에게 가는 길>은 한 번 보면 퀴어 영화, 두 번 보면 가족 영화, 세 번 보면 여성 영화, 네 번 보면 인생 영화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 비비안 님 / 11월 12일 용산아이파크몰CGV 시사회에서



<너에게 가는 길>을 빛내는 두 주인공은 34년차 소방 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활동명 '나비'와 27년차 항공 승무원으로 살아온 '비비안'이다. 두 여성은 성소수자부모모임(#PFLAG)의 일원으로, 퀴어 자녀들을 위해 퀴어 인권 신장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투사들이기도 하다. '나비'는 FTM 트렌지션 과정에 놓인 아들 '한결'의 수술과 소송 과정을 함께하며, '비비안'은 게이 아들 '예준'과 그의 연인이 함께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함께한다. 



퀴어 자녀와 그 부모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면 가슴이 꽉 막혀오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몇년 전 레즈비언 딸과 어머니의 갈등 관계를 다룬 <딸의 대하여>를 읽으며 한숨 짓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고, 용기를 내어 부모에게 커밍아웃 한 후 동성애 전환 치료에 강제로 투입되는 폭력에 노출된 퀴어들의 다큐 영상을 본 적도 있다. 그러나 퀴어 자녀와 함께 성별 정정 소송을 함께하고, 퀴어 퍼레이드를 걸을 정도의 적극적 지지를 보이는 부모의 모습은 내게 무척이나 낯설었다. 제작사 '연분홍치마'의 성소수자와 그를 둘러싼 다양한 양상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려는 시도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시의적절하게 느껴졌다. 


 <너에게 가는 길>의 두 여성 모두 자녀들의 커밍아웃에 부단한 내적 갈등을 경험했지만, 자신이 쏟아내는 사랑에는 조건이 없음을 깨닫고 자녀들만의 존재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반기를 던진다. 자녀의 존재 방식이 사회의 틀에 맞지 않을 때, 비비안과 나비는 자녀를 틀에 맞추려 하기보다는 틀을 부수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마음껏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틀, 그것이 과연 유지될 필요가 있는가. 영화 내내 그들은 끊임없이 소리친다. 



이전에 퀴어 지인에게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자녀가 퀴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부모들은 '퀴어의 삶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내 자녀는가 당사자는 아니길 바란다'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씁쓸한 기분과 함께 따라오는 생각은 그들이 몰아치는 편견 차별, 끊임없이 존재를 부정당해야만 하는 모든 순간을 자녀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틀을 부수고 바꾸는 것은 너무나 지난한 과정이고, 그 주인공으로 나서서 싸우기에는 개개인의 삶들은 너무나 고단하며, 누군가는 소시민적이라 욕할 지라도 소시민의 신분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은 녹록찮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들에게 다른 가능성을 제시할 지도 모른다. '함께' 싸운다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세상의 틀에 맞춰 내 존재를 인정 받아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 누구의 존재도 감히 인정 받고 해주고의 논의 위에 놓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너에게 가는 길>에는 비비안과 나비를 비롯한 다수의 부모들이 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그들은 활동명과 함께 자녀의 성정체성, 성지향성, 성별 등을 밝히고 활동을 하게 된 경위를 비롯한 다양한 이야기로 스스로를 소개한다. 나비 님은 아들을 바이젠더, 팬로맨틱, 에이섹슈얼 FTM 트렌스젠더로 소개하는데 모두 이러한 정체화를 유난스럽게 여기지 않고 진중하게 경청하는 장면이 특히 마음을 울렸다. 각 개인의 존재 방식을 담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그릇들이 생겨나고, 그것이 활발히 담론화 되는 것 자체가 퀴어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비비안과 그의 아들 예준은 아들이 유학을 하고 있는 캐나다에서 함께 퀴어 축제에 참여하며 모두가 하나됨을 느끼는 짜릿한 경험을 공유한다. 예준이 동성 애인과 연애를 시작하고 관계를 공고히 하는 과정 속에는 항상 엄마 비비안이 존재한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예준과 그의 애인이 찍은 스냅사진을 구경하다가 비비안 역시 남편과 연인이었던 시절의 사진을 함께 꺼내두고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아들 예준과 엄마 비비안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관계 맺어가며 그것을 사진으로서 오래 남기고 싶은 열망 하에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인다. 가족의 범위가 확장되고 다양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영화나 책을 보며 잘 울지 않게 되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눈이 발갛게 부을 정도로 펑펑 울었다. 너무나 멋진 중년 여성들의 성장담이었고, 단단한 가족의 이야기였다. '너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기꺼이 나를 던지겠다' 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상영관의 모든 관객들을 울렸다. 비비안 님의 말씀과 달리 한 번 보았을 뿐인데도 내 안에서 퀴어, 가족, 여성 영화이자 인생 영화로 인식되어버린 것이다.  


<너에게 가는 길>이라는 제목은 1차적으로는 자녀들의 세상을 향해 매일 조금씩 더 다가서겠다는 두 엄마이자 여성의 의지가 담겨있다. 그러나 타인의 존재 방식에 빗대어 나 자신을 이해하는 '나에게 가는 길'이자 이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깨닫고 가족을 이뤄가는 '우리에게 가는 길'로 확장된다. 


앞으로 나 역시 꾸준히 기성 세대로 굳어져 갈 텐데 과연 어른 다운 어른, 열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 자주 괴로웠었다. 하지만 <너에게 가는 길>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나는 분명 고이기 보다는 꾸준히 성장해갈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자신의 존재 방식을 이해하고, 그를 통해 타인의 것 역시 흡수할 수 있는 스폰지 같은 마음을 키워가면 되는 것이다. 


원문: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6912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의 낭만적 얼굴을 들추다, '로테/운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