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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범 Sep 06. 2024

[연극 리뷰] 녹아들며 더 진해지는 국물의 맛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

 윤동주 시인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의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그가 끊임없이 부끄러움을 토로하던 인간이었다는 점도 큰 몫을 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인간상을 동경하는 듯 싶다. 부끄러움이란 높은 곳에서도 기꺼이 허리를 접어 아래를 굽어보게, 그로 인한 목과 허리의 통증마저 부끄러워 하게, 이에 결국 아래로 손을 뻗거나 직접 다리를 움직여 굽이 내려가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인간상을 동경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그 감각을 잊은 지 오래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핑계를 찾고, 자기 연민에 휩싸이고, 시야를 좁히는 데 더 익숙하다. 특히나 자신과 완전히 다른 세계를 공유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에게 이 옹졸한 방어기제는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진다.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그중에서도 '경계에 선 이들'을 다룸으로써 우리 부끄러움의 현주소를 묻는 작품이다. 작은 오만함이, 또 무지가 그들이 서 있을 경계마저 지워버리고 공동체라는 면(面)으로의 출입로를 닫어버린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극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모두 다른 장소를 배경으로 한 5개의 이야기는 언뜻 접점 없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특정 키워드나 유사 상황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연결되어 있다. 극을 따라가다 보면 이 느슨한 연결이 얼마나 영리하게 짜여져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파트 '사리아에서 있었던 일'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났던 두 남녀가 서울의 등산로에서 재회해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다. 소소하게 추억을 회상하던 둘은 헤어짐의 길목에서 먼 타지의 사람에게 들은 'Shame on you(당신, 부끄러운 줄 알아요)'라는 대사를 곱씹는다. 한국에서 입양한 자신의 큰 딸의 최초의 기억이 비행기에서 울다 깨다를 반복하던 순간이라며 두 남녀에게 건넸다던 한 노인의 말은, 감히 순례길에서 마주할 것이라고는 예상도 할 수 없는 감정을 안겨준다. 이 첫 파트는 해당 극이 관객에게 지구 반대편에서야 마주한 이 부끄러움의 상흔을 다룰 것을 선언하며 포문을 연다.


두 번째 파트 '해방촌에서'는 이태원의 한 부동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해방촌을 마음에 들어한 여선생이 부동산을 찾아온 상황, 공인중개사와 그의 친구인 셰프는 해방촌의 역사와 풍경에 대해 설명해준다. 선생 역시 해방촌을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며 그 '타인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나의 삶에까지 진득히 스며든 역사' 이야기에 올라탄다. 손님이 떠나자, 중개사는 그에게 보여준 집의 풍경이 유년 시절 자신이 내려다보던 그것과 같음을 회상한다. 북에서 남하하여 갈 곳 없던 이들이 모여 살던 해방촌은 그 이름만큼이나 복잡한 역사를 담은 곳으로,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던 이들이 어떤 얼굴을 하며 우리 곁에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세 번째 파트 '노량진에서'는 이제는 중년이 된 삼남매가 노량진의 손바닥만한 집에서 살았던 유년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이다. 아버지가 남긴 의문의 시골 임야 땅에 대해 얘기하던 셋은 그 정체를 추측하다 간만에 추억여행에 빠져든다. 미군 부대에서 일하던 아버지,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의 동료 일꾼인 해방촌 아저씨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미군의 철수와 함께 뿔뿔이 흩어진 정겨운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아버지가 잠꼬대처럼 중얼거렸다는 'Shame on you'라는 말은, 시대를 건너 자식들의 입에도 무겁게 맴돌아 사라지지 못한다.


극의 제목이자 네 번째 파트인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노르웨이로 입양 보내졌던 남자 '욘 크리스텐션'의 이야기이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야 생모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국에 온 그는 몇 년 후, 술에 절은 채 사망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한국에서 그와 연을 쌓아온 봉사자들과 연출가는 그런 욘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이제는 떠나버린 욘의 진짜 심정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갈등과 방황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제3자인 우리는 과연 그의 이야기를 어떻게 수용하고 또 서사화 할 수 있을지, 어떤 것이 또 다른 욘들을 위한 길일지 고민하게 한다.


마지막 파트인 '의정부 부대찌개'는 어머니의 제삿날을 맞이해 모인 두 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가족 모두가 둘러 앉아 부대찌개 재료를 말하는 게임을 하는가 하면, 둘째는 어머니가 운영하던 부대찌개 집을 이어 받고 싶음을 밝히고, 첫째 내외는 돈 문제로 실랑을 벌이기도 하는 등 여느 집과 다름 없는 우리네 삶의 풍경들이 스쳐간다. 


그곳에는 베트남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도망친 끝에 우연히 의정부 부대찌개 집의 일원이 된 '띠하'가 가족의 일원으로서 녹아 들어가 있다. 둘째는 띠하가 손끝이 야무지고 성실하다며, 부대찌개 집을 물려받을 생각도 띠하의 든든한 존재 덕에 할 수 있었음을 밝힌다. 북미권에서 통용되는 '샐러드'나 '멜팅 팟'의 이미지처럼, 마치 온갖 재료들이 한 데 모여 고유의 맛을 내는 부대찌개는 한국이 이어가야 할 이상적인 사회의 표상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이렇게 지구 반대편으로까지 퍼진,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부끄러움의 역사를 알리며 시작한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우리네 삶의 풍경과 추억에 틈틈이 박혀있던 '경계에 선 자'들의 존재를 알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서사화 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며, 마침내 띠하와 부대찌개집 가족들을 통해 그들에게 공동체의 한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며 끝을 낸다. 이 일련의 흐름은 메시지를 강요하기 보다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스며든다.


그렇기에 추억의 풍경처럼 이야기는 무던히 스며들 수 있으리라. 무심히 지나쳐온 일상의 풍경들, 그 속에 알알이 박힌 조금은 낯설지만 어딘가 우리를 지나치게 닮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극을 따라가다 보면 먹먹한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9월 8일까지,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 오후 3시에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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