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는 한식 조리사 자격증이 있다, 자취 짬밥도 4~5년 정도는 되었고 요리하는 게 귀찮아서 잘 안 했던 것뿐이지,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라 이론, 실기 같이 한 달 좀 넘게 공부하고 시험을 치렀는데 둘 다 두 번만에 붙었다(참고로 한식 조리사 자격증 합격률은 30퍼센트 대이다)
이혼 준비하면서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게 남자가 애 밥 해먹이기도 힘든데 괜찮겠냐 였는데, 집에 오실 때 몇 번 밥 해드리니까 그런 말은 쏙 들어가셨다, 이제 그 대신에 여자아이라 엄마가 키우는 게 낫지 않겠냐로 노선을 바꾸시긴 했지만
나는 레시피 정량을 준수하는 사람이라 아내가 집을 나간 후에는 계량 저울을 구입해서 요리를 했다, 급할 때는 그냥 대충 눈짐작으로 때려넣긴 하지만 아직까지 폭망이라고 할만한 음식은 딱 한번 있었다, 소고기죽 해주려다가 소고기가 없어서 다른 걸 넣었더니 기상천외한 맛이 나는 죽이 완성되었었지...
요즘은 그냥 무난하게 하려고 한다, 두 명이서 먹어야 할 양이니 많이 할 필요가 없는데 하다 보면 꼭 조금씩 남아서 음식물쓰레기 처리가 된다, 나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좋아하는데 1인분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먹고 남으면 다음날 잘 안 먹으니까 버리게 돼서 요즘은 적게 만드는 법을 연구를 한다
양파는 사면 씻고 껍질을 벗겨 밀폐용기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밖에 내놨더니 날이 더워져서 그런지 금방 상해버리더라, 일부러 작은망껄 사서 한 달 안에 다 먹으려고 노력한다, 대파 같은 경우에는 흙을 털어내고 겉 껍질을 벗기고 썰어서 냉동실에 얼린다, 다진 파가 필요하면 아침에 출근할 때 냉장고에 넣어두고 퇴근해서 녹은 파를 다져 사용하고, 육수를 내야 할 때는 그냥 얼어있는 파를 육수 팩에 멸치와 북어 같은 것과 같이 넣고 육수를 낸다 한번 낼 때 2리터 정도 내놓고 식혀서 냉장실에 넣어두면 그것도 한 1~2주는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김치는 내가 능력이 안돼서. 집에서 얻어먹는다 나는 나이가 먹었어도 생김치를 좋아해서 최대한 안 익게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고 먹는다, 아이한테는 매울 수도 있지만 어렸을 적부터 김치 먹는 게 익숙한 아이라 너무 매우면 생수에 좀 씻어서 주거나, 보통은 그냥 밥 위에 올려서 야무지게 먹는다
"공주님 반찬 잘 안 먹으면 식판에 줄 거예요."
"잘 먹을게요."
우리 집은 밥 먹으면서 티브이를 보는데 아이는 만화에 푹 빠져서 밥을 너무 천천히 먹는다, 원래는 반찬을 덜어서 같이 먹었는데, 반찬을 하도 안 집어 먹으니까 어렸을 때 했던 것처럼 식판식으로 해서 골고루 꼭꼭 씹어 먹게 한다 티브이도 내가 먼저 밥을 다 먹으면 끄고 밥 다 먹을 때까지 옆에 앉아 있는 것을 택했다
"아빠 다 먹었으면 가도 돼요 여기 안 있어도 돼요 혼자 먹을 수 있어요."
"공주 밥을 너무 늦게 먹어요, 천천히 먹는 게 좋긴 한대 밥 먹는 시간이 2시간이 돼가요."
두 시간은 좀 오버긴 하지만 한 시간을 넘게 먹는 건 사실이니까
다행히 해준 반찬은 잘 먹는다, 물론 마트에서 사 온 반찬도 잘 먹는 편이고, 하기 힘든 것들은 마트에서 좀 사도 좋은 것 같다, 주말에 시간 날 때 어묵 볶음이나, 두부조림, 같은 것 해놓고 매주 화요일에는 고기도 좀 사서 불고기 양념에 재워서 한 번씩 구워주면 아이도 질려하지 않고 나도 많이 힘들지는 않다(아침 점심은 다 유치원에서 먹으니 저녁만큼은 잘 챙겨주려고 한다) 천천히 먹는 거 빼고는 반찬 투정도 부리지 않고 잘 먹어주는 게 기쁘다 또래 아이들보단 키도 큰 편인데, 혹여 내가 영양섭취를 제대로 못 시켜줄까 봐 고민이 많다
그리고 아이위주 식단이다 보니 많이 매운 음식은 못해먹는게 나로서는 좀 힘들다... 가끔 매운 것도 먹으면서 스트레스 풀고 싶은데 그것 때문에 한번 더 만들어 먹는다는게 귀찮다고 해야 할까. 진짜 너무너무 먹고 싶은때가 있다
"공주 맛있어요?"
"네 아빠 최고예요 아빠가 해준 게 제일 맛있어요."
"거짓말, 치킨이 더 맛있잖아요."
"어.. 어... 치킨도 맛있는데 아빠가 해준 것도 맛있어요."
푸하하 웃으며 당황하는 딸을 꽉 안아준다
너무 예쁜 내 딸, 아빠가 힘 다하는 날까지 노력 많이 할게 같이 꼭 행복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