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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310)

"할 수 있다." 라고 마음먹는 게 이렇게도 힘들다

by 시우

https://www.youtube.com/watch?v=6Eo_wssvm2Q



일을 하면서 늘 어렵고 지치고 두려운 일들뿐이었다 매일같이 버티고 또 버텨도 어느새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날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날이면 문득 떠오르는 한 사람의 말이 있다


“두렵거나 어려운 마음은, 네가 그걸 아직 해본 적이 없어서 그래. 겪어보면, 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 불안은 아무것도 아니게 돼.”


그 말이 늘 정답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내게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지도 않다 지금 생각하면, 사회 초년생이었던 내게 은근히 가스라이팅을 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만큼은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았다 나는 그 사람에게서 받은 수많은 말 중에 단 한 줄만 골라 남기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잊었다


그 말 한 줄이 그래도 나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집에서 쉬는 것이 오히려 시간 감각과 자존감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처음엔 고개가 갸웃해졌다 정말 그럴까 싶었지만 곱씹다 보니 나름 일리가 있었다 실직하고 우울했던 시절 나 역시 집 안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지내던 때가 있었다 아침이 낮 같고 낮이 밤 같던 날들


시간은 분명히 흘렀지만 내 안에서는 멈춰 있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회복’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회복이 아니라 ‘정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밖으로 나가 일자리를 찾으려고 하고 뭔가를 배우고 시도하려는 순간부터 조금씩 살아난 건 나 자신이었다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마음도 덜 무거워졌다 그래서 요즘은 ‘쉰다’는 게 단순히 멈춤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여야 한다는 걸 조금은 알게 됐다


이번 긴 명절 동안 나는 정말 오랜만에 완전히 쉬었다 어머니는 명절 전에 코로나 확진을 받으셨다 일터에서 옮으신 것 같았다

그래서 올해에는 가족이 전부 모이지 못하는 명절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혼 후에 복잡하고 정신없는 명절 대신 조용히 시간을 정리할 기회가 생겼으니까


아이와 함께 여름옷을 정리하고 빨래를 하며 계절이 바뀌는 소리를 들었다 가을 이불을 꺼내고 여름 이불을 말려 정리하는 일 그 단순한 일상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방학동안 하지 못했던 아이의 방과 후 수업도 다시 신청했고 오랜만에 아이 앞머리도 잘라주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나를 위한 시간도 조금 가졌다


긴 연휴가 끝나고, 다시 출근을 앞두고 나니 마음이 살짝 불안하다 쉬었던 만큼 몸도 굳고 감도 떨어졌을 테니까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다 불안은 결국 내가 아직 그 일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거라는 걸 이젠 안다 내일 다시 일을 시작하면 오늘의 이 불안함도 곧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겪고, 견디고, 익숙해지는 과정 속에서 나는 또 한 걸음 자라날 테니까 그래서 오늘 밤 연휴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나 자신에게 다시 말해본다


“괜찮아. 이번에도 잘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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