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대디로 산다는 것(30)

생기 넘치는 사람

by 시우


인터넷에 유행하는 말 중에 억텐(억지 텐션)이라는 말이 있다, 억지로 텐션을 높인다 뭐 이런 뜻인데 살다 보면 우울해도 그렇게 텐션을 올려야 할 때가 종종 생긴다, 우울이라는 것은 주변 사람들조차 그 늪에 빠지게 만들어 버리고 발목을 잡는다, 나도 경험해본 일이고 여기에서 빠져나온다는 건 생각보다 많이 어렵고 또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드라마나 소설에서 보면 언제나 밝고, 주변을 활기차게 만드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언제나 당차고, 해야 할 명분이 있으며, 또 그 모습에 도와줄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현실이랑은 많이 다르지만, 일부는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중요한 것 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성향과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고 본다 어떻게 보면 직장을 다니면서 입는 나의 옷이 나의 부캐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옷에서 보이는 나의 마음가짐 덕분에 일을 좀 더 전문적으로 하고 보이는 것들이 어느 정도 나의 일상에 활력을 준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은 캐릭터를 입는다고 하는 것처럼, 나는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 못 하지만 나한테는 옷이 어찌 보면 가면이자, 나를 지키는 보호막 같은 것로 생각했었다


실제의 나는 조용하고 생각이 많고 말수가 적은 편이다, 하지만 하는 복장으로 밖으로 나오면 명랑까진 아니더라도 집에 있을 때보다 몇 배는 텐션이 올라간다, 그렇다고 일이 좋은 건 아니지만, 딸을 생각하면서 참고 다니는 거 아니겠는가?(일이 좋은 사람은, 병원을 좀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어찌 되었든 나는 어느 그룹에 속해도 딱 중간 정도에 있는 사람 같다, 나보다 텐션 좋은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그에게 나의 자리를 양보할 의향이 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도 조금이라도 힘을 좀 받을 테니까 말이다(주변을 활기차게 만드는 사람과, 부산스러운 사람은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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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윙스 공연구경


싱글대디로 살게 된 후부터는 사실, 이 억지 텐션도 많이 버겁다 아이 앞에서는 쳐 저 있을 수가 없다, 일을 미룰 수도 없고, 아이는 나의 감정을 먹고 큰다 이제 엄마가 없기 때문에 아이를 불안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항상 아이 앞에서는 선생님들에게 인사도 크게 동작도 크게 아이를 안아줄 때도 번쩍 들어서 꽉 안아주고 웃어줄 때도 환하게 웃어주려고 노력한다 가끔 아이가 내 맘 같이 안 도와줄 때도 있어서 화를 낼 때도 있지만, 계속 꿍해있지 않고, 어떤 거에 대해서 잘못한 거라고 잘 이야기해주고 한번 안아주면서 다음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기?라고 이야기하면서 풀려고 노력한다


나의 아이는 생기 있는 사람이다, 아니 생기가 흘러 넘치는 별 같은 아이이다, 눈동자를 보면 검고 깊고 투명해서 내 마음도 아이의 마음도 눈을 통해 다 보일 것만 같은 느낌이다 별거 이후에 내가 이만큼이나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아이 덕분인 게 확실한 것 같다, 작은 일에도 즐거워하고, 흔한 일에도 재미있어하고 아이를 돌보며 느끼는 것들은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다 아이의 넘치는 에너지가 가끔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품 안에서 맥동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이보다 더 재밌는 게 있을까 싶다, 반복되는 회사일 집안일은 정해진 루틴 안에서 움직이고 가끔 변수적인 업무들이 등장하여 삶의 긴장도를 높이지만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서툴러도 힘들어도 긴장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어서 좋다


아이를 내가 데리고 있었던 이유도 이러면 아내가 금세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누가 보아도 사랑스러운 아이였고 누구에게나 에너지를 나눠줬던 아이였으니까 보고 싶어서라도 돌아와서 제대로 이야기해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의 아내는 보편적인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젊은 시절 보여줬던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믿음은 오랜 시간 속에서 무뎌지고 마음은 꺾여 도전보다는 안정을 추구했고 활기가 있다기보다는 그저 자신을 지키는 것에 마음을 썼던 사람, 그리고 견디는 것보다 도망가는 걸 택했던 사람이었다


상담 선생님이 하셨던 말이 떠오른다


'그냥 그게 그 사람인 겁니다, 옳고 그른 게 아니라 그냥 나와는 다른 사람.'


20181028_145555.jpg 물개가 어디 갔지..



나의 후배이자 아내를 소개해줬던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충은 알고 있는 듯해 한마디 더 건넨다


"OO이 나랑 이혼해도 네가 친구로서 종종 연락해서 잘 지내게 도와줘, 아마 나한테 이야기를 안 해서 그러지 본인도 힘든 게 많았겠지 대학도 멀리 가서 친구도 만나기 힘들 텐데 네가 좀 도와주라."


후배는 해보기는 하는데 자기도 요즘 대화하기 어렵다며 고충을 토로한다, 그래도 가끔이라도 생각날 때면 꼭 해주라고 이야기했다


아내의 주변에 생기 있는 사람이 넘치길 빌어본다, 나와의 인연이 여기 까지라고 해도 앞으로 살날은 그보다 두배는 더 많이 남았기에 생기 넘치는 사람을 많이 만나 지금의 이 아픔을 딛고 이제는 본인의 삶에서 책임을 지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주길 바란다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이 듣기 좋은 소리는 해줄지언정, 당신을 책임지지 못한다, 애초에 삶이란 것 자체가 누군가를 책임지기 위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책임지기 위한 여정이 아니겠는가, 행동에 대한 결과는 당신 본인이 스스로 책임져야 하기에 당신과 갈라서야 할 이 순간에도 당신을 걱정한다,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인 당신을 마지막에는 그냥 웃으며 다 뭍고 보내야 할지, 당신 부모 대신에라도 현실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게 알려주어야 할지 말이다 하지만 과연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가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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