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한가요?
“행복하지 않다-.”’
언제부턴가 머릿속 뿐 아니라 심장 언저리를 계속 머물던 말.
그리고 행복하지 않은 기분을 떨쳐버리기 위해 스스로 되뇌이던 말들.
‘모두들 행복한 찰나를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힘들게 버티는 거야.’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이 정도의 연봉을 받는 게 행복이다. 불평하지 말자.’
‘행복이란 건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이 아닐까? 불교에서도 인생은 고통이라 했다.’
행복하지 않은 이유 1 - 일에 매몰된 삶
최근 몇 년간 일에 매몰된 채 살았고, 행복감은 먼 얘기였다.
반복되는 야근, 밤샘, 주말 근무로 체력은 나날이 고갈됐고, 불규칙한 생활에 밤잠은 사라져 매일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하루 종일 과열된 뇌는 잠자리에 눕는다고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때론 졸피뎀 2알로도 잠에 들지 못했다. 아침이 오면 잠이 부족해서인지, 몸에 잔류하는 약성분 때문인지 비몽사몽한 채 택시에 올랐다. 회사 앞 커피숍에 들려 더블샷 라떼를 주문했다. 카페인이 온몸을 타고 돌면, 다시 일을 시작했다.
침침한 눈, 욱신거리는 허리, 아픈 머리. 몸처럼 마음도 점차 병이 들어갔다. 나는 쉽게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일만 하기에도 벅찬 삶. 일을 위해 삶의 다른 영역들을 조금씩 포기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줄였다. 극심한 체력 저하로 술을 마신 다음 날 도저히 일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내게 서운해했고, 내가 없는 모임이 잦아졌다. 연락, 따뜻한 응원과 위로, 쓴소리는 점차 뜸해졌다.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은 하루에 수 분. 부모님은 수척한 내 모습을 보며 속상해하셨다. 하지만 그 땐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정신이 없었다. 나는 집에 돌아오면 씻고 잠을 자고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나갔다. 그게 다였다.
연인과 헤어질 위기도 여러 번. 결국, 우리는 암묵적으로 평범한 연애를 포기하는 선에서 합의를 봤다. 그의 잦은 출장과 나의 주말 근무로 한 달에 한 번 데이트를 한다거나, 하루 한 번의 연락조차 하지 않는 나날들이 흘러갔다.
취미, 재미, 즐거움. 그런 건 잊은 지 오래였다. 나는 그런 걸 추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어느 순간, 알게된 사실이 있었다. 일에 매몰된 삶에 정작 빠져 있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나는 ‘나 자신’이 없는 텅 빈 삶의 쳇바퀴를 배앵 배앵- 돌고 있었던 것이다.
행복하지 않은 이유 2 - 스스로 만들어낸 거짓 낭만
삶의 다른 영역, 그리고 ‘나 자신’을 포기하면서, 지속적으로 되뇌었다.
“내가 하는 일은 정말 의미 있고, 중요한 일이다. 이 일은 친구, 가족, 연인, 한낱 즐거움보다 중요하다. 나는 이 일을 정말 좋아한다. 나는 일을 잘해서 팀, 회사, 사회에 기여할 것이다. 일을 통해 나는 성장하고 있다.”
나는 명백한 심리적 오류에 빠져 있었는데, 내가 포기한 것들의 무게를 일의 중요도에 더한 것이었다. 마치 신입사원 연수에서 등산 등의 극한 활동을 할 경우, 참가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내가 이렇게 힘든 활동을 하는 이유는 그만큼 조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하지만 마음속 한편으로는, 이 일이 내게 그렇게 의미 있고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포기할 정도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몸과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나는 직업적 낭만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이 직업을 유지하는 이유가 나의 꿈이나, 일의 의미가 아닌, 나쁘지 않은 연봉과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기 때문임을 쉽사리 인정할 수 없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하루종일 일하는 삶은 낭만적이지도, 내가 원하는 삶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나는 거짓 낭만을 만들어내고, 그 낭만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연기로 스스로의 눈과 귀를 가렸다.
거짓과 진실의 간극에서 나는 더더욱 행복을 잃어갔다.
불행의 결과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성취의 길은 대학에 입학하고, 취업을 하고, 승진을 하는 것이었다. 이 길을 걸어온 것은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살았다.
나의 성과는 점차 떨어졌다. 조직의 태도는 성과가 좋았을 때와는 정반대였다. 조직은 나를 보기좋게 차버렸고 나는 성취의 길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리하여 요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낸다. 그간 ‘나 자신’을 잃어버린 탓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할지 도통 모르겠기 때문이다.
‘당장 무슨 일이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이렇게 도태되는 건 아닐까?’
때로는 막연한 불안감이 몰려오지만, ‘나 자신’이 없는 상태로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나는 정지 상태로 하루 하루를 보낸다. 내가 어떤 길 위에 놓여있는지도 모른 채.
행복은 어디에?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
사람 없는 자갈길을 걸으며 잠시 마스크를 내린다. 오랫동안 맡지 못했던 신선한 공기와 풀내음이 폐를 채운다. 저물기 시작하는 노을을 바라보며 실로 오랜만에 행복을 느꼈다.
성취를 향한 길은 분명 행복을 향한 길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성취를 통해 얻은 것은 행복이 아니라, 기쁨과 자신감이었다. 행복은 단순히 성취로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행복이 없는 곳이 어디인지는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길 위에 서야 한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