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 건축사무소 전중섭의 집. #space for one
산책하듯 거닐면 집의 풍경이 달라진다.
사사건건 건축사무소 전중섭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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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지어진 평범한 빌라는 전중섭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5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집에서 손잡이가 달린 문은 현관문 하나뿐이다. 기존 구조에서 방과 방 사이의 문을 모두 철거하고 프레임만 남겼다. 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흐름이 생겼고, 복도를 따라 걷는 동안 공간의 표정이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관을 지나면 옅은 하늘빛 바닥이 발끝을 감싼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곳은 너른 창을 마주한 부엌이다. 작은 냉장고 하나와 조리대가 놓인 단순한 풍경이지만, 미니멀한 구성 덕에 집 전체의 중심이 고요하게 조율된다. 전중섭은 필요한 순간에 장을 본다. 재료를 쌓아두기보다 지금을 위한 요리가 우선이다.
예전에 창고였던 방은 지금 서재가 됐다. 책을 펼치는 일과 요리를 준비하는 일이 분리되지 않고 느슨하게 이어진다. “거실과 모든 방이 한눈에 들어오는 구조보다는 길을 따라 조금씩 열리며 깊어지는 공간이 훨씬 아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효율적인 평면도 대신 걷는 동안 서서히 경험하는 시간을 택했다. 거실 전면에 세운가벽은 공간 속에 산책로 같은 동선을 만든다.
현관에서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여정의 종착지처럼 가장 깊숙한 곳에 침실이 나타난다. “공간의 깊이는 면적이 아니라 그곳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는 유럽 궁전의 회랑을 떠올렸다. 문을 하나씩 열며 점점 안쪽으로 들어가는 흐름. 집 안을 천천히 거닐수록 공간은 조금씩 깊이를 더한다.
방문이 없는 집에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을까. 전중섭은 일상의 장면에서 종종 아이디어를 얻는다. 할머니가 무언가를 걸기 위해 꼰 매듭 같은 것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일상의 작은 지혜를 스케치하고, 사진 찍어 모아둔 것이 프로젝트의 소스가 된다. 엉성하지만 필요한 역할을 해내는 해법은 언제든 새로운 구조로 이어졌다. 홍콩에서 온 친구를 위해 방 한쪽에 와이어를 달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문이 없는 대신 와이어에 느슨한 천을 걸어 문 대신 사용했다. 집이 갤러리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날 단 와이어를 평소에 사진과 그림을 거는 용도로 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불완전함은 단점이 아닌 가능성이다.
사사건건 건축사무소의 작업물도 같은 생각에서 출발한다. 임대와 이사, 철거의 변수가 잦은 상업 공간에서 그는 바탕 공사는 최소화하고, 설치와 해체가 가능한 구조를 지향한다. 단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조정되고 변한다는 전제를 두는 것이다. 화려한 장식 대신 단정한 선과 여백 속에서 공간의 진짜 깊이가 드러난다. 그의 집이 고요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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