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면 생각이나

올봄도 벚꽃이 만발하기를 기대하며

by 유그리나

벚꽃이 피고 벚꽃엔딩 들으면 생각나는 추억,,,,

꽃잎이 여리여리 흩날리며 여자의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계절... 봄이 왔다.

온통 세상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벚꽃을 보면

막 피어나는 꽃잎처럼 발그스레한 뺨에 투명한 피부 그리고 분홍빛 입술, 환한 미소를 한 딸아이가 떠오른다.

막 피어나는 청춘을 상기시키는 벚꽃....

날씨는 살랑살랑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저녁산책하기에도 기온이 안성맞춤인 시기...

때마침 들려오는 벚꽃엔딩 노래,,,,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그대여... 그대여,,,,그대여,,,,,그대여..... 그대여,,,,


벚꽃이 피고 이 노래가 울릴 때마다 생각나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버린 그 일은 2021년에 일어났다.

2021년 4월이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당시 코로나 확진자가 한 도시에 그리 많지는 않은 상황이라 조심조심 생활하던 시기였다.

나는 2019년도부터 필라테스를 열심히 다니며 나름 다이어트에 성공하였고 거울을 볼 때마다 그런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나름 날렵해진 허리라인을 보며 만족해하던 시절이었다.(그런 시절도 있었었지 n.n 언제였던가... 그 시절은 왜 안 돌아오나...)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나의 운동생활은 꽤 오랜 기간 중단되었고 불안한 마음에 운동을 가지 못한 날이 여러 달이 되자 거금을 주고 한꺼번에 필라테스 비용을 결제한 것이 아깝기도 하고 몸이 무겁고 찌뿌둥하여 그날 하루만 운동을 한 번 해볼까 하고 운동을 갔었더랬다. 답답했지만 규정상 마스크를 쓰고 열심히 8:1 필라테스를 했었다.


오랜만에 운동을 해서 가볍고 개운한 마음으로 다음날 출근하여 열심히 회사에서 부리나케 서류를 작성하던 중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날씬 필라테스에서 김 필라 선생님 수업 8시 타임 수강하셨죠?”

“네”

“여기 보건소인데 어제 받은 필라테스 수업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지금 즉시 하는 일을 멈추고 다른 사람과 접촉하면 안 되고 마스크를 쓰고 보건소에 와서 코로나 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결과에 상관없이 집에서 2주 동안 격리를 하셔야 합니다. 반드시 화장실과 방을 혼자 쓰시고 혼자서 식사를 해야 하며 가족들과 접촉해서는 안됩니다. 이 사항들을 안 지키실 때에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아니... 제가 너무 바빠서 오늘 지금 하는 일만 좀 끝내고 가면 안 되나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기 너무 미안해서요...”

“절대 안 됩니다. 지금 즉시 당장 보건소에 와서 검사를 받으세요”

나는 놀란 가슴을 부여안고 올 것이 왔구나 싶어서 급하게 짐을 싸고 상사에게 죄송한 마음을 표현한 채 왜 갑자기 짐을 싸서 나가는지 의아해하는 동료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억울한 표정만 지은채 보건소로 달려갔다.

코로나 결과는 음성이었고 심지어 아무 증상도 없었지만 뭐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지 하면서 은둔 생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보건소의 계속되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죄지은 사람처럼 겁이 났다.


2주간의 격리라... 우선 회사일이 걱정되긴 했지만... 나로서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어쩌고 남편은 어쩌나.... 남편과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내 입장에서는 부부커플일 경우 내가 코로나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격리자가 되었을 때 남편에게 어떤 방침이 내려질지... 또한 아이들 학교에서는 어떤 방침이 내려질지 걱정이 되었다. 피해주기 싫은데,,,,코로나 발병하고 꽤 오랜 기간 운동을 못 간 것 같은데 그 하루 운동 갔다고,,, 이런 일이... 난 뭘 잘못한 것일까?... 를 생각하며 많은 생각과 고민들이 스쳐갔다.

집에 와서 혼자 2주 동안 격리되어 꼼짝도 못 하고 방에 갇혀 있을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우선 방안으로 x-bike를 가지고 들어가고.... 혼자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 나는 항상 휴식을 목말라했었다.

일이 너무 많은 우리 회사에서 아이 둘을 키우며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은,,,,군대에 다녀오지는 않았지만,,,,군생활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몇 년만 더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정말 버텨내며 살아왔다. 그토록 목말라했었던 휴식이지만... 이런 식으로 혼자 교도소 독방에 격리된 것처럼 휴식을 취하게 될 줄이야.... 이런저런 걱정에 우울해졌다.

하지만 코로나 결과를 기다리며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내 마음속에서 긍정의 마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애들도 안 챙기고 회사일도 안 하면서 2주를 쉰다는 말인가?

평상시 나는 죽어서야 휴식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힘들게 버텨온 나의 입장에서 생각을 바꿔먹으니 이 일은 나의 일생에 단비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힘들었던 지난날들이 스쳐가기 시작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지만 내 커리어에 대한 자존심이 있었던 나는 회사에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이었고 회사에서 보수를 받고 일하는 이상 허투루 살기 싫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복이 많았다.

또 아이들을 잘 키우려는 욕심 또한 큰 사람이었다.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이 기본값이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만큼 힘든 삶은 예정된 것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육아맘이라는 것이 티가 나지 않도록 사는 삶은 녹녹지 않았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저녁식사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공부를 봐주어야 했다.(열심히 사는 직장맘들은 물론 많고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육아맘들이 이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몸은 지쳐갔고 수시로 감기에 걸리고 중간중간 점심시간에 회사 앞 병원에서 2주에 한 번은 링거를 맞으며 버텨야 했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 내 개인시간이 없어 정신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 어느 날은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다가 또다시 감기에 걸려 퇴근 후 병원신세를 져야 했던 반복되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책을 보며 눈물을 삼켜가며 원 없이 간절히 읽고 싶었으나 읽지 못한 채 꾹 참아왔던 나날들...

“하나님이 내가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쉬지 못했다고 강제로 휴식을 주시는 것일까? 그동안 착하게 살아왔다고 휴가를 주시는 것일까?라는 생각까지( 못 들은 척해주세요 혼잣말입니다.)...

갑자기 무엇을 하며 이 금 같은 시간을 보낼지,,, 나는 펜과 메모지를 들고 계획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간은 내 인생에서 다신 없는 일이야! 무엇을 해야 시간을 잘 보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당시 읽고 싶었던 책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오전 오후에 독서를 하고 중간중간 식사 후 x-bike로 운동을 한 다음 샤워를 하고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밤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 또는 인생드라마라 추천하는 작품들 정주행도 하고,,,,

갑자기 하고 싶은 계획들이 넘쳐나서 가지치기를 해야 했다.

읽고 싶었던 책들은 얼마나 많고 못 본 영화 드라마는 또 얼마나 많은지...


일주일 정도 독서를 하고 리뷰를 작성하고 또 보고 싶었던 영화드라마를 보니... 목말랐던 갈증이 아주 조금 가시기 시작하고,, 자유스럽지 못한 이유로 마음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보건소에서 한밤중에 전화가 와서...

”지금 어디신가요? 지금 집 근처로 뜨긴 하는데 집에서 나오신 건 아니죠? “

라는 질문에

”집 안방에서 한 발작도 안 나갔고요. 지금 넷플릭스로 드라마 보는데 그래서 아마 핸드폰 위치가 달리 잡히는 걸까요? “라고 말했더니... 보건소 직원도 웃음을 참는 눈치였다.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이렇게 감시당하는 게 맞는 건가?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에게 텔레스크린으로 감시당하는 기분이었다.

그 당시 격리 중에 돌아다니다가 발각되어 실형선고를 받은 격리자의 기사를 접한 나는 무서워서라도 한 발짝도 방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같은 곳에 있으면서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이 더 갑갑하고 외롭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기도 하고 안아주고 싶기도 하고,,,,

남편은 내가 격리되었다는 이유로 아무 증상도 없는데 집에서 나오지 말고 격리하라는 회사의 방침이 내려졌고 아이들도 집에서 나오지 말라는 학교조치가 있었다. 식구들이 나만 보면,,, 당신 때문에... 엄마 때문에....

회사도 못 가고,,, 학교도 못 가고,,, 이게 뭐냐고!

하는 하소연을 계속 들으며 미안한 마음 때문에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아 좋을 수도 있었겠지만... 남편은 바쁜 업무인데.. 주위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었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남편은 평상시 회사에 교통체증으로 5분 늦는 것도 격하게 싫어하고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하는 성실 남인지라... 원망이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혼자 삼시 세끼를 차려서 애들을 챙기고 나에게 식판으로 대령까지 해야 했으니... 내가 아직까지 그 하소연을 듣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라도 정말 화가 났을 것이다. 그놈의 필라테스는 왜 해가지고! 그 이후로 필라테스하는 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버렸다. 지금도 그때 일을 말하면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웃고만 있다. 그때 운동을 하루만 참았어야 했는데.... 란 생각을 얼마나 했던지...


그때 나는 2주간 5권의 책을 완독 하고.... 매일 방 안에서 x_bike로 운동을 했으며,,,,벚꽃이 필 때 격리를 시작했다가,,,,꽃잎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격리가 해제되어 방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 당시 나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위로해 준 것이 바로 아름다운 벚꽃과 벚꽃엔딩 노래였다.

아파트 6층인 우리 집은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햇볕이 좋고 베란다 앞에 수그루의 나무들이 있어서 마치 정원 속에 있는 것 같은 그 느낌이 좋아 집을 계약했었다.

그동안은 삶이 바빠 느끼지 못했는데

2주간 쉬면서 자세히 보니 봄이 되면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감상할 수가 있는 벚꽃 스팟이 아닌가?

따스한 봄 햇살에 어우러진 분홍빛 벚꽃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오래된 집이고 난방을 해도 추운 편이라 겨울엔 살기가 별로이지만 꽃이 피는 봄이 되면 그런 단점을 다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나에게 아름다움과 행복감을 선사하는 집이란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역시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오래 보고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안한(?) 괴로움을 느끼며 안방 창문 앞에서 꼼짝 못 하고 벚꽃놀이를 대신하던 기억은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추억이 되었다.

벚꽃 엔딩.... 노래를 들으면 베란다 밖으로 흐드러지게 흩날리던 아름다운 벚꽃의 기억이...

나를 그때로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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