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한 선택
언제부터였을까?
크리스마스 준비하는 일이 피곤해진 게.
거리마다 나오는 정겨운 캐럴과 반짝였다 사라지는 불빛들을 보면서
'우리 집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꾸며야 하는데...'
생각하면 설레는데
마냥 기쁘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아이가 4살이 될 무렵인 듯싶다.
크리스마스가 아이의 동심 지키기 프로젝트로
변질된 것은.
배송이 늦어져 선물을 준비에 차질이 생길라
미리 주문해서 아이가 집에 없는 시간에 포장하고 창고에 숨겨둔 지 4년 차.
그 사이에 받고 싶은 선물이 바뀌진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기다린 지 2년.
아빠 엄마의 선물을
산타 선물과 따로 준비한 지 3년.
산타를 만나고 싶다고
선잠자는 아이가 진짜 산타를 알게 될까 봐
노심초사하며 새벽에 잠든 지 1년이 되었다.
동심을 지키기 위해 쓴 시간과 정성.
2개의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금전적인 부분까지도
어딘가에 있을 산타의 공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서운했던 걸까?
12월 초.
이번 크리스마스도 어김없이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산타에게 빌으라 했다.
뜬금없이 창문 앞으로 다가가
밖을 바라보며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속삭이는 게 아닌가.
"크게 말해야 산타 할아버지가 갖고 싶은 걸
정확하게 가져다 줄 걸?"
"작년에는 산타 할아버지한테
편지 썼더니 원하는 선물 줬는데?"
나이가 한 살 먹은 만큼
동심 지키기 난이도도 상승했다.
궁금한 척 떠보며 알아내려고 했으나
본인도 유튜브에서 봤다며
설명을 못 하길래 시청 목록을 확인했다.
검색을 해봐도 장난감을 찾을 수 없어
영상 정보를 확인하니 무려 7년 전 영상이었다.
그놈의 알고리즘…
그 장난감은 역시나 한국에 없었다.
산타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마존에 품절 직전 물건을 찾았다.
문제는 어렵게 구한 장난감이 하늘을 날아 땅에 닿기도 전에 받고 싶은 선물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산타 할아버지는 바빠서
이미 저번에 말한 걸 준비하셨을 거야."
뾰로통해진 모습이 어쩜 이렇게 얄미울까.
그리고 며칠 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물었다.
"엄마, 친구들이 그러는데 ~
사실 산타는 엄마, 아빠래!"
"산타가 바빠서 못 준 친구들은 엄마, 아빠가 대신 줬나 보다. 우리 딸은 작년에 산타가 줬잖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처럼 지어낸 말이 술술 나왔다.
이제 이 거짓말은 내년이 되면 통하지 않을 거라는 직감이 왔는지 바로 말을 이었다.
"아마 이번 크리스마스가 산타가 주는 마지막 선물일 거야. 이제 언니니까."
아이는 충격을 먹었는지 허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애...?"
"산타 할아버지가 동생들에게 선물을 줘야 하는데 언니들도 주면 못 받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언니 되면 안 받는 거야.
엄마 아빠도 안 주잖아."
"그럼 나는 크리스마스에 선물 못 받는 거야?"
"엄마랑 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겨주면 되지. “
아이는 그제야 붉어진 눈시울이 잠잠해지더니
평소와 다를 것 없이 가방을 정리하러 갔다.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니
문득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변질시킨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이는 산타 할머니가 주든 루돌프가 주든
그게 누구든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는 게 기쁜 걸 텐데.
내가 생각한 동심의 세계에
아이가 맞춰주길 바랐던 건 아닐까?
선물을 준비하는 과정을 즐겼던 건 '나'인데
그 과정을 알아주길 바랐던 건 아닐까 말이다.
그 순간부터 '산타를 믿게 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해'는 그만하기로 했다.
그제야 온 가족이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에 함께 먹으려고
처음 보는 외국과자도 창고에 숨겨 놓았다.
소소한 소비를 잘하지 못하는 남편에게는
어렸을 때 갖고 싶었는데 돈 없다며
사주지 않았다던 과녁과 총을.
매일 30분씩 슬라임 유튜브를 보는 아이에게는
슬라임세트를.
사과만 주면 집에 도둑이 들어도
꼬리 칠 반려견 티슈에게는 사과츄르를.
옛날 캐릭터들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월레스와 그로밋 굿즈를 준비했다.
다들 나가고 없는 오전
준비한 선물을 포장하면서 실실 웃고 있다.
어린아이처럼 크리스마스가
몇 밤 남았는지 세면서 말이다.
Happy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