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향기는 끝도 없이 나풀거리고
이팝나무에 눈꽃이 소담스럽게 쌓여갈 즈음이면
은은한 아카시아 향기가 산자락에 넘쳐흘렀다.
늘 오월은 더 눈부신, 보다 아름다운 한 달이었다.
일월이 담백한 수묵화라면 화사한 수채화였고,
팔월이 관능적인 비키니라면 나풀거리는 숙녀의
노란색 원피스였다.
중간고사를 마치고 대성리에서의 동아리 MT도
캠퍼스 축제도, 메이퀸의 웃음도 사라진 봄날이
되었지만 어김없이 숱한 꽃잎 세상을 수놓았고
연초록 잎새 숲을 다시 찾아왔다. 어느 스님의
글처럼 함께 부대끼고 살지 않으면 비로소 소중
함을 알게 되는 것. 소소한 일상이 화두였다.
창포꽃 노란 그늘 아래 바위에서 큼지막한 자라
몇 마리 잔뜩 목을 빼고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촉촉한 껍질도 말리고 때때로 옆구리를 찌르는
미생물도 살균한다나? 녀석들도 비타민 D까지
챙기려는지 느긋하게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꾸벅꾸벅 졸았다.
언젠가 시절인연을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오는 것을 거절 말고 가는 것을 잡지 말며~`란
일타스님의 마음을 다스리는 글에 한 구절이다.
봉선사 큰 법당에서 잊을만하면 읽곤 했었다.
최근 몇 년 아카시아 향에 취할 때마다 시절인연
을 되뇌어 보는 습관이 생겼다.
한때는 풀꽃처럼 화사하게 웃다 멀어진 그들도
있었고 벚꽃처럼 한결같이 다시 피어나는 인연
도 만났다. 물가에 핀 노란 망초꽃이, 산모퉁이
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쑥부쟁이가 풀꽃 인연이
였는데 그 꽃이름들마저 떠오르지 않았다.
연분홍 꽃 복숭아나무, 어딘지 모르게 고혹적인
꽃잎을 품어내는 자귀나무 같은 인연을 소망하고
그렇게 살려해도 상대 입장에서는 그저 황망히
꽃씨를 날리는 민들레 인연이기도 했다. 이름을
남기기는커녕 그의 뒷모습도 잊혀 갔다.
수많은 명심보감급 스토리와 작품 사진보다 더
멋진 풍경들을, 잊고 지낸 지난날 발라드를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정작 오랜 벗의 스토리는 갈수록
귀해지기만 했다. SNS 또한 유행이었다.
싸이월드가 서서히 사라졌듯이 얼마 있지 않아서
카스도 나때는~을 말하며 추억이 되어 있겠지만
그날까지 몇몇 친구들의 글은 늘 그리울 거다.
우리는 자주 완전함을 꿈꾸지만 정작 불완전한
존재이다. 나이 들며 종교, 정치, 학력, 자산, 자녀, 지역등을 대화에서 배제한다. 그게 많은 이들과 소통하는 착한(?) 지혜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는 사람은 늘어도 정작 맘 깊은 대화는 줄어 갔다.
날마다 숱한 글이 복사되어 카톡 카톡 날아온다.
처음엔 고맙고 반갑기도 했는데 마치 인스턴트
음식만 같아서 언젠가부터 아예 반응을 안 했다.
그래서 질던, 메말랐던, 찰지던, 설익었던 스토리 친구들이 직접 차려준 집밥 한상이 훨씬 맛있었다. 어떤 친구는 딸랑 밥 한 공기에 겉절이 하나인 짧은 시인데도 너무나 맛깔스러운 글을 썼다. 참 부럽기만 했다. 반찬이 많아도 정작 먹을 게 없는 아쉬운 글들이 지속되는 지난한 시기도 분명히 있다.
우체국 계단에서 또박또박 쓴 유 선생 손 편지에
늘 `행복` 같은 멋진 시만 있지는 않았다. 자신을
향한, 누군가를 향한 변치 않는 미소나 그리움이
우체통으로 그를 이끌었으리라. 우리들처럼,
카스 우체국 작은 정원엔 벌써 넝쿨장미가 잔뜩
피었다. 그중에도 소담스러운 한 송이가 보였다.
책을 읽다 단 한 줄만 와닿아도, 보낸 글에서 단
한 구절만 다가가도 우린 봄날을 함께 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