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끝으로의 여행 - 셀린 (1932, 프랑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어두운 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신쨩별점: ★★★☆
1. 죽거나 조용히 기다리거나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삶에서 희망 따위를 찾지 않는다. 우리의 삶이란 끝없는 밤이다. 온갖 오물들이 들끓고 그 끔찍한 냄새가 거짓, 위선, 폭력, 광기와 뒤섞여 우리의 뇌를 마비시키는 절망 뿐인 밤이다. 그 속에서 기쁨이나 즐거움 같은 것들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것은 영겁의 어둠 속에서 아주 잠깐 번쩍이는 희미한 불빛에 불과하며, 그 짧은 순간이 지나면 또다시 우리는 우리가 헤매고 있는 밤을 깨닫게 될 뿐이다. 헛수고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기가 두려워 아직 살아있는 우리는 그저 밤을 뚫고 계속해서 걸어야할 뿐이다. 그러나 오래 걸었다고 해서 희망찬 여명에 대한 기대를 가져서는 안된다. 밤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삶은 그 자체가 대가 없는 노동이다. 예나 지금이나 떠들어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온갖 그럴듯한 이론을 통해 이 노동을 긍정하는 방법을 늘어놓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 끔찍한 노동을 즐긴다는 것은 명백한 정신착란이다.
흔히들 '시대적 고뇌'라고 하는 것들도 실은 인간의 영원한 질곡과 부조리의 한 변조에 불과하다. 우리 인생은 어느 시대 그 누구에게나 똑같은 칠흑같은 밤이며 그 속에서 각자 발버둥하는 모습들만 조금씩 다른 것뿐이다. 시시포스의 신화는 신화가 아니다. 그것은 실제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우리 모두는 묵묵히 삶이라는 형벌을 소화해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인내심이 부족하다. 조용히 죽을 날을 기다릴 인내심, 그것이 부족하다. 이 세상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것은 인내심, 가만히 죽어갈 수 있는 인내심이다!
주인공 바르다뮈의 생각이다.
2. 밤 끝으로의 여행
이처럼 지독한 허무주의와 삶에 대한 회의는 물론 전쟁의 산물일 것이다. 셀린(본명은 루이 페르디낭 데투슈)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1차 대전에 참전했다. 자전적 소설인 「밤 끝으로의 여행」에서 그는 바르다뮈를 통해 자신이 겪었던 전쟁의 참혹함을 재현한다. 다만 셀린이 묘사하는 참혹함은 포탄의 굉음이 울려퍼지는 살육의 참혹함이 아니다. 전쟁의 하이라이트는 오히려 조용한 밤이다. 모든 공포와 발작과 혐오와 회의와 현기증은 전투와 전투 사이, 고요하고 끔찍한 밤의 정적 속에서 폭발한다. 셀린이 그리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 전장이 아닌 개개인의 정신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다.
바르다뮈는 전쟁 중 심각한 부상을 입어 제대했기 때문에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바르다뮈의 밤 끝으로의 여행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가난하고 돌봐줄 이 없는 형편에 그는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위해 전 세계를 떠돌아다닌다. 그러나 식민지 아프리카에서도 아메리카의 대도시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늪처럼 질척하고 끈적이는 절망뿐이다. 그렇게 그의 젊은 정신과 삶에의 의지는 죽어간다. 삶은 언제나 어디서나 똑같이 어두운 밤이다.
전쟁의 후유증은 비속어로 쓰인 소설을 낳았다. 「밤 끝으로의 여행」은 빈자와 부랑자들의 천박한 언어로 쓰였다. 당시 '문학 혁명'이라 일컬어졌던 이러한 셀린의 언어 사용은 수 세기 동안 지배 계층의 권력과 통치 도구로 사용해온 '고상한 언어'에 대한 저항이자 꿋꿋이 삶을 버텨내는 하층민들에 대한 공감의 소산이다. 「밤 끝으로의 여행」의 솔직하고 저속한 문장들은 세상의 야만을 그럴싸하게 포장해놓은 허위와 위선을 꿰뚫고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드러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셀린이 40대에 접어들고 2차 대전이 발발할 즈음에는 나치를 지지하는 반유대주의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폭력에 무참히 짓밟힌 사람은 그 자신도 폭력을 사랑하게 되고 마는 것일까. 스무 살 셀린과 중년의 친나치 극단주의자를 겹쳐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경험만으로 그의 삶의 곡절을 어떻게 다 헤아리겠는가. 단지 셀린 자신도 바르다뮈처럼 삶이라는 밤의 한가운데에서 홀로 헤매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해볼 뿐이다.
※ '밤 끝으로의 여행'을 번역한 이형식 교수의 '옮긴이의 말'을 일부 차용하여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