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일과 듣는 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by 시느

어느 순간 퍼뜩 깨달은 것이 있다. 말이라는 그릇은 무척 변덕스러운 성질을 가져 제멋대로 형태를 만들어낸다. 때로는 너무 말랑말랑해 의뭉스럽고 때로는 너무 단단해 쉽게 깨진다. 그래서 발화자의 마음을 전부 담아내지는 못한다는 걸. 의도대로 빚어지면 말로 인해 오해를 사거나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일이 줄어들 텐데.


말하는 사람보다는 듣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기왕이면 섬세하게 듣는 사람이. 불투명한 그릇에 담겨도 속내를 알려고 노력하자고, 어떤 그릇이든 수용해 보자고. (사실 어떻게 보면 회피성이 짙다. 다툼에서 빠르게 쏘아붙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그때 그렇게 말할걸!' 하며 이불만 차는 게 태반인, 타고나길 느린 내 천성을 생각하면 말하기보다 듣기가 더 쉬운 일이다. 입만 다물면 불필요한 언쟁이 줄고, 나를 진중한 사람이라고 착각해 주는 일이 생기기까지 했으니까. 내 에너지가 그나마 덜 소모되는 방향으로 흐르니까.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사라지니까. 요새 난청이 더욱 심해져서 듣지도 못해서 큰일이지만)



이토록 변덕스러운 말도 발화자의 마음과 정확히 일치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럴 때면 몇 배는 크게 가 닿는 힘을 가진다. 듣는 이에게 오랜 여운을 남긴다. 돌이켜보면 그를 놓치지 않고 똑똑히 붙잡을 때마다 어떤 계기가 생기곤 했다.


이를테면, 엄마아빠의 서점에서 읽은 내용을 얼기설기 조합한 걸 신후는 말을 조리 있게 하는구나, 이야기를 재밌게 만드는구나, 라고 한 선생님의 말. 그 말이 나를 뭐라도 쓰는 사람으로 이끌었다.


작년 초겨울에는 아버지가 TV를 보다가 툭, "삶에 낙이 없다"라고 말했다. 높낮이 없는 어조로, 무미건조하게. 감정이 섞이지 않아 듣지 못했다면 그냥 그렇게 스쳐 지나갔을 순간. 그 말이 마음에 박히고 그 장면이 머릿속에 내내 남아 어릴 적 우리의 아지트였던 서점을 다시 만들자는 결심이 섰다. 공간 관리와 서점의 업무를 배울 수 있는 지금의 일터를 찾았다. 일을 배운 날엔 퇴근하고서 꼭 엄마와 아빠에게 경험을 나누는데, 힘들었다면서도 그때가 생각난다며 일화를 들려주는 부모님의 표정은 꽤 즐거워 보여 나 또한 즐겁다.



그리고 B의 말. 오빠는 때때로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말하곤 하는데, 그게 퍽 힘이 되어준다. 최근에는 다친 무릎이 통 낫질 않아 큰 병원에 갔더니 재발성 슬개골 탈구라는 난치성 질환임을 알았다. 언제든 빠질 수 있는 시한폭탄 같은 무릎이라니. 이런저런 생각에 우울해하고 있자 '너무 걱정하지 마'를 두 번이나 말하던 그. 신기하게도 씩씩하게 이겨낼 자신이 생겼다.


1월은 대부분 다짐의 시간들로 보냈다. 제멋대로인 말을 기민하게 포착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자고. 나도 마음을 온전히 담은 말을 빚어내 힘이 되어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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