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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느 Jun 25. 2023

0. 서점지기는 어떤 사람을 만날까?

서점 마감시간을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여느 때처럼 늘 지니고 다니는 노트를 펴 오늘 있었던 일을 써 내려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고개를 드니 유리창에 제가 비쳐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손님 한 명 없어 한갓진 서점, 그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 밖을 유유히 지나다니는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하면 이곳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어머니의 서점일지가 떠올랐습니다. 그녀의 서점일지에도 그런 내용들이 있었거든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책을 살까, 어떻게 해야 서점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까, 책을 얼마나 열심히 팔아야 빚을 안 질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 고민이 역력한 기록을 똑똑히 보았으면서. 책과 글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일념으로 부모님의 길을 그대로 좇는 저는 어리석은 사람일까요, 허황된 꿈을 꾸는 사람일까요?


저의 어린 시절은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 대부분입니다. 2013년까지 부모님이 동인천역 인근에서 서점을 운영하셨거든요. 불어나는 빚 때문에 정리하셨지만요. 어렸을 때는 읽고 싶은 책을 전부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좋았습니다. 철없게도. 서울로 이사하며 발견한 어머니의 서점일지엔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고통, 불안함의 연속인 일상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얼마나 울었던지요. 아무것도 모르고 책 좀 주문해 달라고 떼를 썼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매일을 꿋꿋이 견뎌내며,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매장을 관리하는 노하우, 어떤 손님을 만났는지, 우리 서점을 믿고 맡겨주는 거래처와 어떻게 관계를 돈독하게 쌓을지 등을 기록해 가면서. 그렇게 두 분의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고 다잡으면서 서점을 지켜냈구나, 우리 자매들을 길렀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의 서점일지를 들춰볼 때마다, 여러 번 읽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일화들도 있었습니다. 역시 ‘사람’과 관련한 기록이었습니다. 단골손님과 대화를 나눈 일, 무례한 사람을 마주한 일, 거리를 다닐 때 서점에 들른 손님을 우연히 만난 일까지 어머니는 기록했습니다. 그걸 보면서 그때의 상황과 그녀의 심정을 나름대로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제가 쓴 기록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지금의 일터에서 일한 지 어느덧 반년을 향해 가는 이때. 저는 4개월 차에 접어들면서부터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서점을 그만두어야 하나, 하고요. 제가 일하는 곳은 여느 서점보다는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점 매니저로 채용되었지만, 어쩌다 보니 서점과 서점 인근의 매장을 유지보수(?)하고 매장 담당자님과 소통하며 이런저런 문제를 처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동시에 책과 제품을 들여오고 진열하고 판매하는 일까지 하고요. 서점을 운영하는 데만 해도 품이 들고 인력이 필요한데 여러 매장들까지 담당하려니 점점 한계에 다다르는 걸 느꼈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있어도요.


이 일터에 계속 남아있는 게 제게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 그들이 좋아하는 글을 쓴 저자를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며 입사했지만, 제게 주어지는 업무들은 예상보다 훨씬 달랐습니다. 그저 매일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쳐내기에 급급했습니다. 반년이 되어가는 이때까지, 이런 일들을 배우고 싶다, 실행하고 싶다 생각한 것들을 하나도 구체화하지 못했습니다. 과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곳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여태까지 버틴 이유, 버텨내야만 하는 이유들을 생각했습니다. 그 답은 제가 기록한 노트, 십여 년을 버텨낸 어머니의 서점일지에 있었습니다. 서점에 있으면서 만난 사람들, 매장을 오가며 한두 마디 건네는 사람들, 서점을 운영하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이 기록들을 내보이려고 합니다. 힘들고 지치기 일쑤인 하루하루를 버텨내게 한 그들과의 일화를, 더없이 사랑스러운 사람들을, 이 사람들이 모이게 한 공간을 나 혼자만이 아는 것이 아니라, 당신도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진의 배경은 일터와는 관계없는 다이칸야마 츠타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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