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스레터 #23
혹시 SNS를 켤 때마다 알고리즘에 이끌려 아래의 영상을 본 클라이머가 있다면? 혹시 '내 얘긴가?' 공감하는 한편, 도대체 이런 꿀잼 영상은 누가 만드는지 궁금했다면? (그게 바로 나예요) 궁금한 건 못 참는 슬스 팀. 오승익 크리에이터를 직접 만나고 왔어요.
승익 님은 애니메이션, 내레이션 등 다양한 요소를 버무려 클라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공감할 만한 영상을 만드는데요. 탄탄한 구성과 절묘한 편집점으로 웃음을 자아내 4,000명이 넘는 클라이머와 공감대를 형성 중이에요. 볼수록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승익 님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우리 함께 한 편의 영상처럼 유쾌한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 보아요!
Scene #1. 크리에이터 오승익의 삶
어떤 계기로 클라이밍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만들게 됐나요?
우연히 '어, 해볼까?' 하며 시작하게 됐어요. 함께 운동하는 친구들과 클라이밍 한 날, 실수로 녹화 버튼을 끄지 않아 서로 그것밖에 못 하냐? 장난치고 훈수 두는 모습이 찍힌 거예요. 그걸 돌려보면서 재밌는 요소가 있는데도 완등하지 못했다고 버려지는 영상이 많음을 깨달았죠. 이걸 잘 활용하면 콘텐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만들었는데 좋은 반응으로 돌아왔어요. 이후 창작을 계속해 나가는 원동력이 됐죠.
기자회견 상황극부터 애니메이션 더빙, 직접 운동한 영상까지. 하나의 콘텐츠를 완성하기 위해 다양한 포맷을 활용하더라고요. 제작 과정이나 소요 시간이 궁금해요!
모든 영상을 기획하고 만들진 않아요. 그래서 보편적인 제작 과정 중에서 몇 가지 생략되기도 하고, 제작에 걸리는 시간도 그때그때 달라요. 예를 들면, 보통의 영상 콘텐츠는 주제를 선정한 뒤 스토리보드를 짜고, 필요한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해 적어도 일주일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요. 저는 운동하던 도중에 '오, 이거 이렇게 활용해도 되겠는데?' 하고 갑자기 떠올라 하루 만에 완성할 때도 있어요.
현장에서 바로 편집점이 잡히는 걸 보면, 혹시 본업이 영상 분야일까요?
맞아요. 축구나 야구 등 스포츠 중계 영상을 보면 하이라이트 장면이 슬로모션으로 여러 각도로, 여러 장면으로 나누어 나오잖아요? 그런 영상을 실시간으로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본업에서 활용하는 편집 기술과 클라이밍 콘텐츠를 만들 때 쓰는 기술이 살짝 결이 달라요. 작업에 쓰이는 툴도 다르고요.
그동안 만든 콘텐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상은 무엇인가요?
초기작이어서 많은 사람이 보진 않았지만, 앱 소개 영상을 제작한 적이 있어요. 기획부터 완성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고, 앱과 관련된 영상이라면 예전에 올라온 자료까지 하나하나 다 찾을 정도로 열심이었죠. 원하는 주제, 원하는 편집 기술을 다 담기 위해 유튜브로 편집 강의 영상까지 찾아볼 정도로 열성을 다했어요. 조회수가 잘 나오진 않았어도 지금까지 기억에 남고 뿌듯한 영상이에요.
조회수가 잘 나온 영상에 더 애착이 갔을 법한데, 의외네요!
물론 좋은 반응이 있었던 콘텐츠도 기억에 남아요. 성과로만 따지자면 역시 애니메이션 장면을 활용한 더빙 영상이겠네요. 솔직히 정말 놀랐어요. 다른 영상에 비해 제작 과정이 간단해서 '봐주실까?' 하고 긴가민가했거든요. 이걸 이렇게나 많이 봐주시고, 좋게 평가하실 줄 몰랐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어떤 영상이든 천 명만 봐도 좋겠다는 마음이었거든요. 그런데 3천 명 넘는 분들이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간단하게 제작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에도 '콘텐츠를 만들 때 이것만큼은 여전히 어렵다!'는 부분이 있다면요?
더빙 영상의 경우, 하루면 완성해서 소요 시간이 짧긴 한데요. 대신 녹음 작업이 항상 어렵더라고요. 제가 전문 성우처럼 연기와 발성을 배운 적이 없어서 대사를 말하다가 삑사리가 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요. 그러면 다시 녹음해야 해서 아무리 제작 시간이 짧아도 역시 쉽게 만들어지는 건 없더라고요. 하지만 항상 즐겁게 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웃음)
팀을 꾸려 어려운 점을 해결할 수도 있을 듯한데요. 팀을 꾸리지 않고 혼자 작업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하고 싶어서 만드는 거니까요. 많은 사람과 협업해 만드는 것도 재밌겠지만, 결국 내가 이 영상을 만들고 싶다는 창작 욕구에 의해 작업한다고 생각해요. 창작에 대한 생각을 충족해 주는 일이라 본업 때문에 바빠도 즐거워요. 완성작을 보면 굉장히 뿌듯하고요.
혼자 만들다 보면 본업과 병행하느라 힘들 것 같아요.
업로드 주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완성되면 올리는 식이어서 일에 지장을 주지도 않아요. 지금도 주기를 정해 업로드하기 보다는 제 상황에 맞춰 탄력적으로 진행하고 있고요. 아까 제작할 때 스토리보드를 짠다고 했는데 사실 말이 그렇지, 핸드폰 메모장에 정말 간략하게 써요. 그래서 큰 부담을 못 느껴요.
'내 영상 좀 알려졌는데?' 싶으면서 뿌듯했던 경험도 있나요?
아, 한 번 있었어요. 운동 중이었는데 친구가 와서 '아까 저기서 네 영상 보는 사람 있었어' 이렇게 알려주더라고요. 기쁜 한편, 떨리기도 했던 경험이에요. 상투적인 표현일 수도 있는데, 마치 내가 놓아준 물고기를 어부들이 노려보는 것 같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었죠.
혹시 찾아가서 대화도 걸어 보셨나요?
앗, 아니요. 하지만 이 얘기는 꼭 드리고 싶어요! 제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에요. 저를 간혹 알아보고 인사하시는데 제가 내향적이다 보니 쭈뼛쭈뼛할 때가 있을 거예요. 낯가려서 그럴 뿐이지 부담스럽고 불편한 건 절대 아니니 언제든 다가와 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웃음).
Scene #2. 클라이머로서 오승익의 삶
영상만 보고 굉장히 외향적인 분인 줄 알았는데 의외인데요. 승익 님을 더 알아보고 싶어졌어요! 언제부터 클라이밍을 시작했나요?
사실 운동을 해본 적이 아예 없었어요. 일할 때 외에는 집에서 게임하거나 애니메이션, 재밌는 영상 보기 등 집돌이 생활만 했죠. 그러다 문득 2020년쯤에 몸을 좀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헬스장에 가서 혼자 하는 근력 운동은 재미없을 것 같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운동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니 어릴 적 좋아했던 등산이 떠올랐어요.
검색창에 '산악' 키워드를 넣으니 암벽, 클라이밍이 추천 검색어로 뜨더라고요. 그렇게 의식의 흐름과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시작했어요. 팬데믹 기간에는 실내 체육시설이 전부 임시휴업 기간에 돌입해 한동안 못하고, 그러다 2021년에 다시 본격적으로 하게 됐죠.
집돌이가 암장까지 나오기 쉽지 않았을 듯한데요. 주로 어떤 암장을 방문하시나요?
고향이 경남인데 취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쭉 신림에서 살았어요. 그때 당시엔 더클라임 서울대점이 집에서 가장 가까워 운동해야겠다 마음먹고서 등록하러 갔죠. 신림점이 생기고서는 주로 그곳에서 운동하고 있어요. 가고 싶은 암장이 생기면 원정도 가고 두루두루 다니는 중이에요.
조금 멀어도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곳은 없나요?
대전 베이스캠프요! 일 때문에 대전에 간 적이 있어요. 퇴근하고 숙소로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바로 앞 건물에 '베이스캠프'라고 쓰여있는 거예요. 내가 아는 그곳이 맞나? 하면서 눈을 의심했는데 정말 맞더라고요. 일이 무척 바빠 코앞인데도 못 갔어요. 조식 먹는 곳에서도 보이더라고요. 못내 아쉬워서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고 싶어요.
출장 갔을 때 짬 나면 운동하러 지역 암장을 방문하기도 하나 봐요.
아, 희망 사항일 뿐이에요. 예전에는 짐을 챙겼어요. 이번엔 부산 출장이라고? 그러면 당연히 웨이브락 가 봐야지! 하고 바리바리 쌌는데 결국엔 한 번을 못 가더라고요. 편집 스케줄을 다 마치고 운동 가려고 하면, 이미 암장이 마감했을 정도로 늦은 시간이거나 제가 녹초가 됐거나 해서 그냥 포기했어요. 일 때문에 가는 거고, 여유가 돼서 암장을 방문해도 본업에 지장이 생길까 봐 우려되더라고요. 이제는 출장 기회 엿보고 가기보다는 아예 암장 투어처럼 당일치기나 주변 관광 겸해서 여행 계획을 세워요.
오, 원정 갈 암장을 고를 때 위치 말고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있나요?
정적인 무브보다 다이나믹 요소가 많은 문제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무엇보다 안 다치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뛰어도 안전할 수 있도록 문제를 세심히 세팅하는 암장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옆으로 뛰는 동작을 하면 발목이 말린다고 해야 하나? 쉽게 다치겠더라고요. 위로만 뛰어도 되는 문제가 많으면서 그 외의 무브도 재밌다고 느끼면 맘에 들어서 자주 찾게 돼요. 서울에 있는 암장을 예로 들면 볼더프렌즈, 피커스 같은 곳들이요.
그렇다면 승익 님만의 자신 있는 무브는 무엇인가요?
리치를 활용해 완등할 수 있다면 그런 문제는 적극적으로 해요. (키, 암리치 모두 177~180cm!) 앞서 얘기한 것처럼 뛰는 문제도 좋아하는데 정말 열심히 뛰고 분석해요. 제 리치로도 아슬아슬하게 홀드를 잡지 못한다면 원인을 계속 찾아요. 몸을 벽에 더 붙이도록 의식해야겠다, 달려가는 추진력이 약하다면 반동을 더욱 세게 줘야겠다, 이런 식으로 조정하고 반복적으로 문제를 풀어요.
아, 겁이 많은 편이라 슬랩 벽에 있는 문제, 발이 안 좋은 홀드만 주어지는 문제는 선호하지 않는데⋯ 이런 취약점을 극복하는 마음가짐도 가지려고 노력 중입니다. (웃음)
Scene #3. 오늘도 인간 오승익은 절찬리 상영 중!
앞으로는 어떤 영상을 만들어가고 싶은지 궁금해요.
목표를 크게 두고 있지 않아서 이럴 것이다! 하고 거창히 말할 건 없지만요. 계속 즐겁게 클라이밍 릴스를 만들고 싶어요. 그러려면 '스스로 뭐가 된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기!'가 중요한 듯해요. 조금 민망한데, 친구들이 가끔 인플루언서라고 놀리거든요.
하지만 저는 스스로를 인플루언서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나 뭐 돼?' 하고 빠질 것만 같아요. 으스대는 행동을 할까 봐 걱정되고요. 나 자신을 잃지 않고 계속 즐겁게 창작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굳이 수식어를 붙이자면 인플루언서보다는 '광대'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요?
클라이머로서는 목표가 있을까요?
이것도 정하지 않았어요. 이루고 싶은 경지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더클라임 기준으로 보라색 문제를 밥 먹듯이 풀고, 입가심으로 회색을 풀어야지 하는 마음을 잠시 품긴 했지만요. (웃음)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퇴화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은 여기서 실력이 더 녹슬지만 말자는 생각으로 트레이닝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승익 님에게 '클라이밍'이란?
부끄럽긴 한데, '조명' 같아요. 하이라이트 영상을 편집하는 직업 특성상 스스로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들을 위해 조명을 받쳐주는 사람, 조명 뒤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그런데 클라이밍 영상을 만듦으로써 제가 많은 분에게 사랑받으면서 조명을 받게 됐죠. 또 연고도 없는 서울에 홀로 적응하며 생활이 어두웠는데, 클라이밍 하면서 친구도 사귀고 활기를 되찾기도 했고요. 이런 여러 가지 이유에서 클라이밍이 제 삶에 조명을 비춰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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