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인천

by 시느

우리 가족이 동인천으로 이사한 해를 기억한다. 2001년 어느 여름날. 나는 8살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마친 상태였는데, 여름방학 때 인천으로 이사한다는 부모님의 얘기를 듣고 마냥 들뜨고 설렜던 기억이 난다. 헤어진다는 것, 기약을 알 수 없는 만남이라는 것이 내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는지 알지 못했던 나이였다.

 

동인천 만석동에 있는 영풍아파트 103동 103호. 그곳이 서울을 떠나 새로 이사한 집이었다. 분양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외관에서 어렴풋이 페인트 냄새―흔히 말하는 새집 냄새―가 느껴지던 아파트는 어린 내게 ‘시작’이라는 감정을 알려주었다. 약 7년 반 정도 살았던 신월동의 일들은 벌써 뒤로 하고 새로운 집에서 쌓을 기억, 새로 다니게 될 학교, 처음 만날 친구들에 대한 기대감만 가득 찼던 이삿날이었다.


포장이사 업체 직원들과 부모님이 짐을 분주하게 나르는 동안, 나는 반려견인 로즈를 안고 다니며 아파트 단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서울에서 살던 아파트는 단지 수가 3개였는데, 영풍아파트는 그보다 조금 더 많았다. 단지 안에 큰 놀이터가 있고, 아파트 옆에 화도진공원도 있어 로즈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녔다. 이것이 동인천에 대한 내 두 번째 기억이다.​


첫 번째 기억은 7살 때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인천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대한 기억이다. 아버지는 내가 7살 때인 2000년부터 서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서점을 원래 운영하던 사람은 아버지의 큰형인 큰아버지(백부)였는데, 큰아버지의 건강이 서서히 나빠지기 시작해 막내인 아버지가 서점을 이어받게 되었다. 서점을 이어받기 전, 아버지는 한 회사의 구매부 직원이었다. 회사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고 관리하는 직무여서 그랬는지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서점을 운영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다시 지하철로 돌아가자면, 당시 피아노 학원 원장이었던 엄마는 일이 없는 날이면 서점에서 아버지를 도왔다. 나는 그때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동인천으로 갔다.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문 앞에 서 있다가 창문으로 풍경을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어머니가 지었던 복잡한 표정 또한, 기억한다. 학원과 서점 일을 동시에 하느라 고단했던 표정이었을까, 서점을 운영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 예감했던 표정이었을까. 그것은 그때의 어머니만이 알리라.

서점은 동인천역에서 도보로 가면 약 7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다. 지도상으로는 동인천역 8번 출구로 나와 왼쪽으로 꺾으면 보이는 큰 골목 입구 오른편에 있었다. 서점이 사라진 지금은 ‘아디다스 동인천점’이 입점해 있다. (이 글을 다시 수정하기 시작한 지금은 그마저도 사라져 통신사 대리점이 입점해 있다.)


2012년까지 아버지의 서점은 동인천의 명물이라 불리며 다양한 책을 팔았었다. 인터넷 서점이 강세를 차지하기 이전까지는 그럭저럭 손님이 있는 편이었다. 역 근처에 있고 주변에 인일여자고등학교, 인일여자중학교, 제물포고등학교, 송도중학교, 인성여자고등학교 등 참고서와 문제집을 활용하는 학교도 많이 있어 학교를 상대로 책을 대거 납품하기도 했다. 그러나 맞은편의 서점이 6층까지 있는 큰 건물인 데다가 할인률 또한 최대 30%였던지라, 더욱이 인터넷 서점이 인기를 끌면서 부모님의 서점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었다.


어머니는 서점을 운영한 12년(2000년-2012년)을 ‘광야의 시기’라고 불렀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탈출했으나 신이 그들을 광야에 머물게 해 훈련시켰던 그 시기. 서점을 운영하는 일은 그만큼 녹록지 않았다. 부모님은 서점의 부도만은 막고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결과부터 말하자면, 모두 대참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