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서관은 지금의 독립서점과 같이 어떠한 주력 테마를 가지고 운영하는 서점이 아닌, 우리가 ‘동네서점’ 하면 떠오르는 그 이미지대로 운영했다. 다시 말해 고객이 원할 법한 책이라면 모두 들여놓는 서점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벽장은 슬라이딩 형식이었다. 규모는 동인천역 근처에 있는 서점들보다 작아도 웬만한 책은 다 있어야 했기에 최대한 많은 서적을 들여놓기 위해서였다.
책을 받아오긴 했으나, 손님이 끝끝내 찾지 않아 벽장이나 매대에서 밀려난 책들은 서점 곳곳 위치한 벽장 뒤에 숨겨진 창고, 쪽방 신세가 됐다. 그리고 그렇게 밀려난 책은 서점 주인의 딸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2학기가 시작되고, 전학 간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긴 했으나 같은 학원까지 다니는 친구는 없었다. 같이 놀 친구가 없는 날에는 나는 항상 서점에서 부모님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8살이라면 한창 뛰어놀 때인데 한 자리만 지키려니 얼마나 좀이 쑤셨겠는가. 당연히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놀고 싶다고 어머니를 졸랐지만, 어머니는 밖에 혼자 나가면 위험하다고 했다. 그 대신 손님이 없을 시간에 서점 곳곳 숨어 있는 쪽방을 보여주었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라는 뜻이었다.
바닥이나 틈 속에 먼지가 자욱하고 종이가 누렇게 변색된 책이 가득한 공간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이의 눈엔 아지트로 보였다. 쪽방 중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대로 눈을 붙여 쪽잠을 잘 수 있도록 캠핑용 침대가 놓인 곳도 있었다. 침대가 없는 쪽방에는 어머니가 작은 원형 의자를 놓아주었다. 오래된 책 냄새는 놀랍게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먼지가 쌓인 책이지만 개의치 않고 집어 들어 한 장 한 장 넘겨 읽으며 뜻을 모르겠는 단어나 문장을 어머니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내 질문을 받으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떠듬떠듬 일상에 있을 법한 상황을 예시로 들어 뜻을 설명해주었다.
쪽방까지 밀려난 책들은 대부분 어려운 내용이어서, 유행이 지나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책이었다. 그런 책을 초등학교 저학년인 내가 손쉽게 이해하고 읽어 나갔을 리는 만무하다. 그때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쪽방에서 홀로 앉거나 누워 책을 보던 기억은 생생하다. 문틈으로 살짝 보이던 서점의 전경도, 쪽방 천장에 덩그러니 설치된 주황색 조명 빛깔도, 페이지를 넘기다 지루해지면 일렁거리는 손그림자로 늑대나 개 모양을 만들어 장난을 쳤던 기억도 어제 일과 같이 생생하다.
그 쪽방을 돌아다니면서 글의 내용을 파악할 만큼 자라고, 읽을 만한 책을 가려낼 줄 알게 되며 나는 점점 ‘작가’라는 꿈을 꾸게 됐다. 부모님이 서점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그 이유는 일곱 번째 단어인 ‘새벽’에 나온다―, 나도 쪽방에 있는 시간이 덩달아 늘어나면서 공상하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주로 소설책을 읽었기에 자라면서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어떻게 보면 필연적일지도 모르겠다.
서점에 쪽방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