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 인생 같지만, 괜찮을지도?

나의 행복일기 (1)

by 시느

“에헤이, 이것 참. 조졌네.”


작년 12월의 어느 날, 화장실 거울 앞에 선 나는 얼굴을 보며 혀를 찼다. 자다가 막 일어나 잔뜩 헝클어진 머리, 눈곱이 눈꺼풀과 속눈썹에 여기저기 들러붙어 있고 건조한 공기로 푸석해진 피부, 입술은 허옇게 일어났다. 사람의 인상을 한층 더 퀭하게 만들어주는 다크서클과 기미까지. 그야말로 한숨이 나오는 몰골이었다.


그즈음 나는 연말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듯이 지내고 있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있고 반짝반짝한 조명으로 가득한 식당,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바빠서 통 보지 못한 친구들과 약속을 잡기는커녕 집에 있는 날이 더욱 많았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동네 카페에 가거나 헬스장이나 클라이밍 센터에서 운동했다. 한 해를 열심히 살아낸 일을 기념해야 할 연말을 나는 비관적인 마음으로 보냈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처럼 어딘가 ‘조진’ 것 같은 인생을 사는 기분이어서.


글쓰기에만 몰입하고 싶다는 생각에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는 기업의 사무보조 계약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업무 시간 중 여유가 생기면 책을 읽고 머릿속에 들어있던 문장을 써 내려갔다. 퇴근해서도 도서관에 가고 운동을 했다. 이후 문예창작 대학원 서류 접수 기간에 맞춰 퇴사하고 입시를 위한 학업계획서를 준비하고 신춘문예에 제출할 소설을 썼다. 때마침 눈여겨보던 회사의 채용 소식도 접해 지원서를 제출했다. 퍽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결심하자마자 거침없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서, 걸림돌이 될 만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아서. 이대로면 내가 상상한 최고의 시나리오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인생은 역시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왜 내가 풀 죽은 모습으로 거울 앞에 있겠는가. 대학원도 신춘문예도 채용 면접도 전부 탈락했다.


내게 무엇이 부족했을까. 선택받은 이는 무엇이 있었을까. 나는 그동안 최선을 다해 살지 않았던 걸까. 나의 강점과 장점보다는 내게 없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시선을 내 안에 두지 않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미디어와 인스타그램에서 보여주는 이의 모습을 좇았다. 비교는 대개 자신에게 득이 되지 못하고 해만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일주일 내내 그런 마음으로 보내니 햇볕과 물을 받지 못해 말라비틀어진 식물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씻으려고 들어간 화장실, 무심코 바라본 거울 속의 나. 그 모습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살펴보다가 자신을 오랜 시간 들여다봤던 때가 언제인지 시간을 더듬어봤다. 시들어 이파리가 축 처진 나를 문득 위로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볕이 드는 곳에 내놓아 물을 뿌려주고 선선한 바람을 맞게 해줘야지. 이제 핸드폰은 그만 내려놓자. 남보다는 거울 속의 나를 똑바로 직시하고 공들여 가꾸자.


운동복을 대충 챙겨입고 헬스장으로 갔다. 팔다리를 휘적거려 간단히 스트레칭한 뒤 러닝머신 위를 냅다 달렸다. 40분을 쉬지 않고 달리니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가쁜 숨을 연신 내뱉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볼과 손, 허벅지가 보였다. 샤워실로 가 땀을 씻어냈다. 몸을 잘 말리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밖으로 나섰다. 따뜻한 물로 막 씻고 나온 몸과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만나자 상쾌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까의 한숨과는 정말 다른.


햇볕과 바람을 맞았으니 물을 마실 차례. 이런 날엔 꼭 순댓국이어야만 한다. 단골 식당인 순댓국집으로 빠르게 발을 놀렸다.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얼른 “얼큰 순댓국 하나, 막걸리 하나 주세요.”라고 말했다. 주문받으러 온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무심한 듯 세심한 손길(성의 없이 탁! 내려놓지 않았다)로 다대기와 새우젓, 들깻가루, 소금, 후추를 올려두고 홀연히 사라졌다. 종일 누워있다가 힘차게 뛰었더니 뱃속이 시끄럽게 요동쳤다. 다행히도 상은 금방 차려졌다. 잘 익은 깍두기와 양파절임, 겉절이, 순댓국에 넣을 부추, 뜨거운 김이 펄펄 올라오는 벌건 국물, 그리고 시원한 막걸리.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막걸리부터 집었다. 위아래로 잘 섞이도록 조심조심 흔든 뒤 양은 잔에 따랐다. 이게 바로 내 생명수이고 활력이다. 속으로 경건하게 외치고서 쭉 들이켰다. 감칠맛과 시원한 감각을 음미하면서 숟가락을 들었다. 순댓국에 들깨를 팍팍, 푸짐히 넣은 뒤 떠먹었다. 막걸리와 뜨끈한 순댓국이 속에서 한데 만나며 순식간에 몸이 데워지는 느낌이었다. 순대를 하나 집어 입김을 후후 불어 식히고 겉절이와 함께 먹었다.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막걸리를 한 잔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남김없이 마시자 절로 하! 하는 소리가 났다. 국물을 후후 불고 막걸리를 하하 마시고. 어쩐지 웃음이 났다.


순댓국 한 숟갈, 막걸리 한 모금을 천천히 반복하니 어느새 한 그릇을 비웠다. 막걸리는 다 마시지 않고 따르면 한 잔 가득 더 나오도록 남겼다(취기가 거나하게 올라 울지 않도록. 최근 취하면 우는 주사가 생겼다).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며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후후하하. 아까 혼자서 생각한 것을 떠올리자 다시금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행복하다.”


그 말을 함과 동시에 결심이 섰다. 에헤이, 조졌네, 그래도 다시 한번 해보자. 그리고 이게 나의 행복이구나, 생각했다. 땀이 삐질삐질 나올 만큼 힘차게 움직이는 것, 뜨거운 물에 몸을 폭 담그는 것, 그 뒤에 적당히 찬 바람을 맞는 것, 좋아하는 음식을 배불리 먹는 것.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실패를 겪어도 행복한 기억을 잘 쌓아두면 어찌저찌 견딜 수 있겠다. 새롭게 시작할 힘이 나겠다.


책상 앞에 앉아 2026년을 위해 미리 준비한 다이어리를 펼쳤다. 첫 페이지에 새해 다짐을 적기 시작했다. ‘1. 행복 일기 쓰기 →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붙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