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 일기 (2)
내게 미담이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 왔다. 길을 지나가는 누군가의 어깨를 붙잡고 말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참 좋은 사람이네요’, ‘훈훈합니다’와 같은 소릴 들을 수 있는. 미담이 있는 사람이라면 타인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고 곁에서 내치기보다는 바로 옆에 두고 싶은 사람이니까. 아껴주고 싶은 사람일 테니까. ‘너는 내게 좋은 사람이야’라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속에 작고 따스한 빛을 간직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것이 있다면 우울과 절망이라는 터널을 지나도 빛을 벗 삼아 뚜벅뚜벅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어둠 속에 있어도 행복할 거라고.
하지만 내게 그럴 만한 일화가 있을까? 아무리 기억을 뒤져보아도 떠오르지 않았다. 남에게 선행을 베풀거나 기부하거나 희생하거나 힘이 되는 조언을 했다던가 하는 일이. 작은 빛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암담해지고 말았다. 개인주의가 만연하다 못해 이기주의로 변모해 세상이 다소 삭막해졌다지만, 나 또한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가 사라졌다는 방증 같아서. 그래도 나는 내가 퍽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전부 오만이고 교만이었구나.
일주일 동안 참담함 속에 있다가 남편에게 넌지시 물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 그래도 여러 이야기를 해주겠지? 기대하며.
“항상 내 옆에 있어 주고 나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해주죠. 존재 자체가 미담이야~”
그게 다라고? 너무나도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대충 생각해 낸 대답이 아닌가! 아무리 우리가 결혼한 지 1년을 갓 넘긴 신혼이라지만, 연애 기간이 있는데 아직도 콩깍지가 씌어있을 리도 만무하다. 똑바로 대답하라며 남편을 다그쳤다. 눈을 부릅뜨고 나름대로 위협적으로 말했다.
“대충 말한 게 아니고 진짠데…….”
남편은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아 상처받았다며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진짜인 듯싶었다. 이내 부끄러운 감정이 밀려들었다. 나는 남편처럼 한 사람을 그 자체로 바라봤던가.
사실 남편에게 나의 미담을 물었을 때 그런 대답이 돌아오리라 조금은 예상했다. 남편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과 표정이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연애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가 나를 빤히 보고 있을 때면 어딘가 가슴께가 간질거렸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날 때나 카페에서 마주 보고 앉아 있을 때 남편과 눈을 마주치고 있자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 조심히 다뤄야 할 존재, 상처받기 쉬운 존재가. 나를 말없이 바라보는 그에게 ‘왜?’하고 물어보면 다양하면서도 결이 같은 대답이 매번 돌아왔다. 사랑스러워서, 예뻐서, 귀여워서. (이걸 스스로 태연하게 썼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손가락이 안으로 곱아들 것 같다.)
나는 항상 자신을 기준 미달인 사람처럼 대했다.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모습이 많아서 그랬다. 글을 잘 쓰고 목표한 바를 척척 이뤄내고 갈팡질팡하며 인생을 살아가지 않고 뚜렷한 방향이 있는 사람이. 완벽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완벽해지고 싶었다. 기준치가 한껏 높은 상태이니 나는 매일 실망하고 자책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때마다 그는 옆에서 괜찮다고 도닥여주었다. 무엇보다 내가 행복하면 좋겠다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감추려고 가시를 잔뜩 세웠던 내가 그 말로 인해 점차 둥글게 변해가는 걸 느꼈다. (몸도…)
이번 질문도 그랬다. 다시 자신을 한없이 낮잡아보는 것 같아서 든든한 내 편인 남편에게 부러 물어본 것.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좋았겠지만, 한 장면만을 말할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많다는 뜻이겠지. 내가 그를 위하고 있다고 생각한 일이.
남편이 내게 더 해줬으면 바랐던 지난 날들이 떠올라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밤이다. 이제는 나를 향한 미담을 찾기보다 타인을 향한 미담을 차곡차곡 쌓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