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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mita Jan 07. 2023

공부는 유전자일까?

ADHD 서울대생의 생각

"공부는 유전자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일 것입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네가 노력을 안 해서 공부를 못하는 것이다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 유전자론'의 대표적 주자가 메가스터디의 설립자 손주은 회장님일 것입니다.

대치동의 전설적인 사탐 스타 강사이자 인터넷 강의의 지평을 열어 요즘까지도 사교육 업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메가스터디의 설립자입니다.

손주은 회장님이 현직 강사 시절, 사탐 OT 때 학생들에게 물어봅니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뭐니?"

다양한 대답이 나옵니다. 노력, 의지, 끈기, 잠 줄이기. 직설적으로 까버립니다.


"너희들이 여기서부터 잘 못 알고 있어. 공부를 잘하고 못 하고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유전자'야.  80% 이상이 바로 여기에서 결정 난다."


이 얘기를 들은 수 십 명의 학생들이 박장대소합니다. 어이가 없어하죠.

하지만 요즘 이런 얘기를 하면 이런 반응이 나올 것 같지는 않군요.


저는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ADHD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를 온, 서울대 중에서도 높은 과를 온 사람이니까 다르게 말하지 않을 것 같으신가요?


유감스럽게도 전 공부 유전자론 찬성론자입니다.

제가 ADHD 임에도 어마어마한 노력을 통해 뛰어난 성취를 한 것은 맞지만 그 '성취'의 '가능' 여부는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공부 유전자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수학의 정석 고등 수학을 처음 공부했을 때였나요.

ADHD 답게 선생님 수업 내용이나 책 개념은 딱히 이해는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한국 입시형 문제풀이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딱히 복습 열심히 안 해도 학원 시험에서 한 두 개 틀리더라고요. 재수 없게 느껴진다면 유감입니다.


주변 서울대 지인들과 이야기해봐도 다들 공부 유전자론에 찬성합니다. 본인들도 알 것입니다. 대단한 노력을 통해 어마어마한 성취를 거둔 데에는 본래 내게 부여된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요.

서울대 공대를 다니는 지인과 술을 마시면서는 서로 기성세대를 욕했습니다. 노력만 하면 서울대 연고대 무조건 갈 수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세뇌시킨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요.


물론 시대상이 반영된 인식이긴 하였을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 말로는 자기 때만 해도 공부 내용이 현재의 수능이나 내신처럼 복잡하고 어렵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공부 열심히 안 했어도 1-2년 열심히 하면 꽤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내용은 되었었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요즘 세대를 불쌍해하셨습니다.


유전적 결함을 타고난 ADHD이기에, 유전자가 의지, 끈기, 습관, 노력, 지능을 결정하는 데 매우 결정적인 요인임을 직감적으로 경험적으로 실제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럼 결론이 뭐냐

너 타고난 거 잘난 척하는 거냐

너 대단한 사람이라고 뽐내는 거냐

타고나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냐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실 것입니다.


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고자 할 뿐입니다.

현실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사람보다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이 더 강한 힘을 가집니다.

더 주체적이고 독립적이고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앞의 손주은 회장님의 말을 다시 한번 봅시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유전자다"

여기서 손주은 강사님은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유전자라고 했습니다.

SKY 수준의 대학을 갈 수 있는지 여부 자체는 이미 타고난 재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러분 SKY에 입학하면 성공한 삶, 존경받는 삶,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인가요?


학벌이라는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제가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더 넓은 세상에 나가기 위해 동아리 회장, 교환학생 등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해 보았었는데요. 저는 요즘 세상에서는 오히려 학벌이 나의 무능함을 더 부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봅니다. 학벌은 내가 내신, 수능 성적이 좋았다는 것을 보증해주는 것일 뿐 내가 능력 있고 일머리 있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임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저는 해외 생활을 하면서 제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었는지, 최재천 교수님이 왜 서울대생을 온실 속 화초라고 표현했는지를 살짝 이해했습니다. 오히려 학벌이 저보단 덜 화려한 한국 친구들이 더 주체적이고 존경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더 능력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변 서울대 지인 중에서 본인의 한계를 느끼고 필요 이상으로 좌절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뭐든 잘할 수 있다고, 이 사회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가질 수 있다고 믿고 살아왔지만 현실의 높은 벽을 보고 도무지 본인의 무능력을 인정할 수 없었을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최근에 손주은 회장님을 유튜브에서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공부왕찐천재 홍진경' 채널에서 하나는 '안철수의 미래혁명' 영상에서였습니다.

'공부 유전자론'을 외치고 대충 공부하는 학생들을 '쓰레기'라고 비난하던 과거의 태도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공부왕 찐천재 홍진경 영상에서 홍진경 씨가 "공부는 유전자가 가장 중요한가요?" 물어보니

"공부는 유전자가 1차적으로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상당히 유해지셨더라고요.


안철수와의 교육 대담 영상에서는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빚이 있다고 얘기하시더군요. 본인이 뭔가 길을 잘못 인도한 것 같다고 말입니다. 공부 열심히 하면 무조건 성공하고 무조건 잘 살 수 있다고 가르쳤으나 막상 그 학생들이 30대가 되었을 때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체감하셨다고 합니다.


이제는 얼마나 더 삶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 얼마나 삶을 더 즐겁게 할 것인가, 잘 노는 것이 생산이 되는 시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미래 사회는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부정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기존의 질서를 파괴 및 부정하고, 남들과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능력.

ADHD가 가진 수많은 강점 중 하나입니다. 저는 ADHD를 삶의 무기로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ADHD는 단점이 잘 관리되기만 하면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공부에 있어서 1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유전자입니다. 입시 공부, 고시 공부 등에서 내가 최대한의 노력을 했을 때 얼마만큼의 성취를 거둘 수 있을지, 내가 얼마만큼의 노력을 쏟을 수 있을지는 분명 유전자에서 상당 부분 정해집니다.


공무원 시험, 대학 입시, 고시, 대학 시험 등 나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는 유전자로 얼마만큼 성취할 수 있을 지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는 내가 남들보다 얼마나 잘할 수 있을 지에 연연해하는 태도는 전혀 이롭지 않습니다. 일단 살고 봐야지요.


하지만 시험 성적을 따기 위한 공부만이 공부 전체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다 특정 분야에 대해 남들보다 나은 재능이 있습니다. 과거 저의 경우는 대학 입시를 위한 시험 성적 성취를 위한 공부가 그것이었습니다.

요즘은  남들이 쉽게 생각하지 않는 관점에서 생각하는 능력, 흥미 있어하는 일을 밀어붙이는 추진력,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 나의 관점에서 독창적으로 창조해내는 능력 등에서 보통 사람들보다 살짝 나은 재능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최대한 저의 방식에 맞게 발휘하고 프라이드와 능력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요즘은 그런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사회에서 살아남고 성공하는 데 더 중요한 자질이 될 수 있습니다.


'성취'와 달리 '성장'과 '발전'의 여부는 유전자의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저 꾸준히 하고만 있다면 조금씩 발전해 나갑니다. '공부는 유전자'등의 생각이 부정적으로 번져 자기 발전을 멈추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타인과 비교하기 않고, 내가 이것을 하면서 즐거움, 생산성, 보람을 느낀다면 곧 성장과 발전으로 연결되고 언젠가는 마음만 먹는 다면 상당한 성취를 낼 수준으로까지 능력을 배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창조하고 삶을 풍요롭게 채워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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