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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Jul 07. 2023

미안해! 내가 웃어서

최숙희 작가의 그림책 <괜찮아>를 일 학년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읽어 주었다. 아직 한글이 서툴고 쓰기도 힘들어하는 성이에게는 따로 여러 번 읽어 주었다. 재미가 붙었는지 성이는 점심시간에 친구와 10번이나 읽더니 자신감이 뿜뿜 솟아나서 나에게 읽어 주겠다고 했다.


"정말 네가 선생님한테 읽어 준다고?"

성이는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림책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첫 장을 촤악 펼치니 이 그림이 나왔다.

성이는 활짝 웃으며 오른쪽에다 손가락을 대고 큰소리로 읽었다.

"개미는 작아."


'오호, 진짜 읽는구나.'

나는 성이가 글자가 있는 왼쪽이 아닌 오른쪽에 손가락을 댄 게 약간 마음에 걸렸다.


"와! 성이가 읽어주니까 더 재미있는데."

내 말에 성이는 신이 나서 계속 읽어 주겠다고 했다.


다음장을 촤악 펼치니 이 그림이 나왔다.


성이는 개미가 나뭇잎을 가지고 가는 그림을  자꾸자꾸 가리키면서  입만 달싹 달싹거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화장실이라도 갈 것처럼 허둥대며

자기 자리와 선생님 자리를 왔다 갔다 했다.

그래도 뭔지 떠오르지 않는지

아무래도 기억이 날듯 말 듯 한지

다시 한번 그림을 꼬옥꼬옥 눌러본다.


그렇게  눌러보고

다시 짚어봐도

여전히 기억이 안 나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는 성이 만큼 안절부절못해서 거들어 주려고 물었다.

"성이야, 이거 뭐지? 우선 큰 글자,

여기 세 개 있는 거 말이야."

"........"


한참을 말이 없던 성이가 드디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세상에나!

'괜찮아'를 짚으며 작은 소리로 "미안해."라고 읽는다.


'어이쿠.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나는 떠듬거리며 읽는 성이를 보고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빨개다.  


성이는 여러 번 읽는 동안 저절로 외워졌나 보다.

미안해. 나는 힘이 세.

미안해. 나는 무섭지 않아.

미안해. 나는 잘 기어가.


성이가 괜찮아 대신 미안해를 넣어서 계속 읽으니까 나는 "푸하하!" 박수를 치며 웃었다.

내가 웃으니까 성이도 따라 웃었다.
 
나는  집에 와서 세수를 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왜 성이가 미안해라고 읽었는지.
우리 반에서 뭔가를 잘못하면 친구에게 가서 눈을 쳐다보면서 이런다.

"미안해!"
그러면 친구는 이렇게  대답을 한다.

"괜찮아!"


바로 이거였다.

"괜찮아"가 생각이 안 나자 성이는 그 앞에 하던 말,

"미안해"가 떠 오른 것이다.

괜찮아 대신 미안해가 된 거다.


성이야, 괜찮아.

미안해 다음은 괜찮아니까.

아마 다음에는 괜찮아를 제대로 읽을 수 있겠지?    

 

성이는 그림책 마지막장을 이렇게 읽었다.



미안해. 내가 웃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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