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_테드 창 中 )
현자들은 말한다.
“세상엔 돌아오지 않는 것이 네 가지가 있다.
입 밖에 낸 말,
공중에 쏜 화살,
지나간 인생,
그리고 놓쳐버린 기회.”
우리는 돌아오지 않는 것을 두고
‘그립다’는 표현을 쓰지는 않는다.
그리워하는 대신 후회를 한다.
돌아오지 않으니까, 돌아올 수 없으니까
그리워할 필요도 가치도 없다.
그리워할수록 더 비참해지는 것 같더라.
놓고 보면 모두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표현해놨다.
언뜻 보니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이 네 가지는 조금씩 다른 인상을 풍긴다.
말은 절제하고 조절할 수 있다.
화살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인생은 나의 의사와 관계 없이 항상 흘러간다.
기회는 내가 원할 때 찾아오지 않고
원하지 않을 때 불쑥 찾아온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말은 천냥 빚을 지기도 하고, 또 갚을 수도 있다.
그래서
화살은 정확하지 않으면 의미가 퇴색된다.
그래서
인생은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면 모두 ‘과거’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된다.
그래서
기회는 알아보지 못하면 여느 평범한 일상인 척,
나를 스쳐 지나가버리는 바람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은 평소에 연단하며 준비하지 않으면
결코 이룰 수 없다.
어떻게 준비해야되는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결국 스스로 해내야만 한다.
덜 비참해지는 걸 넘어서
후회하지 않고 웃어보이기 위해서는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상인이 연금술사의 문을 내게 소개한다.
왼쪽 문으로 들어가면
10년 전의 오늘로 넘어갈 수 있다.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면
10년 후의 오늘로 넘어갈 수 있다.
문을 넘어갔더라도 다시 문을 넘으면
지금 이 순간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
한쪽만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양쪽 모두 원할 때마다 제한없이 드나들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문을, 언제 열고 싶을까.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돌이키고 싶다면
왼쪽 문을 넘어야 한다.
돌이킬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선
오른쪽 문을 넘어야 한다.
그러면 나는 언제 비참함을 느낄까.
그걸 알아내면 조금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걸까.
고민하던 중에 한 가지가 또 떠오른다.
문을 넘는 건 정말 쉽다.
단 한 발자국이면 우린 넘어갈 수 있다.
아주 간단하다.
그런데 사실, 오늘도 그렇다.
단 한 발자국이면 충분하다.
오늘도 돌아오지 않는 것 중에 하나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여기서 쉬어갔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