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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ia Dec 02. 2022

스페인 5년 10개월의 생활을 마치고

2017년 2월 7일, 인천 국제공항에서 스페인행 비행기에 오르고 약 5년 10개월이 지났다. 어느덧 한국에 들어온지도 2주. 이제 겨우 시차 적응이 됐으나 내 생활습관 곳곳엔 아직도 스페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


2022년 11월 16일,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버스를 타고 동네로 왔다. 한국에 마지막으로 왔던 것은 2년 전이었다. 거리를 채운 한국인들은 낯설었고, 그들이 입고 있는 옷과 얼굴에 쓰여있는 마스크도 어색했다. 스페인은 실외 마스크를 언제 벗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이미 오래전부터 -아마 올해 초부터- 마스크 없는 생활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착용한 마스크는 답답했고, 스페인과 확연히 다른 날씨는 너무 추웠다. 2년 만에 방문한 올리브영에선 나도 모르게 "Una bolsa, por favor (봉투 하나 주세요)"라는 스페인어가 튀어나올 뻔했다. 이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이방인 인척 하지 말라며 웃었다. 이미 나는 스페인 생활에 너무 익숙했으며 생각보다 그 흔적은 오래갔다. 


2주가 지난 지금은 내 조국에 당연히 적응을 했지만 군데군데 스페인에서의 습관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후 닫힌 버튼을 누르지 않고 기다린다거나, 식당에서 종업원과 눈이 마주치길 기다리다가 아차 싶어 벨을 누른다거나, 편의점에서 카드를 꽂지 않고 태그 하려 하거나 등의 소소한 일이다. 스페인에선 대부분의 엘리베이터에 닫힘 버튼이 없고, 식당에서 종업원과 눈이 마주쳤을 때 눈짓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스페인 신용/체크카드를 만든다면 태그 해서 결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습관처럼 남아 있는 모습은 점점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 사실이 조금 아쉽기도 하다.


스페인은 내 20대의 반을 함께 보낸 곳이고, 나의 가치관을 바꾼 곳이며 앞으로 몇십 년을 더 살든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함께 한 곳이다. 나는 80이 넘은 할머니가 되어서도 2017년 2월 8일, 발렌시아 길거리를 걸으며 맡았던 오렌지 가로수의 향기와 설렘을 잊지 못할 것이다. 또한 앞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한없이 우울하며 치열하게 내 미래를 고민했던 쿠엥카에서의 매일 밤도 떠올릴 것이다. 스페인은 내 인생에서 가장 설레고 행복했던 순간, 가장 우울하고 힘들었던 순간을 함께 한 곳이다.


언젠가 돌아갈 것이다. 언제, 어떻게,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안정적인 삶을 누린다면 그 마음이 식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갈 것이다. 언제고 가서 내 인생에서 소중한 부분을 함께 한 사람들을, 장소를, 추억을 다시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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