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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부부 7시간전

유리창이 깨졌다(1)

나는 주 6일제다. 자영업에게 주 6일이란 놀랍지 않다. 7일도 허다한 마당에 6일은 감지덕지로 여기고 있다. 그 대신 하루의 휴일, 일요일만큼은 어떻게든 사수해야 하는 나의 소심한 워라밸이다. 일요일을 온전히 쉬고 나면 월요일도 그럭저럭 눈이 떠지고 한 번에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휴일이라고 너무 많이 잔다던가, 과하게 싸돌아다녔다면 주 8일을 일한 것 같이 그 여파를 고스란히 느낀다. 그러니 일요일의 워라밸은 덜하지도, 심하지도 않게 잘 맞추어야 하는 균형이다. 


일요일 아침의 공기는 다르다. 차분하고, 맑다. 막 명상에서 눈을 뜬 기분. 그러고 나서 시계를 보고도 아무 걱정 없이 다시 눈을 한번 감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내 몸은 이미 6시 생체 알람이 입력되어 있고, 일요일도 어김없이 시스템은 작동한다. 하지만 상관없다. 다시 스위치를 내리고 체온으로 뜨거워진 이불을 피해 자세를 바꾼 다음 다시 잠이 들면 그만이다. 이 행복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부산으로 이사를 온 지 2년이 꼬박되었지만 아직 그 이름과 위치를 알지 못한다. 주 6일의 폐해였다. 하루만 더 놀았어도 부산 여행지 정복을 마쳤을 텐데.. 생각해 보니 아닐 것 같기도 하다. 이 날은 웬일인지 부산의 근교도시로 나가고 싶었다. 양산이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보리밥집에 갔다. 이 식당과는 인연이 있었다. 부산에서 취미를 찾겠다며 대뜸 스케이트보드를 사더니 몇 달을 잘 배웠다. 하지만 그러고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듯 얼마못가 보드는 차 트렁크 속으로 들어갔다. 그 후 잊고 지냈던 스케이트 보드 강사선생님을 보리밥집 셰프로 재회하게 된 것이었다. 인연이란 얼마나 질기기도, 놀라운지 모르겠다. 


불고기와 신선한 나물을 한 상 받아 큰 양푼이에 비벼 먹고는 평산 책방으로 향했다. 혹여나 내 책이 진열되지는 않았을까라는 뜬금없는 생각으로 말이다. 로비를 해서 내 책을 넣는 건 어떻까? 이런저런 상상 속으로 들어간 마을 어귀는 성조기와 태극기,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얼굴이 펄럭였다. 싱그럽고 푸른 냄새가 가득한 시골마을에 나타는 유튜버들은 기생충이 드글거리는 모습처럼 보였다. 악취만 나지 않을 뿐이었다. 책방에 다녀왔으나 기억에 남는 건 소음과 깃발이었다. 나의 유일한 휴일에 때가 묻은 것 같아 얼마 머물지 못하고 다시 부산으로 향했다. 


삼락공원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요즘 읽고 있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펴 드니 나는 이미 구례에 와 있는 듯했다. 그때 울리는 전화. 

"아파트 관리 사무실입니다. 유리창이 깨져서 밖으로 떨어지고 있어요. 얼른 와보세요." 

"그럴 리가요. 저희 집 유리창은 멀쩡한데..."

낙동강의 진한 물냄새, 축축한 잔디를 빠른 속도로 밝고 나와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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