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을 걷자마자

모든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님을

by 백설

왼쪽으로 가려던 나는 오른쪽으로 떠밀려갔다.

배의 키는 부러졌고 돛은 찢어졌다. 그것들이 멀쩡할 때에 나는 오로지 키와 돛만 보았다.

키와 돛과 닻만 보며, 바람을 탄다고 생각했고 바다 밑을 훔친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은 부러지면 그만이다. 찢어지면 그만이다.

닻이라는 것이 얼마나 질기겠는가?


바다의 땅이라 여겼던 것은 육지였다.

육지에 정박한 주제에, 바다를 쓸고 다닌다 자신하였던 것이다. 그런 쇠줄기 하나 정도는 바다의 부름에 속절없이 끊어졌다. 자신만만한 배의 탯줄은 끊어졌다.


바다와 바람을 어찌 다루겠는가.


돛을 내리자마자 앞으로 가려던 나는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배의 바닥은 무너졌고 선미는 닳아버렸다. 그것들이 멀쩡할 때에

나에게는 오로지 이 배의 바닥이 얼마나 단단한지, 발로 쿵쿵 굴러보며 이토록 무너지지 않는다며 자신하였다. 날렵한 선미를 흘겨보며 이토록 바다를 자신만만하게 후미에 둘 수 있음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런 것들은 마모되면 그만이다.


바람에게는 그저 먼지요, 바다에게는 표류의 한 점일 뿐인 배일뿐이다.

배가 아니라 바이고 비이고 ㅂ이고 ㅁ이며 ㅓ일 수도 있다. 그 속의 의기양양한 사람은 획 하나도 차지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