存在

by 백설

사회적이려 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공격을 받는다. 손이 더 많이 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왜 비사회적인 사람이 되었는지는 알 필요 없다고들 생각한다. 그 사정을 알면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자기도 모르게 그 고립을 이해해 버리면 그 불리한 관계성을 도저히 그만둘 수 없다.

감당할 수 없고 빠져들기도 싫은 고독과 1인칭으로만 설명되는 잿빛 연옥에 채도가 도는 그 순간. 그런 세계에 속한 사람을 힐난하고 싶다가도 복잡해지고 만다. 이미 그 세계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탐구심보다 공포가 더 크다. 그들은 반드시 혼자 있으려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섞이지 않으려 하는 성향은 어떻게든 드러나며, 그것은 어느 누군가에게 어떻게든 마주하고 싶지 않은 거대한 공포이다.


말도 통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으며 무표정으로 사람들을 응시하면서 그 어떤 것도 교류하지 않는 누군가의 '존재'.


그렇게 가진 것이 '존재성'뿐인 사람들은 반드시 미움을 산다. 아니, 그 이상이다. 압도적인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그 존재를 인정해 버리면 나도 그 존재 속으로 빨려 들어가 영원히 고립될 것이다,

그 존재는 고립을 깨는 척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냥 영원히 죽을 것이다, 그런 막중한 공포감이다.


눈보라 속에서 피는 꽃이라거나, 얼음 위에서 타오르는 불이라거나.

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러니 봄여름에 우두커니 선 눈사람은 공포다. 무더위 속에서도 녹지 않는 얼음은 더할 나위 없는 공포다. 그런 것에는 닿기만 해도 영원히 얼어붙어버릴 것이다.


겨울과 죽음은 감상하고 평가하는 자리에 있어야만 아름답다.


겨울과 죽음이 낄낄낄 유쾌하게 웃기 시작하면 그것은 공포다.

겨울과 죽음이 다정하게 말을 걸면 그것은 공포다.


깊은 물이 누군가의 옷을 벗기고 빨아들이면 그는 죽는 것이다.

그러니 공포는 아무렇게나 임하지 말고 공포의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비사회적인 사람은 공포의 대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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