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염과 공동체

청진기로 듣는 소소한 이야기 #2

by 따뜻한 손

모든 병이 그러하듯이, 관절염의 경우에도 가능하면 조기에 발견하여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가장 결과가 좋다. 하지만 현실은 늘 팍팍하기 마련이어서, 관절염의 초기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 병원을 찾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기에 관절염이 있는 환자분들에게 내가 늘 당부하는 말이 있다.


"할 수만 있으면, 최대한 관절을 아껴 쓰셔야 해요. 관절이 나에게 하는 비명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관절이 아프다고 하면, 그건 관절이 오래오래 참다가 정말 아파서 소리 지르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관절을 아껴서 쓴다는 것이 어찌 그리 말처럼 쉬운 일인가. 대부분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주부들의 경우 식구들의 무관심 속에서 혼자 끙끙 앓기 일쑤이다. 관절이라는 것이 초기에는 별다르게 눈에 띄는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늘 사용해야 하는 것이 관절이기에 맘 편히 쉴 수도 없는 것이다.


가족들의 입장에서 아내는, 엄마는 항상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사람인 것이다.


계속 아프다고 호소하는 환자에게 가족들이 하는 말은 ‘약 먹었는데도 왜 계속 아프다고 하는 거야?’ ‘병원에서 치료 제대로 하는 거 맞아?’라는 차가운 말 외에는 돌아오는 것이 없다. 설거지 한 자락이라도, 걸레질 한 번이라도 도와주면서 그런 말을 하면 서럽지나 않으련만.




결국 나는 환자와 함께 어떻게 하면 집안일을 줄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같은 일을 하더라도 관절을 아낄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게 되는데, 그래도 해결이 안 되는 경우에는 “다음에 오실 때에는 가족들이랑 같이 진료 보러 오세요”라고 약속을 한 후, 가족들이 함께 왔을 때 직접 집안일을 분담시키기도 한다.


처음엔 영문을 모르고 끌려오다시피 했던 남편과 가족들은, 아내이자 엄마의 상태에 대해서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된 후, 그동안 별 것 아닌 것처럼 심드렁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깊이 반성하게 된다. 얼굴을 붉히며 어찌할 줄 모르는 가족들에게(이때를 놓칠세라) 나는 남편에게 설거지를 맡기고, 아들에게는 걸레질을 전담하게 하고, 딸에게는 빨래 개서 빨랫줄에 널어주는 것을 도와주게 한다.


병뚜껑 하나 따는 것도 관절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니 옆에서 재빨리 도와주도록 일일이 짚어주고, 가능하면 환자에게 확실하게 도움이 되는 항목들을 가족들이 스스로 찾아서 할 수 있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결국 관절은 주변의 도움이 없이 의사 혼자, 환자 혼자서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워킹맘으로서 회사 구내식당 주방에서 일을 하시는 환자 한 분은 그동안 쭈욱 괜찮았었는데, 이번에는 어째서인지 손가락 관절이 모두 퉁퉁 부어서 오셨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더니,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져서 5명이 하던 일을 3명 감축하여 2명이서 다 감당하고 있다고 하셨다. 노동량이 늘어난 만큼 정말 힘들게 일하는 중인데, 그렇다고 힘들다는 내색도 낼 수 없다고 하신다.


내가 그 환자의 손가락을 만져보면서 "손가락이 이렇게 부어서 어쩐대요~" 했더니, 그래도 식당에서 잘리지 않고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면서, 부어 있는 손가락을 슬며시 빼서 겸연쩍게 무릎 위에 내려놓으신다.


아마도 그 순간, 그동안 손가락 관절을 아껴서 쓰라고 잔소리했던 내 말이 생각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때만큼은 나도 더 이상 관절을 아껴 쓰라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비록 손가락은 더 악화되었어도, 직장에서 잘리지 않은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안도감을 그 표정에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한 명의 환자는 그동안 계속 관절이 좋아지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어찌 된 일인지 관절 부기도 싹 빠지고 통증도 거의 없어졌다고 했다.


내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기도 전에 "코로나 땜시 공장이 어려워져서 일을 쉬게 되었슈~ 확실히 선상님 말씀처럼 관절을 쉬니껜 좋아지긴 좋아지네유~" 하신다.


그동안 내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관절을 아끼겠다는 약속을 못 지켜서 나에게 미안하셨나 보다. 내가 괜스레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닌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어서 쑥스럽다는 듯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신다.




환자가 더 악화되었어도, 때로는 더 호전되었어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들 최악의 상황 속에서 악전고투를 하고 계신 분들에게 의사로서 한마디 던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늘은 아무 말없이 그저 따뜻하게 그 손을 쥐어 주는 것만으로 나의 잔소리를 대신하였다.


그러나 서로가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때로는 귓가를 때리는 잔소리도, 때로는 피부를 통해서 전달되는 따뜻함도 모두 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걸.




퉁퉁 부어 있는 관절이 편하게 쉴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좋아진 관절이 생계를 위해서 조금은 무리할 수 있는 날도 어서 왔으면 좋겠다.


나는 매일을 오늘처럼 그저 마음을 졸이며 진료실을 지킬 것이고, 하루의 진료를 마친 텅 빈 진료실에서 그분들을 위한 작은 기도의 자리를 지킬 뿐이다.


‘주여, 고통받는 주님의 자녀들과 늘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도록 하신 이유를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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