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에게
안녕~선생님이야.
드디어, 기어이, 그날이 오고야 말았구나^^ 수능일 말이야.
그동안 수고 많았어.
정말 고생 많았다.
아직 그날이 미처 오기 전에 이 말을 미리 하는 이유는, 수능의 결과에 따라서 그동안 네가 해왔던 수고가 행여나 가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일 거야. 그동안 네가 얼마나 성실하게 이 날을 준비해 왔는지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단다.
고3이었던 너에게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나는 옆에서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를 몰랐었어. 아니, 어느 누구도 섣부르게 위로하거나 상심한 마음을 보담을 만한 여지가 없어 보였지.
그런데 말이야, 네가 어머니를 차가운 납골당에 묻어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설렁탕집에서, 설렁탕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고 조금은 안심하게 되었어.
그래. 그거지.
너는 어떤 상황에서도 너다워야 하는 거지.
그런 모습을 보는 너의 어머니도 하늘에서 안심하셨을 거야.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간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 그런 태도는 하루라는 시간을 선물하신 하나님에 대한 가장 순수한 믿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너는 지금껏 그 믿음을 하나님께 네 몸으로 직접 보여드린 것이고.
그래서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게 안쓰럽고 안타까우면서도, 정말 네가 믿음직하게 보인단다. 그렇게 잘 지내온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의대를 지망하고 있다니 나는 정말 기쁘단다. 단지 후배 의사가 한 명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하는 소리가 아니야. 나와 비슷한 사람이 이 세상에 또 한 명 생겼다는 동질감에서 하는 소리지.
너는 아주 따뜻하고 훌륭한 의사가 될 거야. 왜냐하면 너는 이미 그런 자질을 갖추었거든.
인생의 가장 험하고 어두운 시간을 묵묵하게 견디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와 여백이라는 게 있단다. 그건 배워서 갖출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주입한다고 될 것도 아니야.
그건 오직 인간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따르며, 고독하고 처절한 시간을 보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훈장과도 같은 것이란다. 그 여유와 여백으로 많은 아픈 사람들을 품어 줄 수 있을 거야.
얘기가 길어졌구나. 1주일 남은 시간도 건강하게 지내고 끝까지 홧팅이다~!
너를 사랑하고 기도하는 선생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