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꺼내는 최강록의 말
「흑백요리사2」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우승자인 최강록의 말이 회자되는 걸 보면서 이전부터 유난히 자주 밈화 되기도 하고 언급되기도 하는 최강록의 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커뮤니티를 돌아보면 '재도전하길 잘했다'가 아니라 '재도전해서 좋았다'라는 표현이라서 더 심금을 울린다는 이야기가 많다. 항상 언어에 사로잡혀 있는 나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왜일까를 생각했다. 왜 비슷하게 보이는 두 문장에서 유독 '재도전해서 좋았다'이 가 우리의 마음에 더 와닿는 걸까?
그것은 아마 우리가 '잘'이라는 단어에 숨어있는 평가의 흔적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어서 일 것이다. 한국은 잘하고 못하고를 언제나 따지고 '잘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두고 있는 사회다. 그리고 '잘하다'라는 단어에는 잘잘못이나 옳고 그름의 가치평가가 들어간다. 그래서 잘 살펴보면 '재도전하길 잘했다'는 문장은 '재도전'이라는 목적어가 '잘한 일'이라는 평가의 말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저 문장의 발화의 이유를 무언가 좋은 성과나 결과가 따랐기 때문이라고 상상하게 된다.
그에 반해 일견 비슷하게 느껴지는 '재도전해서 좋았다'는 잘 뜯어보면 재도전해서 '뭐'가 좋았는지에 대한 주어가 생략되어 있다. 그에 따라 우리는 주어를 상상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선사받는다. 이 간극을 메꾸는 단어는 우리가 보아온 흑백요리사1에서 2를 아우르는 최강록의 여정이 보여준 어떤 가치가 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재도전해서 경험한 것들이 좋았다'라던가.
마지막의 '좋다'라는 가치평가로 치우칠 수 있는 단어가 들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생략된 주어를 '결과'나 '우승'으로 읽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재도전해서 '우승한 것이' 좋았다고 읽힌다나 '잘했다'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그 문장을 받아들이는 자신 안에서의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빈 공간에 넣어놓은 결과일 것이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 때부터 최강록의 언변은 남달랐다. 오히려 듣고 있는 사람이 불안할 정도로 말을 더듬대거나 미묘하게 별난 표현으로 인터넷 밈화가 되는 일도 잦았고, 때로는 담담하게 사람들을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내놓아 회자가 되기도 했다. '말을 못 하는데 말을 잘해요'라는 어딘가의 인터넷 댓글이 최강록의 말을 적확하게 짚어낸다고 생각한다.
그는 정말 말을 못 하고, 또 말을 잘한다.
최강록의 '말을 못 함'의 면은 사실 발화를 할 때 겉으로 나오는 모습으로 인한 평가에 가깝다. 거하게 더듬거나 이상한 템포에서 멈추고 그 잠시 멈춘 시간이 또 수상하게 길고, 때로는 문장이 끝내놓고는 후다닥 다른 말을 덧붙인다. 심지어 상대방의 말에 아무 대답을 내놓지 못(안?) 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세조차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작게 만드려는 상체를 한껏 구부정하게 숙이고 고개를 밀어 넣은 모습인 데다, 최대한 사람들과 시선 교환을 피하며 눈동자는 마구 떨리며 허공을 배회한다. 그러니까 최강록이 어딘가에 나와서 말을 하는 모습을 단순히 말하면, 우리가 누군가의 앞에서 발표를 할 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태도의 집약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발표 때문에 앞에 나서긴 했지만 토할 듯한 긴장을 느끼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랄까.
하지만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 끌린다. 왜냐하면 최강록의 말은 '내용'에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못하는데 잘해요'라고 할 때 최강록이 '잘하는 말'은 내용과 표현에 있다. 아무리 말을 더듬거려도 귀를 기울이면 그의 생각의 깊이가 보인다. 최강록은 쉽게 판단하거나 단정 짓지 않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래서 항상 말을 하다가도 한번 멈추고, 문장을 끝내놓고 말을 덧붙인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결과보다 상황에 집중한다. 서바이벌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엄청난 결과를 내고 있을 때조차 자신의 성취에 취해 뒹굴지 않고 함께해 온, 그리고 참가하지도 않은 다른 요리사들을 떠올린다. 그렇게 내적으로 많은 생각과 고민을 거친 사람이 아주 천천히 꺼내놓는 말이기에 그가 건져 올리는 문장은 남다르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직관을 어긋난 조합이 오히려 더 사람들에게 더 깊이 가 닿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청산유수처럼 말을 내뱉을 뿐 깊이가 없는 사람을 우리는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그린듯한 웅변가의 모범을 보이면서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은 또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 같다. 하지만 최강록의 쭈뼛쭈뼛 어색한 모습은 어딘가에서 우리가 흔히 작아지는 때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조금은 친숙하고 인간적인 모습의 사람이-사실은 엄청난 능력을 가졌고, 그것을 증명했음에도 불구하고-계속해서 주변을 둘려보며 자신을 낮추는 말을 천천히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꺼내는 것이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내놓은 「흑백요리사 2」의 우승 소감 역시 최강록을 닮은 여운을 담은 '재도전해서 좋았다'인 것이다. 우승이라는 거대한 성과 앞에서도 '우승'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더 다양한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이 문장을,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재도전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되돌아보면서.
혹시라도 이 글을 최강록님 본인이 직접 읽게 되신다면 본인 얼굴 사진을 상당히 불편해하실 것 같아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을 덧붙인다. 하지만 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