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독서 결산

100권을 읽을 줄은 몰랐는데

by 시린

한해의 마지막날, 누구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하루겠지만 나에겐 언제나처럼 그저 일상의 하루일 뿐이다. 12월 31일이라고 해서 특별히 무언가를 했던 게 언제인지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만 몇 시간 남지 않은 2025년을 아쉬워하며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역시 나에게는 '독서'라는 주제 밖에 떠오르지 않았고 이 글을 쓰기로 했다.


1년에 100권이라는 숫자

올해는 소설의 지분이 상당히 높아서 성장을 위한 생산적인 -물론 독서라고 해서 꼭 생산적일 필요는 없지만- 독서의 양이 적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어떤 면에서는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부끄럽기도 하다.

책벌레로서 '1년에 100권'이라는 말은 너무나 유혹적이어서 모든 걸 제체 두고 마구 읽어 재끼고 100권으로 달려가고 싶은 욕구가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유혹을 따랐다기 보단 이래저래 집중해서 정보를 소화할 수 없는 날이 많아 그런 책을 피하고 보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다 보니 어찌어찌 100권에 이르렀다. 그로 인해 기억에 남는 책이 별로 없어서 사실 독서의 성과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훨씬 많은 한 해였다.


이북리더기와 함께한 첫 해

이 정도로 책 읽는 사람이 이제껏 이북리더기가 없었다고? 싶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물건을 늘리고 싶지 않아하기 때문에 이제껏 이북리더기 구매를 고려한 적조차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독서의 뇌과학』이 아닐까?

『독서의 뇌과학』은 술술 넘어가는 쉽고 짧은 책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은 '독서'의 장점을 뛰어넘는 과학적 사실을 담고 있다. 이미 책을 좋아하고 충분히 좋아하는 사람이 굳이 읽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서 늘 미뤄왔던 책인데, 굳이 읽을 필요가 있었다. 덕분에 이북리더기를 영입하고 더욱 몰입도 높은 독서 생활이 되었다.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까 봐 정확히 하자면, 실제로 이북리더기가 어떤 도움이 된다는 내용은 『독서의 뇌과학』에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올해 가장 인상적인 책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불안 세대』『편안함의 습격』처럼 이미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책들도 읽었지만, 그리고 그 책들 모두 너무너무 새로운 관점으로 나를 일깨웠지만 그래도 나는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가 올해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비문학이었다. 이제껏 사화과학, 행동경제학에서의 연구는 실질적인 부족함 -예를 들면 가난- 등의 영향에 주목하고 그러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서는 실제로 어느 정도로 결핍되어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인간이 결핍을 느끼고 그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는가에 대해서 고찰한다. 거칠게 말하면 '물이 반 밖에 없네'라고 느끼는 상태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라고나 할까. 굉장히 흥미로운 데다 수긍가는 부분이 많아서 특별히 기억에 남아 있다.


감동적인 원서들과 함께한 20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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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원서는 꾸준히 읽고 있다. 한 달에 한 권 정도를 읽는 걸 목표로 올해도 아슬아슬하게 12권을 읽었다. 원서를 고를 때는 한글로 읽는 책 보다 훨씬 오래 시간을 들여 읽게 되므로 더 까다롭게 고르는데 그 덕분인지 대부분이 굉장한 감동을 주는 좋은 책들이었다. 특히 『Honor』, 『Homecoming』, 『The Frozen River』를 꼽고 싶다.


『Honor』는 최근은 아니지만 Reese’s Book Club에 선정된 적이 있어서 리스트에 넣어두었던 책인데 읽을 때는 인도의 아주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내내 불편했지만... 그래서 좋은 책이었고, 『Homecoming』은 호주 영어가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인지... 문장이 끔찍하게 읽기 어려웠고... 책은 무한하게 길었고... 한 반쯤 읽을 때까지는 정말 읽는 내내 너무너무 힘들어서 매일 파일을 여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는데 결국은 마음이 움직이고 말았다. 오히려 어렵게 읽어 더욱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The Frozen River』는 아마 그 옛날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인 주인공의 스스럼없는 태도와 스스로에 대한 확신 같은 것들에 매료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 그 행동의 결과는 시대 배경에 의해 속 시원한 것이 아닐지언정 절대 굽히지 않고 스스로가 믿는 일을 계속해서 해나가는 그 모습에. 어떤 부분이 엄청 좋았다기 보단 그냥 읽어 가는 그 모든 단락이 즐거웠다.


충실한 스미추 덕후 생활

원래 내 메인 장르는 스미추(스릴러·미스테리·추리)고 책이든 영화든 뭐든 스미추 악개로 살아온 지가 nn년인데 불구하고 독서를 할 때는 스미추를 최대한 고르지 않으려고 애썼다. 뭐랄까, 왠지 늘 익숙한 길만 고르는 사람이 되는 거 같아서? 특히 독서에 있어서는 나름 골고루 뭐든 다양하게 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치우치지 않으려고 꽤나 애를 썼는데... 올해는 상당히 편향적으로 즐거운 스미추 덕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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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국 스미추의 빛, 정유정 작가님의 책을 한층 더 깊게 고찰하면서 읽었다. 스미추 덕후로서 항상 한국 장르문학에 아쉬움이 가득한데, 정유정 작가님 작품을 읽으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작가가 뜬금없이 등장했나 싶고 읽을 때마다 취향을 떠나 감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온갖 나라의 오만 스미추 소설을 읽고도 10년도 전에 출간된 정유정 작가님의 작품에 다시금 감복하여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 끝내지 못한 책은 또 내년으로 이어질 것이고, 고작 몇 시간이 지나 연도의 숫자가 바뀐 2026년이라고 해서 특별히 내 독서 생활이 눈에 띄게 달라지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어제 읽던 책을 읽고 내일 읽을 책을 고르며 그렇게 매일 조금씩 읽어가겠지. 그리고 어느 날 돌아보면 나도 모르게 그것들이 묵직한 숫자로 쌓여있을 것이다. 그 모든 독서의 경험이 하나하나 남아있지 않고 흘러가버린다 해도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나 같은 독자(Reader)가 되는 것일 것이다.

2026년에도 그저 Reader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고 싶다.


Cover photo by Christin Hum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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