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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개 Oct 08. 2024

14. 운명에 순응하는 삶의 교훈과 시, <과수원>

세이크 무스하이프 웃딘 사디 <과수원>

루미에 이어 마찬가지로 페르시아의 시인 사디의 작품이다. 그나마 발췌 번역본이 있었던 루미와 달리, 이쪽은 국내 번역본을 아예 찾아낼 수가 없었다. 이에 지난번 <샤쿤탈라>처럼 영역본을 구해 읽을 수 있었다. 


<과수원>은 사디가 세상 곳곳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깨달은 바를 짤막한 이야기들로 써낸 시집이다. 그는 자신이 깨달은 진리들을 열매에, 그것들을 깨닫는 과정을 열매를 수확하는 것에 비유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과수원>인가 싶다. <과수원>은 10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디는 이를 두고 '과수원이라는 부의 궁전을 지으면서 10개의 교훈의 문을 설치했다'라고 표현했다. 이 10가지 교훈은 다음과 같다


자비, 사랑, 겸손, 사직, 만족, 교육, 감사, 회개, 기도


여기서 '사직'은 일이나 인생 등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를 말한다. 이 10가지 교훈은 루미의 교훈과도 거의 들어맞는다. 루미와 사디의 시집을 보고 있자면 페르시아 사람들이 삶의 태도를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겸손하고 자제하며 주어진 것에 만족할 것을 강조하는데, 이는 페르시아 시대 설화를 다룬 작품인 <천일야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천일야화>를 통해 본 페르시아 사람들은 성격 급하고 다혈질이며 충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따른 화를 면하기 위해 이러한 삶의 태도를 견지하기를 강조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사디의 작품에서는 자칫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을 정도로 '운명'을 매우 강조한다. 그 어떤 것도 운명을 바꿀 수 없으니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식이다. 특히 겸손과 만족을 이야기할 때 그렇다. 이는 역시 <천일야화>의 수많은 이야기들에서도 느낄 수 있는 공통점이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개척한다거나, 노력으로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능동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는 페르시아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듯 보인다. 이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근원인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가 갖는 특징과도 연결 지을 수 있다. 이들은 유일신을 섬기는데, 이 유일신은 전지전능하므로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모르는 것이 없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이미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며, 이에 유일신앙은 자연스레 운명론, 결정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들은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기보다는 주어진 삶 안에서 기도하고 회개하여 내세를 기약하는 자세로 삶을 대한다. 신을 섬기며 신이 주는 모든 행복과 고통과 즐거움과 시련을 받아들이고 겸손하고 인내하며 만족과 사랑 속에 자비를 베풀며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디의 <과수원>에서는 이러한 삶의 교훈들을, 이야기 중심인 <천일야화> 보다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전달한다. <과수원>의 많은 이야기들에는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교훈부터 일상생활에 녹아들어 있는 자잘한 도움말에 이르기까지 읽는 이에게 가르침을 주는 내용들이 많다. 앞서 언급된 10가지의 교훈이 삶에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다만 성실히 따르기가 어려울 뿐이다. 이야기와 시를 통해 자주 보게 된다면 조금이나마 살아가는 시간들 속에서 이 교훈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과수원>과 <마스나비>가 바로 그런 책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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