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잊지 말아야 할 것
‘휴대폰 공기계 2주만 빌려주시면 사례할게요.’
지역 맘카페에 안 쓰는 휴대폰을 구한다는 글이 떴다. 마침 폰을 새 기계로 바꾼 참이라 큰 고민 없이 댓글을 달았다. 집 쪽으로 오시면 빌려 드리겠노라고.
한 시간도 안 돼 노크 소리가 났다. 두 아이의 손을 잡은 한 젊은 엄마가 풀이 죽은 채로 문 앞에 서있었다. 그 자리에서 휴대폰만 건네 보내려 했으나 그래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일단 애들이랑 들어오셔서 물이라도 마시고 갈래요?”
“네, 고맙습니다.”
젊은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몇 마디 묻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자신이 처한 기가 막힌 상황을 술술 풀어놓았다. 남편의 빈번한 폭력 행사로 아이 둘을 데리고 집을 빠져나왔노라 했다. 친구 집에 며칠 묵었는데 그마저도 집주인의 성화로 쫓겨나는 바람에 아이들과 당장 갈 곳이 없다고 했다.
도울 방법을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해 내야 했다. 일단 부동산을 운영하는 지인에게 연락해 그녀의 처지에 맞는 방을 최대한 빨리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지인과 함께 집을 알아보러 다닐 몇 시간동안 나는 두 아이를 봐주기로 했다.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집을 나와 시종 떠돌다가 여전히 낯선 사람 곁에서 엄마를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 처지라니. 설상가상으로 둘째 아이는 엄마가 없는 사이 여러 번 구토를 하고 변을 지렸다. 아이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날 밤 남편과 상의 끝에 우리가 정한 선에서 새 가정의 정착을 돕기로 했다. 그녀는 주민센터에 긴급생활자금을 신청했다. 지원금이 나오기까지 급한 대로 정착에 필요한 돈을 빌려주기로 했다. 게다가 밥솥, 냄비, 밥그릇에 수저까지, 밥해먹는 데 필요한 가제도구까지 대주어야 했다. 말로는 빌려준다 했지만 처음부터 돌려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이 엄마는 서둘러 두 아이를 기관에 보냈고 인근 콜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생활의 기반이 와르르 무너진 상태에서 혼자 몸으로 가장 노릇을 해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새 가정이 정착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절대 허기를 보았다. 그녀는 매 순간을 버텨내야 했다. 무엇보다 매 끼니를 고민해야 했다. 늘 시간과 돈에 쫓기다 보니 아이들과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힘들었다. 대부분 인스턴트나 시중 간편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당연한 결과인양 둘째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고열이 났다. 엄마는 아이가 아플 때마다 회사를 빠져야 했고 그때마다 급여는 삭감됐다. 악순환은 계속되었다.
‘그동안 많이 도와주셨는데 염치도 없이 결국 약속을 못 지키고 떠납니다. 속히 자리를 잡아서 꼭 은혜 갚으러 올게요.’
어느 날 젊은 엄마는 문자 한통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모든 상황을 두 눈으로 봐왔기에 덮어놓고 그녀를 탓할 수가 없었다. 극한 상황에서 그녀가 우선 따라야 할 가치는 적어도 '베푼 호의에 신의를 지키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장이자 두 아이의 어미로써 자녀가 배를 곯지 않도록 허기를 채워주는 일, 그것이 최우선이었을 테다.
아무리 먹거리가 판치는 세상이라 해도 ‘절대 허기’는 있다. 당장 내 눈 앞에 보이지 않을 뿐 생각보다 많은 수가 배를 곯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학교 급식을 먹지 못해 결식하는 아동의 수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청년 세대조차 먹거리 기본권의 실태가 심각하다는 보고가 심심찮게 들린다. 이것은 머나먼 빈민국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다. ‘식사’의 정의가 단순히 ‘허기를 면하거나 열량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나와 남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언제라도 그녀가 내 눈앞에 당당히 나타나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다.
‘빌린 돈을 갚으러 왔어요. 이자 두둑이 쳐드릴게요’